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 타이가에 천막 치고 싶다
시베리아 타이가에 천막 치고 싶다
  • 글 김영도 Ι 사진 아웃도어DB
  • 승인 2017.01.21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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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도어 라이프의 진수는 순수한 야성…지구상에 그런 곳이 있을까

‘타이가’는 시베리아의 소림(疎林) 지대를 말한다. 가문비나무와 자작나무들이 군생하고 있는 곳이다. 일찍이 영화 ’닥터 지바고’ 첫머리에 타이가 지대를 열차가 달리는 장면이 나왔다.
나는 지난날 안톤 체호프의 ’시베리아 여행’에서 타이가Taiga를 알았는데, 그의 길지 않은 시베리아 기행문 속에 나와 있는 타이가의 묘사가 나를 사로잡았다.

한때 나는 새해를 맞을 때마다 5월이 되면 저 시베리아 철도를 타보고 싶었다. 그리고 도중에 내려서 타이가에 천막을 치고 싶었다. 결국 하나의 몽상이었지만, 그런 꿈으로 나는 혼자 즐거웠다.
체호프는 1880년 4월 시베리아를 가로질러 멀리 사할린에 건너갔는데, 그때 기행문이 ’시베리아 여행’이다. 당시는 아직 시베리아 철도가 개통되기 전이어서 그는 마차로 석 달 걸려 갔다고 했다. 그 기행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시베리아는 어째서 이렇게도 추운가.”
“신의 은총일세”하고 마부가 말한다.

5월이면 러시아에도 푸른 숲에서 휘파람새가 울고, 남쪽에는 벌써 아카시아와 라일락 꽃이 피지만, 이곳 튜멘에서 톰스크로 가는 길은 땅이 갈색을 띠고, 숲은 벌거벗은 채며, 호수와 늪은 얼음에 덮여 어두침침 했다.
강 둔덕이나 골짜기는 아직 군데군데 눈이 남아있었다.
오늘날 시베리아 철도는 널리 알려져있다. 모스크바와 나홋카 사이 9,500㎞를 7박 8일에 달리는 세계에서 가장 긴 열차다.

러시아의 자연은 북에서부터 툰드라(동토 지대), 타이가(침엽수림대), 혼성수림대, 스텝(초원) 그리고 사막이라는 순서로 동과 서를 잇는다. 타이가는 시베리아 철도 중간 정도에 예니세이 강이 흐르고, 그 무렵부터 시작되는데, 이곳에 있는 역 이름도 ‘타이가’다. 타이가 소림 지대의 나무들은 교목이라곤 하나도 없으며 오직 관목들이다.

체호프는 타이가의 박력과 매력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며, 아마도 끝이 내다보이지 않는 데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첫날은 생각 없이 지나가지만, 이틀 삼 일이 되면 점점 놀라고, 닷새께 가서는 이 괴물의 뱃속에서 빠져나가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힌다고 했다. 숲속 높은 지대에 올라가 사방을 둘러보면, 눈앞으로 숲과 숲이 이어지고 나무가 울창한 언덕이 나타나며, 이런 숲과 언덕 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루가 지나 다시 높은 데 올라서면 여전히 같은 모습이다. 그런데 이렇게 이어지는 삼림 지대 그 앞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지 아무도 이곳 농부들도 모른다고 했다. 그들의 말은 그저 “끝이 없다”고만 했다.

시베리아의 타이가는 이렇게 끝도 없지만, 그 하늘을 한 쌍의 두루미가 울며 날고, 백조가 무리를 지어 가거나 들오리떼가 날아가곤 한다. 이런 날짐승들의 모습을 보기에 아름다운 것 같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마음을 울적하게 한다. 그런데 타이가의 이런 모습에 나는 한없이 끌려, 체호프의 이 단편을 이따금 펼친다.

오늘날 시베리아 관광은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하는 이르쿠츠크와 ‘시베리아 진주’인 바이칼 호(湖)를 둘러보는 것으로 돼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개 이르쿠츠크에서 내린다. 그러나 나는 그런 관광에는 취미가 없으며 오직 타이가가 보고 싶을 뿐, 그 끝도 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소림 지대에 천막을 치고 며칠이고 지내고 싶다는 이야기다.

등산이 유럽 알프스에서 시작한 지 약 250년이 흐르고 있다. 그 사이 지구의 오대륙 육대주의 고산군에는 이제 더 오를 곳이 없어지고, 등산의 의미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다시 말해서 대자연을 상대로 하던 모험이나 도전은 사라지다시피 되고, 오늘날 알피니즘과 투어리즘의 구별조차 막연하고 희미해졌다. 그리하여 알프스에서는 ‘반데룽’이 성행하고, 히말라야도 ‘트레킹’ 붐이 일고 있다.

