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산산맥의 푸른 오아시스
천산산맥의 푸른 오아시스
  • 글 사진·윤인혁 기자
  • 승인 2011.04.29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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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인혁의 지구 위를 걷다 | (16)침간산 트레킹

▲ 서릉이 끝나는 지점부터 암릉이 시작된다. 뾰족뾰족한 능선을 따르면 주변 산군이 한 눈에 조망된다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즈스탄, 타지키스탄 5개국을 일컫는 중앙아시아는 과거 육상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이슬람 문화를 바탕으로 한 유목민족의 풍습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지역이다. 또 고구려 출신 당나라 장수 고선지(?~755) 장군이 호령했던 천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은 히말라야 산맥과 더불어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며 수많은 역사와 전설을 만들어 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하기 전까지 중앙아시아는 구소련의 변방에 지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평균 해발 고도 3600m~4000m에 이르는 천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데다가 카라쿰 사막·키질쿰 사막·타클라마칸 사막까지 있어 농사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불모지와 다름없던 땅에 엄청난 양의 지하자원이 개발되면서 경제발전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국가는 유목생활을 하는 등 여전히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땅이다.

▲ 타슈켄트의 알레이스키 바자르. 주로 중국산 물품이 주를 이룬다

깊은 오지 천산산맥과 파미르 고원

중앙아시아에 속한 영토의 대부분이 천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을 품고 있다. 국내에 잘 알려져 있는 포베다(7439m)와 칸텡그리(7010m)가 천산산맥을 대표하는 봉우리. 레닌피크(7134m), 코뮤니즘(7495m) 등은 파미르 고원을 대표하는 봉우리다.

천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엔 5000m가 넘는 산들과 수많은 빙하가 산재해 있지만 등반과 트레킹 탐사에 나설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 현지에 도착해서 산에 접근하기까지 수차례 국경을 통과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적은 비용과 짧은 시간을 들여 등반과 탐사에 나서는 팀들은 열악한 환경 때문에 천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의 깊은 속살을 만나기 힘들다. 하지만 천산산맥의 3000m급 고지를 경험할 수 있는 좋은 대상지가 있으니 바로 침간산(Mt. Chimgan·3308m)이다.

▲ 왼쪽의 능선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투어팀

중앙아시아의 산이나 오지로 가기 위해서는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켄트(Tashkent)가 주요 거점이 된다. 세계 곳곳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로 취항하는 항공편이 많기 때문이다. 국적기인 우즈베키스탄 항공은 오래전부터 타슈켄트를 중심으로 중앙아시아 전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도시를 취항하고 있다.

▲ 침간산에서 바라본 천산산맥의 수려한 풍광.

중앙아시아의 관문 우즈베키스탄

침간산은 천산산맥 서쪽 끝 사막과 맞닿은 산이다. 중국의 신강 위구르 자치구에서 시작해 키르기즈스탄을 지나 우즈베키스탄의 동부까지 뻗어 있는 천산산맥은 길이만 약 2000km, 너비는 약 400km에 이른다. 산맥의 서쪽은 날카로운 암릉과 빙하가 많고 동쪽은 두리뭉실한 고산평원이 형성돼 있다.

타슈켄트에서 차로 불과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는 침간산은 주위에 차르박 호수가 있어 타슈켄트 시민이 사랑하는 대표적인 여름 휴양지다. 겨울에는 자연 스키장으로 변신하기 때문에 리조트와 별장 등이 잘 구비되어 있다.

▲ 침간산에는 총 18개의 등반 코스가 있는데, 걸어서 올라 갈 수 있는 코스는 서릉뿐이다
▶ 침간마을 리조트 → 서릉 초입 → 3000m 지점 → 비박 동굴 → 정상 : 왕복 총 14km, 소요시간 약 7~8시간

침간산 정상으로 오르는 코스는 지금까지 총 18개의 코스가 개발됐다. 침간 마을에서 정상 부위를 올려다보니 설악산의 용아장성 같은 암릉이 곳곳에 펼쳐져 있었다. 정상 인근 고도가 3200m 이상임을 감안하면 결코 쉽지 않은 등반이다.

