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숲 야쿠시마
시간의 숲 야쿠시마
  • 김경선 차장|취재협조 일본정부관광국
  • 승인 2017.02.0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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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를 먹고 자라는 원령공주의 땅

7200살 조몬스기를 찾아서
숲이 춤춘다. 시선이 뿌연 안개를 헤집고 숲의 율동에 동참한다. 아스라한 몽환의 풍경을 가르고 등장하는 거대한 고목과 고목. 어디를 보아도 숲은 노년이다. 인간의 생을 찰나로 만들어버리는 숲의 나이. 나무의 생은 천년, 이천년을 넘어 칠천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걸음은 한없이 신중하다. 섬의 진짜 주인인 이끼를 피해 살포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전 세계 이끼의 삼분의 이가 서식하는 야쿠시마. 주인의 위세는 숲을 점령한다. 이곳에서 인간은 스쳐지나가는 손님일 뿐이다.

이곳은 원령공주가 출몰하는 원시의 땅. 시라타니운스이쿄로 깊숙이 들어가면 안개와 이끼가 뒤엉킨 신비로운 풍광이 펼쳐진다.

1993년, 일본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야쿠시마는 섬 전체가 생명의 보고다. 특히 수천년 생 삼나무가 군락을 이룬 숲은 야쿠시마의 상징이다. 섬에는 천년을 웃도는 삼나무가 지천이다. 야쿠시마 삼나무는 수령 천년을 기점으로 고스기, 야쿠스기로 나뉜다. 야쿠스기 중에서 현존하는(현재까지 발견된) 최고령 삼나무는 조몬스기다. 높이 25.3m, 둘레 16.4m에 달하는 조몬스기의 수령은 2200~7200년. 적게 잡아도 기원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어마어마한 수령에 시간관념이 일순 정지하는 기분이다. 길어야 100년 남짓 사는 인간의 삶이 조몬스기 앞에서는 얼마나 작아지는가.

조몬스기로 가는 길은 길고 긴 도로코 열차 선로를 따른다. 사진=오대진
야쿠시마 숲의 주인은 이끼다. 나무뿌리와 돌, 길마다 이끼가 두텁게 뒤덮여있다. 사진=오대진

야쿠시마를 찾는 많은 이들은 조몬스기를 보기 위해 왕복 22km를 기꺼이 걷는다. 신령한 나무를 만나러 가는 길은 친절하지 않다. 길은 아라카와 등산로 입구에서 시작해 벌목한 삼나무를 옮기기 위해 설치한 도로코 열차 선로를 따라 약 8km, 이후 가파르고 힘든 산길을 약 3km 걸어야 끝이 난다. 이른 새벽 서둘러 나서야 약 10시간에 이르는 긴 산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거대한 나무 밑둥 윌슨 그루터기. 사진=오대진
칠천년을 살았다는 야쿠시마의 정신적 지주 조몬스기. 사진=오대진

그러나 숲에 들어서면 몸은 자연에 동화된다. 시선이 닿는 곳이 온통 푸르다. 일본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야쿠시마는 연평균 기온이 20℃를 넘는 아열대성기후로 겨울에도 숲은 초록 일색이다. 상록수인 삼나무가 많기도 하거니와, 바위와 나무뿌리 마다 초록 이끼가 온통 뒤덮여 숲을 더욱 싱그럽게 만든다.

윌슨 그루터기로 들어가 하늘을 바라보면 선명한 하트 모양이 나타난다.

느림의 미학으로 채운 원시의 공간
애니메이션계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는 야쿠시마의 숲을 모티브로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를 만들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원시의 숲, 그 세계를 공유하는 자연과 동식물의 신비로운 이미지는 내러티브를 압도한다. 원령공주의 세계는 자연휴양림 시라타니운스이쿄에서 탄생했다.

야쿠시마에는 사람만큼이나 사슴과 원숭이가 많다. 인간은 이곳에서 손님일 뿐이다.