한때 나는 캐나다를 동쪽에서 서쪽으로,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캠핑카를 마음껏 달려보려고 했다. 캐나다에는 뱀프와 재스퍼 같은 관광지가 있지만, 나는 여러 차례 시차가 바뀌는 멀고 먼 길을 자유로이 달리며, 숲속 호반에 천막을 치는 것이 꿈이었다. 캐나다의 호수는 그곳 인구보다 많다고 하지만, 그 문명사회의 시설이 완비된 캠핑장에는 그다지 마음이 안 간다. 캐나다의 자연은 자연성을 잃은 지 오래고, 그 아름다움은 나오는 그림엽서로 충분하다.

아웃도어 라이프의 진수는 순수한 야성 즉 자연성에 있다. 오늘날 지구 상에 그런 곳은 찾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으며, 그나마 남아있는 곳이라면 시베리아의 타이가 정도가 아닐까 한다.
시베리아로 연상되는 것은 도스토옙스키의 유형지(流刑地)다. 그러나 안톤 체호프의 「시베리아 여행」을 알고부터 나의 연상은 달라졌다. ‘타이가는 끝이 없어 보이고, 그 소림 지대의 넓이는 철새만이 안다’고 한 체호프의 여정(旅情)이 한없이 그립다.

나는 체호프가 100년 전, 고생하며 마하로 달렸던 튜멘과 이르쿠츠크 사이를 여기저기 옮겨가며 천막을 치고 싶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타이가, 전나무와 자작나무가 밀생한 숲, 군데군데 가로놓인 습지대…. 숲에서 해가 뜨고 숲으로 해가 지는 그 광대하고 황량한 대자연 속에서 떼를 지어 날아가는 철새와 들오리의 무리를 바라보고 싶다. 언제나 정적이 지배하고 있는 이 타이가는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지면 만고의 고요와 추위의 세계로 변한다.

오랜 세월, 시베리아는 혹독한 자연과 정치·사회적 비참의 대명사처럼 되어있었다. 체호프의 시베리아 여행도 이런 시대의 산물이지만, 그의 기행문에는 뭐니뭐니해도 타이가가 주제다. 일찍이 일본 아사히신문에서 <세계명작의 고향을 찾아서>라는 계획으로 기자들이 각지에 파견된 일이 있는데, 이 속에 물론 체호프의 <시베리아 여행>도 들어있었다. 그때 기자는 ‘볼가’로 시속 100㎞로 타이가 지대를 달렸다. 숲이 우거진 언덕을 넘고 또 넘었다고 했다. 그러는 사이 라디오에서 차이콥스키의 주제가 되풀이되었다. 러시아다운 정취요 장면이다.

나는 타이가의 어제와 오늘을 생각했다. 물론 19세기 체호프의 마차 여행과 20세기의 승용차로 둘러본 타이가의 느낌이 같을 리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또 세월이 흘러, 정치적 사회적 환경이 달라진 오늘날의 러시아를 생각할 때 시베리아도 많이 달라졌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여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체호프가 타이가의 크기를 철새만이 안다고 했던 그 시베리아 대자연의 모습은 그대로일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타이가는 수평의 세계다. 그러나 그것은 그린란드의 수평과는 다르다. 위도도 다르지만 그린란드는 ‘빙모(氷帽) 지대’고 타이가는 ‘수림지대’다. 그러면서 공통된 데가 있다면 모두 만고의 정적이 지배한다는 점이 아닐까. 이밖에 유사점이 또 있다. 그린란드는 빙원에서 해가 뜨고 빙원으로 해가 지는데, 타이가도 수림에서 수림으로 해가 뜨고 진다. 이처럼 똑같은 창공인데, 그린란드 하늘에는 날짐승이 없다.

나는 산악인으로 살며 언제나 마을에서 긴장을 풀지 못한다. 그것은 자연과 문명의 갈등이며 알력에서 오는 고민 때문이다. 문명은 끊임없이 전진하고 자연은 끊임없이 소멸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우리 생활 환경이다. 인생이란 무엇인가는 영원히 풀리지 않는 아포리아인 것을 생각할 때 우리는 우울하고 우리의 미래는 암담할 따름이다.
내가 타이가에 간다는 것은 하나의 몽상이겠으나 오늘의 생의 현실에서 잠시나마 피해 보려는 나의 마음인지도 모른다.

김영도
원로 산악인

1924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 1950년 6·25 자원 입대.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출. 1977년 대한산악연맹 회장 취임.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 1978년 북극 탐험. 1980년 한국등산연구소 개소. 저서, 1980년 <나의 에베레스트>, 1995년 <산의 사상>, 1997년 <등산시작>, 1990년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2000년 <하늘과 땅 사이>, 2005년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2007년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2009년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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