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찾아 산티아고’ 저자 정효정 작가
‘남자찾아 산티아고’ 저자 정효정 작가
  • 글 임효진 Ι 사진 정영찬 Ι 사진제공 정효정
  • 승인 2017.02.01 16: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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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결혼으로 고민하는 당신에게

목적지가 1km만 넘어도 으레 택시를 타곤 했던 그녀가 백팩을 메고 800km를 온전히 두발로 걷는 트레킹을 다녀왔다. 산티아고에 가면 괜찮은 남자가 많다는 말에 혹해서다. 대책 없이 명랑하고 엉뚱하지만 결코 얕지 않은 그녀가 궁금해졌다.

평소에 걷는 걸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어떻게 800km를 걸을 용기를 내셨어요?
끝까지 걸을 생각은 아니었어요. 중간에 언제든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나면 손잡고 올 생각이었죠.(웃음) 마지막 100km를 남겨두고는 황당했어요.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남자를 못 만났다는 생각과 계획에도 없던 800km를 다 걸을 것 같은 상황을 앞두고 울 수도 없고 웃을 수도 없었어요.

진짜 남자를 찾으러 산티아고까지 가셨던 건가요?
찾으면 좋죠. 사실 제 여행의 목적은 그곳에 사는 사람을 만나러 가는 거예요. 누구는 맛집을 가기 위해, 랜드마크를 보러 가기 위해 여행을 하지만 제 여행의 목적은 사람이에요. 그래서 편한 호텔을 놔두고 현지인 집에 머물 수 있는 카우치 서핑을 종종해요. 사실 남의 집에서 지내는 게 눈치 보이고 힘들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곳에 누가 사는지 궁금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나만 특별한 게 아니라 모두가 특별하다는 걸 깨닫는 게 좋아요. 그런 점에서 산티아고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와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는 점이 정말 좋았어요.

미국 의사와 나눈 대화가 참 인상 깊었어요.
무엇에 이끌린 듯 멋진 식당을 지나쳐서 골목길의 작은 식당으로 들어섰고 도날드를 만났어요. 제 고민을 듣더니 인생을 살면서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얘기했어요. 어떤 선택을 하던 제 본모습대로 살 거라는 거죠. 이를테면 여행을 좋아하는데 결혼하고 아기 낳으면 여행을 못할 거라고 생각해서 망설이는데 결혼을 하든 안 하든 결국 원하는 방향대로 갈 거라는 거죠. ‘너 생긴 대로 살 테니까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 얘긴 즉 내가 변하지 않으면 어디 가든 똑같을 거라는 말이기도 해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어쩌면 부제는 ‘나를 찾아 산티아고’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20~30대 여성의 큰 고민 중 하나인 결혼과 비혼에 대한 이야기에서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어요.
저는 사실 자존감도 높고 삶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 매우 행복한 편이에요. 단 한 가지가 불편한 게 있다면 외부에서 저를 보는 시선이에요. 얼마 전 회식 자리에서는 나이 어린 남자 직원에게 “왜 시집 못 갔는지 알겠다”는 말을 들었어요. ‘네가 이러니까 시집을 못 갔지’ 라거나 ‘언니처럼 시집 못 가면 어떡하느냐’는 말들도 상처가 되죠. 아무리 멘탈이 갑이라도 이런 말을 계속 들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어요.
지금은 그런 말을 쓰지 않지만 예전에는 남편과 사별한 아내를 일컬어 미망인이라고 했죠. 아직 따라가지 못한 자라는 뜻이에요. 미혼도 마찬가지예요. ‘아직 결혼하지 못한 자’라는 뜻으로 불완전한 의미를 갖고 있죠. 그래서 요즘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은 비혼이라는 말을 쓰죠.
우리 사회는 싱글인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낳고 사는 삶을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산티아고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어요. 도날드라는 의사도 딸이 넷이지만 결혼하지 않았어요. 아이가 있는 남자와 결혼을 앞두고 그 아이에게 어떤 엄마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우리 사회처럼 애 딸린 남자랑 결혼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가 고민이 아니고요. 남아공에서 온 아이린은 은퇴하고 산티아고에 왔는데 그때까지 결혼은 하지 않고 딸 하나를 낳아 길렀어요. 하지만 결혼하지 않은 걸 후회하지 않았고 ‘the right man(인연, 운명의 연인)은 없었지만 내 인생은 나름대로 괜찮았다’고 말했어요. 그러면서 남의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어차피 삶은 누구에게나 같을 수 없다는 말을 해줬어요.

