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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이 선택한 ‘평화’의 도시, 이스라엘 예루살렘
신들이 선택한 ‘평화’의 도시, 이스라엘 예루살렘
  • 글 사진 이두용 기자
  • 승인 2017.03.08 06: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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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것이 설레는 까닭…요르단 국경 너머 어딘가로
마을을 벗어나면 흙길이 이어지고 사방이 적막에 사로잡혔다.

‘정말 위험한 곳일까?’라는 호기심으로 향한 곳이 이스라엘이다. ‘분쟁지역’이라는 말과 함께 늘 팔레스타인과 대립하는 곳이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이다. 요르단에서 버스를 타고 이스라엘로 향하는 길. 왜인지 두려움보다 설렘이 더 컸다. 오히려 해뜨기가 무섭게 아침부터 푹푹 찌는 40도 넘는 더위가 두려웠다.

요르단 외곽 국경으로 떠나는 버스터미널 풍경.

낯선 것이 설레는 까닭
사실은 그랬다. 꼭 이스라엘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난 요르단에 머물고 있었는데 이곳 비자가 3개월이었다. 낯선 요르단에서의 3개월도 길다면 긴 데 더 있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요르단에서 3개월 이상 머물고 싶을 땐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보통은 지정 경찰서에서 손가락 열 개 지문을 찍고, 머물고자 하는 이유를 남기면 OK 된다. 그러면 3개월간 더 머물 수 있는데 이 방법도 두 번 이상 하면 이유 불충분으로 잘린다.

유대교와 기독교, 이슬람교의 성지인 예루살렘.

때로 처음부터 연장이 안 되는 사람도 있다. 중동에서 불법 체류하면서 일하려는 사람들인데 사실 얼굴만 보고 “너는 딱 보니 불법체류의 느낌이 와”라고는 할 수 없으니 과거 빈도수가 높았던 나라에서 온 사람은 진짜 여행으로 왔어도 3개월 연장을 할 땐 까다롭게 대한다.

그래서 병원에서 혈액검사를 한 후 이상 없다는 결과와 함께 지문날인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것도 안 되면 머무는 나라 인근 국가로 잠시 나갔다가 와야 한다. 사실 두 번째 방법이 속은 편하다. 아침에 갔다가 저녁에 돌아온다고 해도 출국 도장과 입국 도장이 찍히게 되니 다시 3개월간 당당하게 머물 수 있기 때문이다. 난 불법체류 몽타주(?)도 아닌데 처음부터 두 번째 방법을 선택했다. 그래서 다녀올 나라로 이스라엘을 선택했다.

요르단에서 이스라엘로 향하는 사막도로는 구름이 내려앉아 아름다웠다.

누구나 낯선 것에는 호기심이 있다. 하지만 위험한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가 처음 요르단에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왜, 하필 거기야?”라고 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사실 요르단은 중동에서도 안전한 나라로 꼽히는 곳인데 몰라서 조금은 무서웠고, 그래서 더 호기심이 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공포영화를 떠올려보면 영화를 보면서 관객이 “가지마! 아···. 가지마!”하고 외치게 되는 장면에도 출연자는 이상한 소리가 난 곳이나 느낌이 안 좋은 곳으로 반드시 간다. 그래서 죽지만. 아…, 주인공은 안 죽는다.

여하튼 두려움이 반절 섞인 호기심이 그냥 궁금함보다는 설렘을 더했다. 이스라엘로 향하는 시외버스 정류장까지 가면서 심장은 쿵쾅쿵쾅 북도 치고 장구도 쳤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달라
‘괜히 왔나?’ 이 생각을 꼭 세 번 곱씹으니 이스라엘에 반절 와 있었다. 내가 머물던 요르단 암만에서 이스라엘 국경을 넘는 코스는 그리 긴 구간은 아닌데 더워도 너무 더웠다. 집에서 나올 때부터 땀이 났는데 세 번을 갈아타고 국경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니 영혼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안드로메다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바람 한 점 없는 도로 위를 달리는데 에어컨 없는 버스는 음악도 없고, 더위에 지친 사람들은 대화도 없었다.

세 번째 버스에서 내렸을 땐 한 정거장을 잘못 내리기도 했다. 버스 안내방송은커녕 어디라고 말도 안 해주니 이번 정거장도 황무지, 다음 정거장도 황무지였다. 다만 인터넷에서 본 정보로는 사거리 맞은편으로 언덕이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사거리도 언덕도 없었다. 좌측에 군인 초소가 있어서 무턱대고 들어가 물을 얻어 마셨다. 뜨거운 물을 마시는 기분이었지만 목을 축이니 몸이 살아나는 듯했다.

예루살렘 뉴 시티는 현대의 일반 서구 도시 풍경과 똑같다.

이곳까지 오면서 정거장 하나가 10여 분씩 걸리기도 했는데 다행히 국경으로 가는 정류장은 걸어서 갈 만했다. 사실 물을 나눠준 군인이 가로질러 가는 길을 일러줘서 좀 빨리 가기도 했다.

국경을 넘는 버스는 이스라엘 것으로 한국에서 본 고급 리무진 버스를 닮아 있었다. 에어컨도 나왔다. 미지근했지만 그게 어디야. 그렇게 국경을 넘어 또 한참을 달려 드디어 이스라엘에 닿았다.

팔레스타인으로 들어가면 분리장벽은 물론 보이는 모든 풍경이 다르다.

