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남자충동’, 남성성에 대한 허상
연극 ‘남자충동’, 남성성에 대한 허상
  • 글 류정민 Ι 사진제공 프로스랩
  • 승인 2017.03.06 1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가부장적 판타지에 사로잡힌 남자이야기

1997년 초연당시 공연계에 파란을 일으킨 조광화 연출의 <남자충동>이 재개봉하면서 가부장적 판타지에 사로잡혀 폭력과 비극으로 치닫는 남자‘장정’역을 맡은 배우 류승범과 박해수가 연극계의 뜨거운 감자다. 강해져야 한다는 강박증을 갖고 폭력충동에 사로잡혀 사는 우리 시대 남자들의 이야기.

도대체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는 집구석. 아버지 이씨(손병호, 김뢰하)는 집문서를 거는 노름꾼이고, 어머니 박씨(황영희, 황정민)는 집안 남자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차 있다. 여동생(송상은, 박도연)은 여장남자를 사랑한다. 그 속에서 장남 ‘장정(류승범, 박해수)’은 영화 <대부>의 알 파치노처럼 조직을 꾸리고 가족을 지키고 싶어 한다.

장정은 놀림 받는 자폐 여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강해져야겠다는 결심을 하지만 순박한 진심은 황당할 정도로 왜곡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집안을 일으켜야 할 깊은 책임감에 시달리며 조폭 보스 이외의 현실적인 대안을 찾지 못한다. 장정의 모든 폭력은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을 만큼 불가피하지만, 사나이의 의지를 몰라주는 구성원들의 원망은 폭력으로 나타난다.

걸쭉하게 목포 사투리를 뱉어내는 극은 생동감이 넘치고 배우들의 카리스마는 객석을 휘어잡는다. 박해수를 비롯한 배우들은 속으로 약해질수록 겉으로는 더한 폭력을 저지른다. 허세와 궁색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허약한 수컷들이 강한 척할 때마다 관객석에선 비웃음이 들려온다.

군더더기 없는 일본식 다다미방으로 꾸며진 무대와 1990년 초반을 재연하는 리얼한 소품, 장치들은 보는 재미를 더한다. 또 하나, 배우들의 감정변화를 전달하는 베이스기타의 선율도 돋보인다.

연극 <남자충동>은 자신의 본래 모습대로 살지 못하고, 사회에서 강요하는 남성상에 끌려 다니는 남자의 허상을 보여준다. 그리고 10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은 남자들의 모습까지 풍자하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