여러 번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는 사람도 있던데 작가님도 다시 갈 의향이 있으세요?
걷는 건 굳이.(웃음) 엄마랑 같이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사실 처음 5일은 정말 힘들었어요. 스틱 잡는 법도 제대로 몰랐거든요. 그런데 보름쯤 지나니까 걷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장비 사용에 익숙해지면서 조금씩 걷는 게 편해졌고 지평선 위로 바뀌는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았어요. 나중엔 먹고, 자고, 입는 고민 없이 일어나서 걷는 단순한 순례길 위의 삶이 정말 좋았어요. 집에서도 일거리가 보이기 때문에 온전히 쉴 수 없잖아요. 여기서는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게 가능했어요. 사실 초반에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도 그랬다면 아마 산티아고 길이 지옥 같았다고 기억하겠죠.

요즘은 혼자 여행하는 걸 즐기는 사람도 많이 늘어났어요. 혼자 여행할 때 어떤 걸 조심해야 할까요.
남자는 강도, 여자는 성추행, 성희롱의 위험이 늘 따라다녀요. 누구에게나 낯선 곳으로 여행을 간다는 건 그곳에서 약자가 된다는 걸 뜻해요. 해가 지면 돌아다니지 않아야 하고,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면 안 돼요. 남들이 주는 음료수도 받아먹지 않아야 해요. 특히 여자 혼자 여행을 다닌다면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피할 수 없어요.

피할 수 없다고요?
인도나 이란 같은 나라를 여행할 생각이라면 성희롱이나 성추행을 피할 수 없을 거예요. 그렇다고 여행을 안 다닐 수는 없겠죠. 중요한 건 어떻게 대처하느냐 예요. 쫄면 지는 겁니다. 더 세게 나가서 만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보여줘야 해요. 몸을 만지는 성추행을 당하면 처음에는 엄청 당황해서 소리도 나오지 않아요. 하지만 평소에 이런 상황이 생길 걸 대비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계속해야 해요. 그래야 상황이 닥쳤을 때 제대로 대처할 수 있어요.
제가 파이터가 된 게 인도 여행한 뒤부터 예요.(웃음) 이란에서는 남자 다섯 명에게 둘러싸인 적이 있었어요. 눈을 부릅뜨고 ‘뭐 어쩌라고’하면서 더 세게 나갔어요. 물병을 집어던지고 욕을 하고 큰 소리로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요. 대사관에 전화해서 너네 보스한테 너를 해고하라고 말할 거라고 협박도 하고요. 사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지만 다음 여행자를 위해서 저는 더 세게 나가요. 한국 여성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다음에는 어디로 여행 갈 계획이세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북유럽까지 가보고 싶어요. 시베리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북유럽 삶의 방식도 보고 싶어요. 한국보다 공부는 적게 하는데 학업성취도는 높잖아요. 경쟁보다 공생을 생각하는 그들의 삶의 방식을 느껴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요. 제가 산티아고 순례길 트레킹을 준비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꼭 챙겨가야 하는 물건이 있었나요?
거기도 사람 사는 데라서 웬만한 건 다 있어요. 매일 빨래를 하는 게 중요하니까 세제랑 빨래집게를 넉넉하게 챙겨가는 게 좋아요. 그리고 와인을 좋아한다면 와인 오프너를 꼭 챙겨가세요. 와인이 싸고 정말 맛있는데 와인 오프너가 없는 경우가 있거든요. 판초 우의도 좋은 걸로 하나 챙기면 좋고요. 저는 집에 있는 땡땡이 무늬 우비를 가져갔다가 비가 다 들이쳐서 고생했어요. 몇 가지 양념과 요리하고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보관통도 챙겨 가면 좋아요.

남자찾아 산티아고
정효정
방송작가로 다수의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 4년간 일본, 캐나다, 호주에서 살면서 다양한 일을 했었다. 2014년에는 경주에서 중국, 중앙아시아, 중동을 거쳐 로마에 닿는 여행을 한 후 <당신에게 실크로드>를 집필했다.
도서출판 푸른향기
가격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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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래 2017-05-13 15:06:32
한번도 생각조차 못해본걸 하시다니 대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