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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고 유쾌한 동행, 베를린 일기
잔잔하고 유쾌한 동행, 베를린 일기
  • 글 이지혜 기자 Ι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7.02.08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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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작가 최민석이 고독한 도시 베를린에 갔다. 친구도 사귀고 여행도 가고 일기도 썼다. 여행에 유용한 정보나 맛집에 대한 기대는 접는 것이 좋다. 살아 숨 쉬는 생생한 인물과 작가의 우울 속 희망, 감동 넘치는 이야기가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이제야 서머타임이 해제되어 한국과 시차가 한 시간 더 벌어졌다. 나는 한국보다 8시간 뒤처진 과거에 살고 있다. 모국에서 더 멀어진 느낌이다. 밤은 깊어져 가고, 낮은 사랑처럼 오지 않는다.

(중략)
때로 일상은 살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살아 내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때로 그 일상이 다시 살고 싶은 대상이 되기도 하기에, 살아 내야 하는 오늘을 무시하지 않으려 한다. 소중한 날로 이어지는 다리는 필시 평범한 날이라는 돌로 이뤄져 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돌 하나를 쌓은 밤이다.
(중략)
고인은 나보다 스무 살 남짓 많은 듯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는 자명한 진리와, 사람이 자라 온 환경과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모든 인간은 인간을 추억하고 그 인간의 생에 대한 경의를 표한다는 명백한 사실이 적막한 방 안에 공기처럼 가득 찼다. 건강이 악화되는 와중에도 희망을 품고 독일어 공부를 해 신문도 읽었다는 고인의 삶에 존경과 조의를 표한다.
(중략)
물론 독일인이 일반적으로 불친절한 것은 아니지만, 유독 열차를 탔을 때 불친절을 겪었기에 적어도 내가 만난 일곱 명의 철도 직원들은 불친절하다는 결론을 내렸다(부디 그들이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길 바란다. 미국과 일본, 이탈리아 등지에서 인종차별을 겪었을 때 몹시 불쾌했었다. 하지만, 모국에서 행해지는 동남아인과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더욱 심한지라 -우리는 정말 반성을 해야 한다- 그들이 주는 고통을 이해하기엔 나의 고충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을 뿐이었다).

온갖 감탄과 경이로움으로 점철된 일반적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하고 독서를 시작했다간 첫 장부터 오판이었다는 것을 깨우치게 된다. 베를린이 가진 우울 속에서 사람과의 교감, 한국과 독일 사이에 머무는 작가를 객관적이고 잔잔하게 적어나갔다. 텍스트 속에서 유머를 고고하게 잃지 않았다. 소소하게 아쉬운 것이 있다면 사진이 조금 더 있길 바라는 것. 한 권의 여행 에세이가 가져야 하는 컷 수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작가의 90일을 더욱 자세히 알고 싶어진 마음 때문이다.

저자 최민석
출판사 민음사
페이지수 496
소비자가격 1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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