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숲 깨우는 비의 자장가 들으며 잠들다
겨울 숲 깨우는 비의 자장가 들으며 잠들다
  • 이철규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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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Night In The Campsite Part 1 충주 닷돈재야영장

▲ 닷돈재야영장은 숲이 주는 고용함 속에서 편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월악산국립공원 구역 내에는 송계오토캠프장, 덕주야영장, 닷돈재야영장 이렇게 세 곳의 캠프장이 있다. 이 중 시설로는 송계오토캠프장이 최고지만 널찍한 주차장(?)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 캠핑의 즐거움을 감소시킨다. 이에 비해 닷돈재야영장은 우거진 숲과 맑은 계곡이 캠핑의 즐거움을 선사하고 인근 미륵리의 문화재들도 답사할 수 있어 1석 2조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장비협찬·코베아(1588-5515)

이 땅에는 산 좋고 물 맑은 명소가 한두 곳이 아니다. 오토캠핑 전용 캠프장이 아니라 해도 우리 주변에는 자연을 벗 삼아 휴식할 수 있는 곳이 수없이 많다. 충청권에 자리한 닷돈재야영장 역시 맑은 계곡과 짙은 숲이 휴식처를 제공해 성수기를 제외하고는 한적함 속에서 휴식을 취하기 좋은 곳이다.

닷돈재야영장으로 가는 길은 괴산이나 충주를 들머리로 삼아야 한다. 충주를 지나 수안보에서 지릅재를 넘어 만수휴게소를 지나 닷돈재야영장으로 들어서자 썰렁한 주차장에 유일한 차량이 되고 말았다. 야영장 시설로는 깨끗한 수세식 화장실과 식수대·취사장이 전부지만, 숲 속에 자리한 텐트 사이트는 널찍하고 솔잎까지 수북이 쌓여 폭신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사이트 앞으로 물 맑은 송계계곡이 흘러 더 이상 부러울 게 없는 이상향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에 조성된 야영장
소나무 향이 가득한 야영장 제일 앞쪽에 자리를 잡고 <코베아>의 ‘그레이트 파빌리온’을 펼쳤다. 메인 폴을 세우고 측면의 사이트 폴을 설치하고 나니 텐트의 모양 탓에 네모난 사이트가 비좁게 느껴진다. 사실 대부분의 거실형 텐트는 휴양림이나 일반 야영장의 데크에 비해 크다. 최근 휴양림 이용자를 위한 거실형 텐트가 판매되고 있긴 하지만 데크가 어지간한 넓이가 아니고선 세팅이 어렵다.

▲ 캠프장에서의 식사는 사실 가장 고민되는 부분이다. 보통 점심은 간단히, 저녁은 진수성찬을 차릴 때가 대부분이라 살찌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비가 온다는 예보에 측면 폴을 단조 펙으로 고정하고 스트링까지 연결해 행여 있을 비바람에 대비했다. 키친 테이블의 버너 스탠드에 <코베아>의 ‘쉐프 마스터 투 버너’를 얹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라면에 김치, 밥이 전부지만 그래도 허기를 해결하는 데는 이만큼 빠른 먹을거리도 없다.

식사 후 야영장 인근의 미륵리를 찾았다. 미륵리는 신라의 마지막 왕자였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의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마의태자는 양평이나 인제 김부리가 그렇듯이 이곳을 근거지로 신라 부흥운동을 전개하려 했었던 것 같다. 탑과 석등, 돌거북, 미륵불 등을 보면 미륵사는 제법 큰 사찰이었나 보다. 하지만 사찰의 웅장함과 달리 미륵사의 미륵불은 그리 정교하지도 못하다. 얼굴만 선명하게 새겼을 뿐 팔이나 몸은 대충 윤곽을 보일 뿐이다. 미륵불에 비해 그 옆에 자리한 석등이 더 세련된 모습이다.

널찍한 바위 위에 있는 둥근 돌이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공기돌이라 하기에 굴려볼까 싶어 몇 차례 씨름을 하다 포기하고 백두대간의 옛 고개인 하늘재로 걸음을 옮겼다. 하늘재는 본래 계립령으로 문경과 충주는 물론이고 멀리 남한강의 양평까지 잇는 통로다. 때문에 그 통로에는 아직도 마의태자의 흔적이 남아 있다. 하늘재 자연탐방로를 따라 나무와 꽃, 길의 흔적을 찾다 다시금 미륵리로 돌아왔다. 하늘재 탐방의 설명을 읽고 나니 미륵리가 이 길의 가장 중심지였음을 깨닫게 된다.