첫인상. 달랐다. 같은 기후, 가까운 지역인데 인종과 옷차림, 언어, 건물의 모양이 달랐다. 요르단에는 아랍인이 많았고 당연히 아랍어를 썼으며 히잡이나 부르카, 차도르 등 모슬렘 옷차림을 한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엔 유대인에 히브리어를 쓰고 두꺼운 검은색 코트(카프탄)를 입고 머리엔 중절모(스타라이멜)를 쓴 사람이 많이 보였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구레나룻(페오트)을 길러 자신들의 굳은 신앙을 표현했다.

해만 뜨면 40도를 넘나드는 여름에도 두꺼운 검은색 코트에 중절모를 쓴 사람들을 마주하니 신기한 마음보다 이들의 종교에 대한 신념에 고개가 숙어졌다.

세 개의 종교가 이루는 균형
비자 때문에 왔지만, 예루살렘에 며칠 더 머물기로 했다. 요르단에 처음 갔을 때 이슬람문화를 대하고 느꼈던 낯선 반가움과 똑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이곳은 유대인의 문화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들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아랍인의 문화도 오롯하게 볼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서로의 전통의상뿐 아니라 최신 트렌드인 캐주얼 복장인 사람도 많다. 그들은 종교와 상관없이 우리와 똑같은 현대의 오늘을 산다.

전통을 지키는 유대인들은 한여름에도 두꺼운 카프탄을 입고 스타라이멜을 쓴다.

뉴스에서 분쟁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떠올랐던 이스라엘이지만 유대인과 아랍인은 물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평화롭고 신비한 도시였다. 예루살렘이란 이름도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가 아는 것처럼 이 도시는 오랜 시간 평화와는 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예루살렘은 불모지인 사막지대에서도 전략적인 곳에 있어 이 도시를 차지하려는 민족 간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그리고 수천 년간 이어온 쟁탈전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도시를 유대교와 기독교(천주교 포함), 이슬람교 등 세계 3대 종교의 성지로 자리매김하는 역할을 했다.

학창시절 세계사를 떠올려보면 들어봤을 법한 내용이다. 약 3천년 전 다윗 왕이 여부스로부터 이 땅을 정복해 왕국의 수도로 정하면서 유대인의 땅이 됐다고 한다. 이후 그의 아들 솔로몬이 모리야산에 첫 성전을 세우고 난 뒤 이곳은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으로 불렸다. 하지만 도시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고 유대인들은 나라를 잃은 채 2천년간 세계에 흩어져서 살았다.

유대교와 기독교는 성경의 뿌리가 같다. 하지만 로마 식민지 시절 이스라엘 베들레헴에서 탄생한 예수가 이곳에서 십자가에 달리면서 예루살렘은 비로소 기독교의 성지가 됐다.
모슬렘에게도 예루살렘은 특별한 곳이다. 무함마드가 이곳 모리야 바위 위에서 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여 메카, 메디나에 이어 세 번째 성지로 꼽는다. 아랍인들은 서기 638년 예루살렘을 정복해 수 세기 동안 이곳을 통치하며 바위 돔(황금 돔)과 알 아끄사 사원을 건설하기도 했다.

전통과 공존하며 살아가는 이스라엘의 젊은이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최신 트렌드를 받아들이고 사는 지역과 유대인의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이 사는 곳, 아랍인이 터전을 이룬 곳을 다녔다. 한 도시에 있지만,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물과 기름의 차이랄까. 하지만 그들은 섞일 듯 섞이지 않을 듯 균형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곳곳을 다녔지만 예루살렘의 명소는 단연 중앙의 예루살렘 성이다. 사실 이스라엘에, 그것도 예루살렘에 오는 사람이라면 종교를 불문하고 목적은 예루살렘 성이 1순위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성경에서 예수의 죽음과 부활이 기록된 곳으로 기독교에서는 가장 중요한 장소이기 때문이다.

머리에 밥그릇처럼 생긴 키파를 눌러 쓴 아이들이 귀엽다.

성벽이 옛날 옛적엔 높게 솟아 있었다는데 지금은 지면보다 아래에 있다. 입구는 총 8개라고 한다. 나는 메인 격인 다마스커스 입구를 선택했다. 성의 입구는 작은 놀이공원 입구처럼 보인다. 유럽의 작은 성을 닮았다고 할까. 높지 않은 성곽이 길게 이어지며 성을 감싸고 있다.

최대한 경건한 마음으로 입구에 들어섰는데 ‘이건 뭐야’. 안쪽으로 상점이 늘어서 있었다. 시끌벅적하다. 긴장했었는지 딸꾹질이 다 났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드디어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길, 비아돌로로사다. 총 14개 처소로 800m 길이다.

예루살렘 성의 입구는 총 8개다. 성은 지반이 과거보다 낮아졌다고 한다.

예수가 빌라도에게 사형선고를 받았던 1처소에서부터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를 짊어졌던 2처소, 십자가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처음 쓰러졌다는 3처소 등 성경에 기록된 사건을 중심으로 재판장소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 걸었던 길과 십자가에 달린 곳, 돌무덤에 묻힌 장소까지 사건 흐름에 따라 동선이 연결돼 있다.

사실에 근거한 코스는 아닐 테지만 조붓한 길을 따르며 한 걸음씩 내디디니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여기저기 이어진 골목에도 우리가 모르는 성경의 이야기가 숨어있지 않을까. 그렇게 오르막을 따르다 보니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곳에 세워졌다는 성묘교회에 닿았다. 이곳에 오르니 마음이 더 차분해졌다. 잊고 있던 개인적인 소망과 바람 몇 개가 떠올랐다. 교회 마당에 앉아 먼저 우리나라의 안녕과 이스라엘의 평화를 빌었다.

한참 눈을 감고 있으니 내 소망이나 바람은 흘러가는 대로 두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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