원령공주의 땅으로 들어가는 길은 시라타니강을 따른다. 시타라니강은 강이라기 보단 맑고 투명한 계류가 쉴 새 없이 흐르는 청정계곡에 가깝다. 물줄기를 따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원시의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 물론 원령공주가 출몰하는 숲은 보다 깊숙한 곳에 자리한다.

이끼가 점령한 시라타니운스이쿄의 숲.

숲을 채운 것은 안개를 먹고 자란 이끼와 고목이다. 이끼는 꽃처럼 피어나 숲을 풍요롭게 만든다. 고목이 많은 일본에서도 야쿠시마 삼나무는 유독 나이가 많다. 천년을 넘긴 것이 수두룩하고, 이천년생 이상도 적지 않다. 그리하여 야쿠시마는 ‘시간의 숲’이라 불린다. 그것은 화강암이 바다에서 솟아난 섬의 생성과정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단단한 화강암 위로 오랜 세월에 걸쳐 표토가 쌓였지만 불과 30cm 남짓. 나무는 생육이 궁핍한 땅에서 성장이 쉽지 않았고, 손가락 한마디 정도가 자라는데 5년이 넘게 걸렸다. 물론 천천히 자라는 만큼 나이테는 촘촘하고 나무는 단단하다. 수지(나무의 기름)도 풍부해 쉽게 썩지 않으니 수천년을 너끈히 살아낸다. 야쿠스기는 이러한 이유로 약 4백년 전부터 불과 30여 년 전까지 무차별한 벌목의 대상이었다. 유네스코가 1900년 경 이후 벌목이 시행된 숲을 제외한 약 20% 지역만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한 이유다.

숲은 온통 이끼로 가득 차 있다. 야쿠시마에는 전 세계 이끼의 삼분의 이가 서식할 정도로 이끼가 풍부하다.

야쿠시마의 신은 나무다. 조몬스기, 기겐스기… 이외의 수많은 야쿠스기는 섬의 정신적 지주다. 그들은 매일 시간을 먹고 자라며 수천년간 숲과 공생해왔다. 궁핍한 땅 대신 양분이 필요한 생명에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준다. 야쿠스기에는 많게는 20여개 이상의 나무가 기생하거나 착생하며 공존한다. 삼나무에 화사한 꽃이 만발하거나 오색 단풍이 물든 색다른 풍경은 그 결과물이다. 얼기설기 엮인 고목은 땅위로 뿌리를 고스란히 노출한 채 길을 내어주기도 하고 메두사의 머리카락처럼 괴기스러운 자태로 시선을 압도하기도 한다.

이끼는 땅에서 시작해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간다. 야쿠시마에서는 이끼로 뒤덮인 나무를 쉽게 볼 수 있다.
1대와 2대가 공존하는 니다이오스기(2대 삼나무).

숲은 태초의 시간을 소환한 듯 원시의 풍경이 고스란하다. 나무와 돌과 길이 얽히고설켜 이끼로 뒤덮인 땅. 안개의 바다가 휩쓸고 지나간 숲의 정기가 폐부까지 깊숙이 파고들면 몸이, 정신이 정화되는 듯하다.

야쿠시마 트레킹
‣조몬스기 등산코스

아라카와 등산로 입구~고스기다니 집락터~구스카와 분기점~오카부보도 입구~오키나스기~윌슨그루터기~다이오스기
~후후스기~조몬스기, 약 10.6km(왕복 21.2km) 왕복 10시간 소요.

‣시라타니운스이쿄 등산코스
야요이스기 삼나무 코스, 약 2km 1시간 소요.
부교스기 삼나무 코스, 약 4km 3시간 소요.
타이코이와 바위 왕복 코스(원령공주의 숲), 약 5.6km 4시간 소요.

‣미야노우라다케 등산코스
요도가와 등산로 입구~요도가와 오두막~하나노에고~구로미 분기점~미야노우라다케
약 7.8km(왕복 15.6km) 왕복 10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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