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들어 날씨가 참으로 쌀쌀해져서 이 산골 주민들은 겨울 채비를 하느라 조금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농사도 안 짓고 사는 산골 아낙이지만 요즈음은 동네 아는 분들이 수확을 끝내고 난 밭에서 이런저런 이삭들을 가져가라 하셔서 그걸로 겨울 채비를 하고 있는데, 그 양이 이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아 조금 염치없는 시절을 보내고 있답니다.
▲ 늘 나물을 캐러가던 장소여서 더 놀라웠던 유해 발굴 현장. |
날이 흐려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은 잿빛 하늘인 오늘, 옆 동네 아는 분 댁의 밭둑가에 올라온 고들빼기를 캐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늘 가던 밭둑가, 그러나 그곳에 도착했을 때 예닐곱 명의 군인들이 삽을 들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낮선 풍경을 만났습니다.
‘국군 유해 발굴 감식단’. 오늘 만난 군인들이 속한 부대 이름입니다. 몇 년 전인가 뉴스로 접했던 6·25전쟁 때 전사한 국군의 유해를 발굴한다던 소식, 그 유해 발굴 현장이, 늘 제가 봄가을로 나물 캐러 가던 밭두렁이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00년부터 이제까지 3,000여구의 유해를 발굴했습니다. 올해만 해도 1,176구의 유해를 발굴했는데, 그중에 국군의 유해는 1,078구였고 적군의 유해도 98구나 된답니다.”
이 산골에 사는 촌 아낙인 저에게도 유해 발굴 사업을 친절히 설명하는 유해 발굴 감식단 병사의 상기된 목소리에 ‘아~, 내가 살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고맙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국군의 유해를 발견하면 유가족들을 찾는 일을 우선으로 하고 일단 국립묘지에 안장한다는데 아직도 발굴 못한 시신이 온 나라 안에 13만구 정도 추정된다 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요.
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 그동안 세월이 흘러 증언해주시는 어르신들의 연세도 옛날 일을 기억해 내기에는 어려운 일일 테고요. 국군의 유해를 묻었던 장소도 세월이 흘렀는데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가 쉽진 않을 것인데 그 많은 유해들을 어찌 찾아내려나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그 부근의 땅을 넓게 더 파고 있지만 아직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 상황. 오늘 내일 하고도 다음 주에 또 와서 다시 유해 발굴 작업을 할 거라는데, 성미가 급한 저로써는 오늘 당장 6·25 전쟁 중에 묻혔다는 국군의 유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디에 계세요? 얼른 흔적이라도 보여주세요, 제발.’ 되지 않을 속말을 중얼거리며 유해가 발견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군인들의 삽질을 구경하고 있자니 50여 년이 넘게 낮선 땅속에 묻혀서 흙이 되어 가고 있었을 그 호국용사의 시신이 이렇게 바로 나올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오십 년을 기다렸다.”
“우리의 게으름과 무관심을 용서하소서, 마지막 한 구까지 최선을 다해 발굴하겠습니다.”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가슴 찡한 문구들을 읽으며 온 나라 전체에 묻혀서 흙이 되어 가고 있을 호국용사들의 유해가 마지막 한 명까지 수습되어 많은 호국용사들의 영혼들이 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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