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원의 마라톤, 크로스컨트리
설원의 마라톤, 크로스컨트리
  • 글 이지혜Ⅰ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7.01.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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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채원&황준호 선수 인터뷰

EXCEED GOAL
‘인간승리’라는 흔한 단어 말곤 설명할 방법이 딱히 없다. 이야기 내내 울컥함을 참아야 했다. 엄마라는 이름을 숨겨야 했던 한국 크로스컨트리의 여왕, 이채원. 그리고 스물넷에 참 어울리는, 방황을 끝낸 뒤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황준호. ‘설원의 마라톤’으로 불리는 크로스컨트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만났다.

선후배 사이네요. 서로 소개를 부탁할까요.
이채원(이하 이) 안녕하세요, 저는 크로스컨트리 여자 국가대표 이채원입니다. 제 옆엔 남자 국가대표 황준호 선수예요. 저보다 열두 살이 어린 한참 후배긴 하지만, 남자 대표팀 여섯 명 중 두 번째니 그리 어리다고 볼 수도 없겠네요(웃음). 오랜 시간 운동을 하다 보니 많은 선수를 봐왔어요. 그래서인지 대강 스타일을 보면 의지나 인성이 보여요. 그런 면에서 준호는 참 착하고 밝아요. 선배에게 예의 있는 모습도 보기 좋고요. 저에 비해 자기관리는 좀 못하는 것 같지만(웃음) 그건 어디까지나 본인에게 달린 거죠. 말은 이렇게 해도 준호는 참 노력파예요. 항상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황준호(이하 황) 칭찬 감사합니다. 이채원 선배는 저에겐 무척 큰 존재예요. 여자 대표팀이나 국가대표팀을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현역으로 뛰고 있는 선수니까요. 처음엔 워낙 대선배라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5년 정도 함께 대표팀 생활을 하다 보니 지금은 많이 의지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자기 관리가 정말 철저하세요. 사실 이채원 선배처럼 자기 관리하기 쉬운 게 아니거든요(웃음). 항상 묵묵하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고 계시죠. 젊은 선수 못지않은 열정으로 본받을 점이 많은 대표팀의 대들보예요.

크로스컨트리에 대해 아직 모르시는 분이 많죠?
아직 대중화가 잘 안 되어 있는 게 사실이죠. 크로스컨트리는 눈 위에서 하는 마라톤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구력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예요. 동시에 가장 역사가 오래된 종목 중 하나죠. 표고 차 200m 안팎의 평지·오르막·내리막길로 이뤄진 코스를 스키를 신고 달려야 합니다. 약 1.4km부터 길게는 50km 거리를 달려요. 2018 평창 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총 8개 부문으로 펼쳐져요.
비인기 종목의 설움이 없진 않죠. 유럽에선 워낙 오래된 운동이다 보니 축구와 버금가는 인기를 얻는 종목이에요. 그래서 많은 관중의 호응을 받으며 경기에 나설 때마다 ‘한국도 이렇게 인기가 있으면 운동할 맛 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평창 올림픽 때문에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한 한편, 평소에도 국내경기나 선수 소개가 활발하면 좋겠어요.

매우 매력적인 스포츠네요.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육상을 시작했어요. 지구력이 강한 편이었죠. 주위의 권유로 종목을 변경하게 됐고, 중학생 시절부터 경기에 출전하게 됐어요. 여기까지 오는 데 스키 관계자, 스폰서들의 도움을 참 많이 받았어요.
저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육상부에 있다가 학교에 스키부가 있어서 우연한 기회에 스키를 접했어요. 재미도 있고 성적도 잘 나와서 어느새 빠지게 됐죠. 그러다 중학교를 전문 스키학교에 들어가며 본격적인 선수의 길을 걸었어요. 동시에 본격적으로 힘들기 시작했죠 (웃음).

운동하며 언제가 가장 힘들었나요?
고등학교 때 좀 방황했어요. 운동부에 있다 보니 자연스레 덩치 크고 놀기 좋아하는 친구들과 어울렸죠. 운동보다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는 게 더 재미있더라고요. 주말마다 놀다 보니 운동이 서서히 힘들어졌고, 자연스레 방황이 시작됐어요. 합숙 기간에 도망도 다녔고요. 3년 내내 혼나며 운동했어요. 대학에 들어간 이후 자연스레 마음을 잡고 운동에 전념했어요. 제가 좀 마른 체형이었는데 2014년부터는 웨이트에 집중해서 벌크업을 했고, 그러다 보니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졌어요.

사실 전 임신 9개월까지 가족을 제외하고 아무에게도 말 못한 채 운동했어요. 당시 2014년 소치 올림픽을 위해 포인트를 채우고 있을 때라, 임신으로 지금까지 해 온 게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컸어요.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매일 속으로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달렸어요. 이후 1년 정도 출산하고 아이를 키우는데 그 시간이 너무나 힘들었어요. 운동을 다시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 주위에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느낌이 저를 충동적으로 몰아갔어요. 지금 생각하면 괜찮지만, 당시엔 나쁜 생각마저 들더라고요. 시간이 약이라고 아이가 크고 다시 운동하면서 자연히 극복하게 됐어요. 이제 가족이 제겐 가장 큰 힘이 되는 존재죠.

여자로서 존경스러울 정도네요. 두 분 다 크로스컨트리를 사랑한다는 게 느껴져요.
이렇게 아름답고 깨끗한 자연 속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라는 것은 크로스컨트리의 가장 큰 매력이에요. 성적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하지만 좋은 환경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은 별로 없잖아요. 특히 스위스나 프랑스에 경기나 훈련을 위해 가 있다 보면 환경의 중요함을 한 번 더 실감하죠.
저는 큰 시합을 뛸 때마다 ‘이 운동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채원 선배가 말씀하신 대로 유럽에서 열리는 큰 경기에는 환경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빽빽하게 들어찬 관중의 환호성이 정말 멋져요. 소름이 돋을 정도예요. 특히 지구력 경기인만큼 마지막 주자를 향한 관중의 응원이 대단해요. 순위에 상관없이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이 멋있어요.

즐기며 운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요. 휴식 땐 주로 뭘 하시나요?
저는 친구들 만나는 게 가장 좋아요. 사람들 만나서 웃고 떠들다보면 스트레스가 다 풀리거든요. 술을 잘 마시진 않는데 술자리 분위기를 좋아해서 친구들 만나면 한 잔씩 하는 편이에요. 혼자 있을 땐 게임을 하거나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해요.
사실 전 쉴 때도 운동해요(웃음). 집 안에서 웨이트를 하거나 조금이라도 운동에 도움 되는 활동을 하려고 해요. 요즘은 가족과 같이 있는 시간을 늘리며 함께 여가생활을 즐기려고 해요. 가족과 함께하는 순간이 제겐 휴식이죠.

한참 시즌 중이죠. 어떤 계획이 있나요?
내년 2월에 일본 삿포로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 거두는 게 가장 큰 목표입니다. 이어 평창 올림픽에서도 좋은 성적 내고 싶어요. 개인적으론 10년은 더 선수생활을 하고 싶어요.
평창 올림픽은 제게 큰 의미가 있어요. 2018년이면 저는 37살, 선수로서 마지막 올림픽 출전이 될 거예요. 제가 나고 자란 평창에서 마지막을 장식할 수 있다는 건 큰 행운이에요. 내년 2월 아시안게임 준비와 동시에 평창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으로 선수 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겁니다. 이후엔 잠시 쉬고, 가족들과 시간을 가지고 싶어요. 또 기회가 된다면 코치로 돌아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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