미륵사지의 은행나무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내려와 캠프장 인근의 만수계곡을 찾았다. 만수봉 아래 자리한 만수계곡은 1급수의 맑은 물도 좋지만 계곡을 끼고 이어진 자연관찰로가 일품이다. 더욱이 계곡입구에 자리한 탐방센터를 이용해 탐방 안내도 받을 수 있다.

4월이면 탐방로 주변은 온통 봄꽃으로 치장을 했겠지만 3월 초라 그런지 아직은 썰렁하다. 하늘에서 한두 방울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봄비다. 비소식이야 반갑지만 텐트 앞에 설치한 장비 걱정에 관찰로를 돌다 급하게 닷돈재야영장으로 돌아왔다. ‘후두둑, 후두둑.’ 빗방울이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마치 봄이 문을 열라며 ‘똑, 똑’ 하고 노크하는 것만 같다.

▲ 캠프장은 다른 곳에 비해 밤이 빨리 찾아온다. 이때만 해도 가랑비가 한두 방울 내릴 정도였으나 새벽이 되자 빗방울이 굵어졌다.
텐트 안으로 장비를 들여 놓고 잠시 휴식을 취하다 보니 맞은편 산자락으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널찍한 야영장에 우리만 있나 싶었는데 다행인 것은 그새 옆자리에 이웃이 하나 생겼다는 점이다. 밤이 되자 야영장도 휴식에 빠졌다. 랜턴 불에 의지해 붉은 포도주를 따랐다. 도시의 멋진 레스토랑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이곳에는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고요함과 세상 어디에도 없을 나만의 공간이 있으며 마음을 나눌 사람들이 있다.

캠핑은 때론 가장 정확한 것으로 인식되는 눈이 아니라 우리의 귀로 현상을 깨닫게 해준다.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통해 비가 옴을 깨닫듯이 때론 소복소복 내려앉는 눈이 오는 소리를 통해 밖을 깨닫게 해준다. 정적 속에서만 들리는 소리,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게 해주는 것, 그것이 바로 캠핑이다. 밤새도록 내리는 봄비는 심술이 났는지 사납게 텐트를 두드려 댄다.

잠시 빗줄기가 가늘어졌는지 먹이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온 새소리에 눈을 떴다. 비는 여전히 대지를 흥건히 적셔주고 이웃집 아이들은 아침부터 소란스럽다. 야영장을  둘러보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계곡 건너에 자리한 사이트에는 국립공원관리소 직원의 숙소를 비롯해 전용 싱크대까지 갖춘 취사장까지 있다. 거리가 가깝지 않아 화장실 이용이 불편하기야 하겠지만 이 정도면 웬만한 전용캠프장 부럽지 않다. 게다가 밤을 밝혀줄 가로등까지 있어 오토캠핑을 즐기기엔 더없이 좋은 곳으로 보인다.

캠프장을 둘러보고 텐트 사이트로 돌아가 북어국과 햇반으로 배를 채우고 부산하게 텐트를 걷었다. 빗물을 머금은 텐트가 무겁다. 무거운 텐트처럼 다시금 현실로 돌아갈 생각에 마음이 무겁긴 하지만 이 짧은 휴식이 있어 삶이 행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휴식은 잠시 쉬는 것이지 영원히 쉬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영어의 휴식이 재출발을 의미하듯, 우리의 삶도 이 같은 휴식을 통해 늘 재출발하는 것이다.

Information - 충주 닷돈재야영장

▲ 만수계곡 자연관찰로는 2km에 지나지 않지만 야생화, 조류, 어류 등 다양한 테마들로 꾸며져 있다.
충북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 자리한 닷돈재야영장은 봄부터 가을까지 찾기 좋은 곳이다. 야영장 내에는 수세식화장실과 취사장, 식수대 등 캠핑에 필요한 기본적인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소나무 숲이 그늘을 드리워 피톤치드 향 가득한 숲 속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또한 야영장 앞으로 맑은 계곡이 흘러 여름철 물놀이를 즐기기에는 최적의 장소로 꼽힌다.

성수기에는 휴가를 나온 피서객으로 인해 야영장이 인산인해를 이루긴 하지만 그 외 시기에는 한적한 편이다. 야영장 인근에 자연 탐방로가 나 있어 사전예약만 하면 숲해설사의 안내로 숲 관찰도 가능하다.

최성수기인 7월 말부터 8월 초에는 전화로 사전예약을 해야 이용할 수 있으며 동계 시즌은 화장실을 폐쇄한다. 이용 요금은 1일 1인 기준 성인 2000원(비수기 1600원), 어린이 1000원(비수기 800원), 주차비 5000원(비수기 4000원), 전기 사용 시 2000원.
▶ 문의 : 043-653-3250 월악산국립공원관리공단 worak.knp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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