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지키는 용기와 행복
일상을 지키는 용기와 행복
  • 글 이지혜 Ι 사진 정영찬 기자
  • 승인 2017.01.06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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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소설과 에세이가 절묘하게 만나 날카로운 사랑의 통찰을 이뤘다. 결혼 후 낭만주의에서 현실주의로의 이행을 알랭 드 보통 특유의 지적 위트와 섬세함으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평생 함께할 사람과의 결혼 후 오는 위기와 갈등을 유연한 기술로 답 내렸다.

우리는 사랑에서 행복을 찾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 우리가 추구하는 건 친밀함이다. 우리는 유년기에 아주 익숙했던 감정들 그대로를 성년의 관계 안에서 재현하길 바라고, 그 감정은 다만 애정과 보살핌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렸을 때 맛본 사랑이란 보다 파괴적인 다른 역학들과도 얽혀 있다. 예를 들어, 통제 불능의 어른을 도와주고 싶은 느낌, 아빠나 엄마가 다정하지 않다거나 그들의 분노가 두렵다는 느낌 또는 철없는 소원을 자유롭게 표현할 만큼 집안 분위기가 안정적이지 않다는 느낌과도 뒤얽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인이 된 우리가 어떤 후보군을 그들이 잘못되어서가 아니라 조금은 너무 옳기 때문에-왠지 지나치게 안정적이고 성숙하고 분별 있고 믿음직하게 여겨지기 때문에-거부하게 되는 것도 얼마나 필연적인가. 심정적으로 이러한 올바름은 이질적이고 누군가에게만 특별히 주어진 것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우리는 그보다 자극적인 사람을 쫓는다. 그들과 함께하는 삶이 더 조화로울 것이라는 믿음에서가 아니라, 그 삶에서 겪을 좌절의 양식이 안심하리만치 친밀할 것이라고 무의식적으로 감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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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자신이 누구인지 또는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아직 모르는 두 사람이 상상할 수 없고 조사하기를 애써 생략해버린 미래에 자신을 결박하고서 기대에 부풀어 벌이는 관대하고 무한히 친절한 도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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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로부터 두렵거나 충격적이거나 구역질나는 말을 거의 듣지 않을 때가 바로 걱정을 시작해야 할 순간이다. 친절해서든 사랑을 잃을까 애절하게 두려워해서든 그런 말이 없다는 것은 우리의 파트너가 달콤한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자신의 상상을 은폐하고 있다는 가장 뚜렷한 징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저도 모르게 자신의 희망에 부합하지 못하는 정보에 귀를 닫아버렸고 그럼으로써 그 희망이 더욱 위태로워지리라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일상의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이 소설로 돌아왔다. <키스 앤 텔> 이후 21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The Course of Love)>에서 그는 일상의 범주에 들어온 사랑에 대해 통찰한다. 사랑하고 이별하는 과정이 그려졌던 전작들과 달리 영원을 약속한 그 후의 이야기다. 에든버러의 평범한 커플 라비와 커스틴의 삶을 통해 수십 년에 걸쳐 사랑이 어떻게 지속되고 성공할 수 있을지 살핀다. 작가는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사랑의 시작’이라고 말하며 낭만의 한계와 결혼 제도의 모순을 넘어 성숙한 사랑으로 도약하기 위한 솔직하고 대담한 논의를 펼친다. ‘사랑은 감정이라기보다 기술’이라는 말로 응축된, 작가가 제안하는 유연한 사랑의 방식을 만날 수 있다.


저자 알랭 드 보통
역자 김한영
출판사 은행나무
페이지수 300
소비자가격 1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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