침간 마을에서 정상까지는 약 7km 거리지만 3000m가 넘는 고도를 감안하면 이른 아침부터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산행 초입은 EPSON 간판이 보이는 스키리프트 스테이션. 초입은 트레킹 코스와 스키리프트 코스가 일치해 길 찾기가 수월하다. 1시간 30분 정도 가파른 능선을 오르면 왼쪽으로 능선이 틀어진다. 고도는 2300m 정도. 심장이 평소보다 세차게 두근거리는 기분이다.

▲ 암릉이 끝나는 곳에 있는 작은 십자가. 이정표 역할을 한다

▲ 암릉이 끝나는 지점에 현지인들이 식당이라 부르는 비박굴이 있다. 악천후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이곳을 지나면 길이 가팔라지고 험해진다.

▲ 비박굴을 지나면 정상까지의 까칠한 암릉 구간이 이어진다.

능선길을 따라 오르다보면 능선 왼쪽으로 설악산의 공룡능선과 흡사한 날카로운 암릉이 펼쳐진다. 이 능선은 정상까지 이어지는데 침간산을 오르는 18개 코스 중 한 코스라고 한다. 리지 등반을 해야 하며 전 구간을 완주하려면 족히 1박2일은 걸리는 긴 구간이다.

서릉을 따라 계속 오르다보면 작은 십자가를 만나게 되는데, 십자가를 끼고 왼쪽 능선을 따른다. 이곳에서부터 암릉이 시작된다. 십자가를 지나면 바위에 러시아 국기와 3000m라는 숫자가 페인트로 그려져 있다. 민감한 사람들은 고소 증세를 호소하기도 한다.

암릉을 가로지르면 이곳 가이드들이 식당이라 부르는 비박동굴에 도착한다. 2~3명은 비박할 수 있는 동굴이다. 악천후나 위급 상황시 훌륭한 대피소 역할도 하고 서릉 코스에서 유일하게 햇빛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 침간산 정상을 알리는 삼각 조형물과 동판.
비박동굴을 지나면 경사가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군데군데 낙석의 위험이 있는 사면을 올라야 한다. 앞에 오르는 사람이 돌이라도 떨어뜨리면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구간이다. 비박굴에서 정상까지 거의 1시간 이상이 걸린다.

정상 능선이 손에 닿을 듯 눈앞에 들어오면 멀리 천산산맥이 한 눈에 보인다. 산행 가이드 그레고리(58세)는 “원래 자유롭게 넘나들던 능선이었는데 지금은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즈스탄의 국경이 천산산맥을 갈라놓아서 출입이 힘들다”라며 헛헛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그레고리의 전성시대는 천산산맥을 내 집처럼 넘나들던 구소련 시대가 아니었을까? 지금은 산행 가이드로 만족하며 산다니, 산처럼 강직한 산악인의 눈빛이 그저 애처롭기만 하다.

정상에는 산악인의 추모 동판이 붙어 있는 삼각형 철제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침간산 정상에서 동쪽의 고산 평원까지 트레킹 코스가 있는데, 외길로 이어져 고산평원을 돌아 침간 마을까지 이어진다. 이 구간 트레킹은 최소 2일이나 걸린다는데 겨울엔 산악 스키로도 다닌다.

하산길은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온다. 정상에서 비박동굴까지 그리고 비박굴에서 약 30m 구간까지만 조심하면 나머지 구간들은 평이한 하산길이다.

비록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 천산산맥과 파미르 고원을 돌아보지 않아도 짧은 시간에 3000m급 산을 오을 수 있다는 것이 침간산 트레킹의 최대의 장점이다. 침간산과 침간마을 주위를 천천히 거닐다보면 ‘이곳이 알프스의 한 자락 어딘가가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의 목가적인 풍광 또한 덤으로 얻는 선물이다.


윤인혁 | 여러 차례의 히말라야 고산등반과 100여 차례의 트레킹을 하며 세계 80여 개국을 돌아다녔다. 여행을 화두로 쉼 없이 움직이고 있는 자유로운 여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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