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에, 강릉 안반데기 백패킹
별이 빛나는 밤에, 강릉 안반데기 백패킹
  • 글 성신여자대학교 산악부 | 사진 정영찬 기자
  • 승인 2017.02.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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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의 땅에서 보낸 1박 2일

애초에 이번 산행의 목적지는 강원도 평창에 위치한 발왕산이었다. 서울에서 세시간 남짓 차를 타고 달려와, 발왕산까지 스키장 곤돌라를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용평리조트에 도착했다.

쏟아지는 별들로 황홀했던 안반데기의 밤.
겨울의 끝자락이지만 아직도 꼼꼼하게 챙겨야 할 장비가 많다.
아직 아무도 지나간 적 없는 눈밭 위에 우리의 발자국을 남겼다.

철 맞은 스노스포츠를 즐기러 온 가족들을 지나쳐 도착한 안내소에서는 강풍 때문에 곤돌라 운행이 중지됐다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발왕산 정상에 오르는 다른 방법을 찾아봤지만, 눈이 많이 쌓인 데다 거센 바람이 불어 등산하기 어려울 것이란다. 장비를 가득 실은 배낭의 무게도 꽤 나가는지라 위험을 무릅쓰고 강행하기보다는 근처에 다른 백패킹 장소를 물색하기로 했다. 한참 머리를 맞댄 끝에 강릉에 있는 ‘안반데기’라는 고랭지마을로 발걸음을 돌렸다.

얼마 전 내린 눈이 아직도 소복하게 쌓여 발이 푹푹 빠졌다.
평평하게 생겼다고 이름 붙은 구름의 땅, 안반데기.

안반데기는 떡메로 떡살을 칠 때 밑에 받치는 안반처럼 평평하게 생겼다고 해서 이름 붙은 곳이다. ‘구름의 땅’이라고도 하는데, 지대가 1100m로 상당히 높은 탓에 구름이 무거울 때는 마을까지 흘러내려 온다고 한다. 얼마 전에 내린 눈이 아직도 소복이 쌓여 있어 쉽게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여기까지 걸어오며 스쳐 지났던 넓고 평평한 땅 대부분은 거의 배추를 기르는 밭이란다.

안반데기의 절경을 보기 위해 적당한 곳에 차를 세우고 산행을 준비했다. 처음으로 동계용 이중화 코프라치를 신고, 눈에 미끄러지지 않게 아이젠을 찼다. 꽉 찬 배낭과 생각보다 묵직한 이중화로 몸이 무거워졌지만, 햇살에 비친 하얀 풍경을 보니 마음만은 가벼웠다. “산행 시작하기 전에 입고 온 패딩은 벗어서 배낭에 넣자!” 출발 전 들려온 대장의 지시. 겨울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체온유지 때문이라고 했다. 추운 겨울이라도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다 보면 땀이 많이 나게 되는데, 이때 두꺼운 패딩을 그대로 입고 있으면 땀 배출이 안 돼 오히려 동상의 위험이 커질 수 있고, 땀이 마르는 동안 체온을 빼앗겨 쉽게 저체온증에 걸릴 수 있다. 추울까 봐 꽁꽁 싸맨 패딩을 벗으니 조금 으슬으슬했지만 상쾌한 기분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눈부신 설경에 마음을 빼앗겨 연신 셔터를 누르기 바빴다.
아무도 없는 우리만의 세상에서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겼다.

발이 푹푹 빠지는 하얀 눈밭에서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안반데기 길이지만, 생각보다 거리가 상당해 어느새 온몸에 땀이 맺혔다. 준비해온 행동식을 먹고 물을 마시며 중간중간 휴식시간을 가졌는데, 이때는 반대로 땀이 식으면서 체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겉옷을 입어주었다. 산 중턱에서 달콤한 간식을 먹으며 정상을 바라보자, 인터넷 창을 통해 봤던 것보다 훨씬 더 커다란 풍차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얗게 펼쳐진 눈밭에서의 하루가 더욱 기대되기 시작했다.

황홀한 붉은 노을빛이 안반데기 언덕 너머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안반데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붉은 오렌지빛으로 물드는 하늘과 그 아래 펼쳐진 하얀 마을의 모습. 모두 감탄할 새도 없이 가만히 노을을 바라보았다. 산봉우리 사이에 걸쳐 눈부시게 빛나는 태양이 얼른 언덕 끝으로 올라오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눈밭 속에서도 편안하게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도록 평평한 곳을 찾아야 했다. 높은 지대이고, 바람을 막아줄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원이라 어디를 선택해도 추위를 피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적당한 곳을 정해서 쌓인 눈을 치우고 평평하게 땅을 다지는 동안 금세 땅거미가 내려왔다. 깜깜한 어둠 속, 헤드 랜턴 불빛에 의존해 폴대를 끼워나갔다. 그동안 수차례 야영을 해오면서 이제는 텐트 치는데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과 시야를 가리는 어둠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급속히 떨어지는 기온에 빠르게 텐트를 세워나갔지만 바람은 우리를 도와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안반데기의 풍차는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더 거대했다.

반짝반짝 작은 별
길고 긴 바람과의 싸움 끝에 드디어 텐트 안으로 입성이다. 발을 단단히 감싸주던 코프라치를 벗었는데, 두꺼운 양말을 겹겹이 신어서 그런지 발에 땀이 많이 나 있었다. 젖은 발은 동상에 걸릴 위험이 높기 때문에 바로 보송보송한 양말을 꺼내 갈아 신었다. 겨울 산행에서는 체온 유지와 컨디션 관리를 소홀히 하면 사고가 날 수도 있어서 잠시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몸과 마음을 녹여주는 따뜻한 차 한 모금.

추위와 바람을 피해 텐트 안에 잠시 버너를 켜두고 밖으로 나와 화장실을 가려던 찰나.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는데 “와!” 절로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늘에 박힌 수많은 별이 눈앞으로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 모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어 얼어붙은 휴대전화기를 꺼내 사진을 찍어두었다. 함께 선명하게 반짝이는 별을 헤아리며 서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강원도 산골짝의 밤을 즐겼다.

하나둘씩 챙겨온 핫팩을 양말과 몸 곳곳에 장착하고 꼬물꼬물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있자니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오싹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이런 산에는 멧돼지도 출몰할지 몰라.” 겁주려는 누군가의 말이 들려와 무서움과 추위에 떨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새로운 태양이 또다시 세상을 따뜻하게 물들인다.
바람은 매서웠지만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아 상쾌했다.

이른 아침, 안반데기 정상에서는 막 모습을 드러낸 새 아침의 해를 볼 수 있었다. 온 세상을 밝혀주는 햇살 아래 깨끗한 눈밭에는 우리들의 발자국과 흔적뿐. 아무도 없는 우리만의 세상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거대한 풍차 앞에 옹기종기 모여 사진으로 기억을 남기고, 하얀 눈을 퍼먹으며 갈증을 해결하기도 했다.

눈 쌓인 산에서는 눈싸움이 빠질 수 없다.


눈과 추위, 바람으로 계획과 다른 산행을 했지만, 길을 잃은 우리 앞에 산은 소소한 행복과 아름다움도 함께 가져다주었다. 길게 뻗은 능선 위로 반짝이는 눈길을 걸으며 다음 산행을 상상했다. 때로는 생각대로 되지 않지만, 그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멋진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장비협찬 툴레, 제드

새 학기 전 마지막 산행. 다음 여정은 17학번들과 함께 하게 되겠지.
성신여자대학교 산악부,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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