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어디에 잠들었는가?
그대, 어디에 잠들었는가?
  • 글,사진 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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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들어 날씨가 참으로 쌀쌀해져서 이 산골 주민들은 겨울 채비를 하느라 조금 분주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농사도 안 짓고 사는 산골 아낙이지만 요즈음은 동네 아는 분들이 수확을 끝내고 난 밭에서 이런저런 이삭들을 가져가라 하셔서 그걸로 겨울 채비를 하고 있는데, 그 양이 이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많아 조금 염치없는 시절을 보내고 있답니다.

▲ 늘 나물을 캐러가던 장소여서 더 놀라웠던 유해 발굴 현장.

날이 흐려 금방이라도 눈이 올 것 같은 잿빛 하늘인 오늘, 옆 동네 아는 분 댁의 밭둑가에 올라온 고들빼기를 캐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늘 가던 밭둑가, 그러나 그곳에 도착했을 때 예닐곱 명의 군인들이 삽을 들고 무언가를 찾고 있는 낮선 풍경을 만났습니다.

‘국군 유해 발굴 감식단’. 오늘 만난 군인들이 속한 부대 이름입니다. 몇 년 전인가 뉴스로 접했던 6·25전쟁 때 전사한 국군의 유해를 발굴한다던 소식, 그 유해 발굴 현장이, 늘 제가 봄가을로 나물 캐러 가던 밭두렁이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2000년부터 이제까지 3,000여구의 유해를 발굴했습니다. 올해만 해도 1,176구의 유해를 발굴했는데, 그중에 국군의 유해는 1,078구였고 적군의 유해도 98구나 된답니다.”

이 산골에 사는 촌 아낙인 저에게도 유해 발굴 사업을 친절히 설명하는 유해 발굴 감식단 병사의 상기된 목소리에 ‘아~, 내가 살고 있는 조국 대한민국이 자랑스럽고 고맙구나!’ 하는 마음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국군의 유해를 발견하면 유가족들을 찾는 일을 우선으로 하고 일단 국립묘지에 안장한다는데 아직도 발굴 못한 시신이 온 나라 안에 13만구 정도 추정된다 하니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인지요.

전쟁이 끝난 지 50여 년, 그동안 세월이 흘러 증언해주시는 어르신들의 연세도 옛날 일을 기억해 내기에는 어려운 일일 테고요. 국군의 유해를 묻었던 장소도 세월이 흘렀는데 그대로 보존되어 있기가 쉽진 않을 것인데 그 많은 유해들을 어찌 찾아내려나 걱정이 앞서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에 정선 지역의 국군 유해를 찾기 위해 1차 조사를 마치고 유해를 발굴하기 위해 벌써 일주일 넘게 정선 지역 여기저기의 땅을 파고 있는 젊은 군인들의 힘찬 삽질과는 달리 마을 할머니가 일러주신 장소는 암반지대였습니다.

그 부근의 땅을 넓게 더 파고 있지만 아직은 흔적도 보이지 않는 상황. 오늘 내일 하고도 다음 주에 또 와서 다시 유해 발굴 작업을 할 거라는데, 성미가 급한 저로써는 오늘 당장 6·25 전쟁 중에 묻혔다는 국군의 유해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어디에 계세요? 얼른 흔적이라도 보여주세요, 제발.’ 되지 않을 속말을 중얼거리며 유해가 발견되기를 바라고 또 바라며 군인들의 삽질을 구경하고 있자니 50여 년이 넘게 낮선 땅속에 묻혀서 흙이 되어 가고 있었을 그 호국용사의 시신이 이렇게 바로 나올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는 이렇게 오십 년을 기다렸다.”

“우리의 게으름과 무관심을 용서하소서, 마지막 한 구까지 최선을 다해 발굴하겠습니다.”

국방부 유해 발굴 감식단 홈페이지에서 발견한 가슴 찡한 문구들을 읽으며 온 나라 전체에 묻혀서 흙이 되어 가고 있을 호국용사들의 유해가 마지막 한 명까지 수습되어 많은 호국용사들의 영혼들이 영면하시기를 바랍니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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