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 바람맞기 딱 좋은 날씨네…강릉 괘방산 백패킹
거 바람맞기 딱 좋은 날씨네…강릉 괘방산 백패킹
  • 글 이슬기 기자 Ι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7.02.05 06: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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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과 방태산, 설악산 대청봉까지 내다보이는 일출 명소
괘방산 활공장 쉼터에서 바라본 동해의 일출은 기대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한겨울의 바다, 그 바람 속에는 어떤 기운이 깃들어 있다. 차디찬 바람은 대양에 집채만 한 파도를 일으키며 달려들다가도, 폭폭한 가슴 속의 사나운 너울은 고요히 가라앉힌다. 시리도록 푸른 색깔의 하늘과 발자국 하나 없는 쓸쓸한 해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물결 사이사이로 녹아든 바닷바람의 내음. 그래서 사람들은 때로 겨울 바다 앞에 저를 세워둘 필요가 있다.

강릉의 어느 가장 추운 날
손이 시리다. 스마트폰 지도를 확인하려고 잠깐 장갑을 벗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손가락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문득 떠오른 라디오 기상 캐스터의 낭랑한 목소리가 괜스레 야속하다. 내리쬐는 햇살은 봄날 같은데 냉랭한 바닷바람 때문에 체감온도는 엄살을 보태 영하 10℃쯤은 되는 것 같다. 얼른 다시 장갑을 끼고 다리를 움직인다.

배를 세 번 만지면 큰 복을 준다는 등명락가사의 포대화상.

괘방산(339m) 산행의 출발점은 안인삼거리 주차장이다. 정동진역과 안인진역 중간 지점에 있어 정동진을 산행 들머리로 삼아도 좋다. 괘방산은 강릉의 깨끗한 자연을 지근 거리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라 해파랑길 36구간, 강릉 바우길 8구간 ‘산 우에 바닷길’이 겹치는 곳이다. 20년 전 침투한 북한 무장공비들의 도주로로 알려지면서 삼우봉~괘방산~당집~183고지로 이어지는 ‘안보체험 등산로’도 조성됐다.

바다를 뒤로하고 나무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이내 능선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길은 한두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만큼 좁다랗다. 서서히 몸에 열이 오르는가 싶더니, 곧 왼쪽으로 탁 트인 동해 바다가 펼쳐진다. 파도는 애먼 바위에 부닥치며 철써덕 소리를 낸다. 겨울 장비로 꽉 채운 배낭이 무거워 쉬엄쉬엄 걸었는데도 한 시간 반 만에 숙영지인 활공장에 도착했다.

괘방산에서 가장 높은 삼우봉에서 한 컷. 바위에 부딪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는 파도가 지척이다.

기가 막히네, 여기
괘방산(掛膀山)은 옛날 옛적, 과거에 급제하면 커다란 두루마기에 이름을 써서 방을 걸어놓던 산이라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고도가 높거나 산세가 빼어나게 수려한 편은 아니라 강릉 사람들은 야산으로 여긴다지만, 오대산과 방태산, 설악산 대청봉까지 내다보이는 전망에 일출 명소로도 알려져 백패커들은 즐겨 찾는 곳이다.

겨울 바다의 매서운 바람은 차디차면서도 상쾌해 한동안 오도카니 서 있었다.

활공장 쉼터는 그야말로 5성급 호텔 저리 가라 하는 뷰를 자랑한다. 앞으로는 통일공원과 안인 해변 너머로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뒤편으로는 임해자연휴양림과 강릉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기가 막히네. 여기서 하루종일 바다만 바라보고 있어도 좋겠다.” 친구 승목이의 혼잣말에 격하게 동의했다. 데크에 오도카니 서서 시린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굽이치는 조류의 움직임을 좇으며 겨울 바다의 감상에 젖는 것도 잠시,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거센 해풍에 맞선 소나무들이 저마다 사정없이 부딪히며 굉음을 낸다. 활공장 쉼터는 사방이 뚫려있어 댑바람을 피할 길이 없다. 텐트 안으로 몸을 숨겼지만 상황은 마찬가지다. 밤새 우르르 천둥 같은 바람 소리를 자장노래 삼아 잠들어야 했다.

수평선 너머로 달이 떠오르고 있다.

소금기 어린 동해 능선을 따라
붉은빛으로 물드는 세상의 한가운데 다시금 탄생하는 오늘의 태양. 동해의 일출은 언제 보아도 경건하다. 잠 못 이룬 간밤의 피로함은 지금 이 풍경으로 넘치게 보상받는다. 이번 산행도 즐겁게, 무사히 마칠 수 있게 해달라고 나지막이 빌어본다. “춥지 않으셨어요?” 아침 일찍 해돋이를 보러 올라온 등산객이 안부 인사를 건넨다.

커다란 돌무더기가 쌓인 괘방산 고려 산성 터를 발견했다.

활공장에서 삼우봉까지는 700m 남짓이다. 경사가 완만한 산등성이를 통과하면 수많은 돌조각이 무더기를 이룬 괘방산 성터로 이어진다. 고려 초기에 쌓아 올린 이 산성은 왜구와 여진족의 침략을 막고자 했던 옛 강릉 사람들의 염원으로 세워졌다. 지금은 많이 훼손돼 서벽 25m, 남벽 55m 정도만 남아있다.

산성을 지나 왼쪽 능선으로 오르면 이내 삼우봉이다. 괘방산 정상은 중계탑 등 군사 시설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높이가 비슷한 삼우봉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표지석을 대신하는 삼각형 바위에 올라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멋들어진 기념사진을 남긴다. 줄지어 밀려오는 파도 물결이 지척이다.

여유로운 한 때.

기꺼이 바람을 맞자
날머리인 등명락가사는 서울의 정동 쪽에 자리한 사찰로, 일주문에 대형 나침반이 설치돼 방향을 일러준다. 규모가 작은 편은 아니지만 찾는 이가 많지 않아 꽤나 고즈넉한 정경이다. 괘방산 자락에 깊숙이 안겨 호젓한 산사의 정취를 풍기는 이곳은 정동진과 더불어 강릉의 해돋이 명소로도 알려졌다. 배를 세 번 어루만지면 큰 복을 얻는다는 등명락가사의 포대화상을 쓰다듬으며 새해 소망을 재차 다짐한다.

앞으로는 탁 트인 동해 바다가 넘실대고, 뒤로는 시가지의 불빛이 반짝이는 멋진 야영지가 완성됐다.
패킹 전, 바닷바람을 타고 텐트에 침입한 흙먼지를 깨끗하게 털어낸다.

돌아오는 차 안,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진 덕장에 명태가 빼곡하다. 겨우내 매서운 바닷바람에 얼었다 녹기를 수십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부드러운 황태가 될 터다. 어쩌면 우리네 삶도 얼어붙었다가 또 녹았다가 하면서 그 진미를 찾아가는 듯싶다. 그러니 더 쫀득한 인생의 맛을 위하여- 때로는 기꺼이 바람을 맞자.

활공장에서 내려다본 강릉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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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철 2017-03-27 06:38:00
멋진 곳이네요.
감사합니다.

이종철 2017-03-27 06:36:56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