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새들의 속삭임이 들려요!”
“쉿, 새들의 속삭임이 들려요!”
  • 글·이소원 기자l사진·이소원, 이두용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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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TRAVEL : 서산 ③ 천수만 탐조투어

“그르릉, 가르악, 기리욱” 천수만을 스치는 바람에 새들의 노래가 스며든다. 긴 여행에 지친 철새들은 모래섬에 자리를 잡고 저들끼리 이번 여행에 대해 끊임없이 속삭인다. 탐조대를 사이에 두고 간월호에서는 오랜 날갯짓에 지친 철새들이 머리를 처박고 꾸벅꾸벅 졸기 여념이 없고 누런 속살을 드러낸 들판에서는 배고픈 철새들이 낙곡으로 허기를 채우느라 바쁘다. 
 

▲ 천수만으로 젖어드는 붉게 물든 하늘을 수놓는 가창오리의 군무.

서산 천수만은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큰 철새도래지다. 1980년대 현대건설에서 매립을 시작해 1995년에 완공된 간척지로 천수만의 간월도 양옆으로 방조제를 쌓아 부남호와 간월호가 생기고 넓은 농지가 생겼다. 이곳은 기계로 논농사를 짓기 때문에 떨어진 벼이삭이 많아 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한데다 습지와 농경지가 붙어 있어 다양한 철새들을 관찰하기 좋다. 추수가 끝난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3월까지 두루미, 흑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검은머리물떼새, 가창오리 등이 머문다.

서산천수만철새기행전위원회와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에서는 매년 10월 중순에서 2월까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탐조투어버스를 운영하고 있다. 탐조투어는 서산A지구 간척지를 끼고 세 개의 탐조대를 돌아보며 철새들이 낙곡을 먹는 모습과 간월호에서 쉬는 모습 등을 살펴보는 것으로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 소요된다. 이번 탐조에는 조흥상 가이드와 이경자 간사가 동행했다.

추수가 끝나 황토색의 누런 속살을 드러낸 밭에는 새들이 좋아하는 볏짚과 낙곡이 가즉하다. 하지만 인간의 눈에는 그냥 흙으로만 보일 뿐이다.

“사람 눈으로 보면 추수도 끝나고 먹을 게 없어도 새들이 보면 먹을 것이 있어요. 얘들은 낙곡을 먹어요.”
“물고기는 안 먹나요, 갈매기는 별걸 다 먹던데요?”
“번식할 때는 종종 물고기도 먹지만, 맹금류 빼고는 주로 낙곡을 먹어요. 갈매기는 잡식이지요. 이쁜 새 많은데 왜 갈매기만 찾어요?”

갈매기와 기러기도 헛갈려하는 주제에 어찌 수많은 철새를 구분할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마음 애써 감추며 눈에 힘을 주고 살피는데 쉽지가 않다.

“너무 어려워하지 말고 잘 봐요. 우선 날갯짓이 빠르면 오리종류에요. 둔하다 싶으면 기러기구요. 전장 차이가 커서 멀리서도 날갯짓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어랏, 정말 날갯짓의 퍼덕거림이 다르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시작이 반이랬다. 오늘 겨울철새들을 샅샅이 살펴보리라.

▲ 천수만 철새탐조투어 프로그램 코스의 하나인 1탐조대.

천수만에 겨울철새들이 모여드는 이유

가창오리의 학명은 바이칼 틸(Vical Teal)이다. 이름 그대로 가창오리는 시베리아, 아무르 등의 습지 근방 바이칼 호에 흩어져 번식하다 10월 중순쯤부터 새끼들을 데리고 한국, 중국 남부, 일본,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동하는데 대부분이 한국에서 겨울을 난다. 시베리아에서부터 먼 길 날아온 가창오리들은 서산 천수만에 일단 들렀다가 날이 더 추워지면 군산 금강 하구언, 그리고 해남 고천암호로 이동하는데 이곳 천수만은 가창오리의 80%가 머무는 덕분에 철새 도래지로 이름이 높다.

“올해는 기러기에 밀렸는지 이상하게도 가창오리들이 천수만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군산으로 넘어갔어요. 기러기 전장이 80cm 정도고 가창오리가 40cm 정도 되니 우선 덩치에서 밀린 거죠. 기러기들이 낙곡을 다 먹어버려서 먹을 것도 없으니 얘들이 올 리가 있나요. 몸 풀고 겨울 휴가 오는 애들인데.”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겨울철새 이야기
“대부분의 조류들은 번식지와 월동지를 이동하는 특성이 있어요.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과 러시아의 습지에서 봄과 여름철에 번식을 하고, 동남아와 오스트레일리아 지역에서 겨울을 나지요.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는 철새들에게 이동 중 가장 큰 문제는 충분한 먹이의 공급과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에요. 사람도 장거리 여행하려면 먹는 거랑, 숙소가 가장 고민이잖아요? 똑같아요. 오리류 같은 물새들은 주로 해안선을 따라 이동하는데 중국, 러시아의 습지에서 번식한 무리가 한 번에 모여드는 곳이 한반도랍니다. 특히 천수만은 한반도 서해의 중간에 위치해 해안선을 타고 이동하는 철새들의 병목지점인 거죠. 철새들 대부분이 천수만을 지나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세계에서 다양한 종류의 새들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거예요.”

▲ 탐조투어를 이용하면 망원경으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망원경으로 간월호에서 쉬고 있는 쇠기러기의 모습이 보인다.
흥미진진한 설명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는데 벌써 1탐조대에 도착했다. 탐조대는 간월호를 앞에 두고 볏짚으로 위장막을 친후 철새들을 살펴볼 수 있게 네모난 공간을 뚫어두었다. 철새들이 신경 쓰지 않고 편히 쉴 수 있도록 한 인간의 자연에 대한 배려인 탐조대 위장막 사이로 200mm 렌즈를 꺼내 드는데 이런, 새가 점으로 보인다. 조흥상 가이드가 껄껄 웃으며 “200mm로는 개갈이 안난다”며 “600mm는 되어야 철새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한다.

“쌍안경 필요하신 분?”
“저요! 저요!”

서산천수만철새기행전위원회에서 미리 준비해 온 쌍안경으로 들여다보니 간월호와 그사이 모래섬에서 쉬고 있는 새들이 보인다. 그보다 망원경으로 보니 철새의 고운 자태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오는 길에 공부한 기러기 같아 여쭈니 맞단다.

“쇠기러기(White-Fronted Goose)는 학명 그대로 하얀 이마를 가졌어요. 기러기는 가족단위, 지역단위로 이동하지요. 새끼일 때는 이마가 노랗다가 자라면 자랄수록 하얗게 변해요. 완전히 하얀 이마가 성조라는 표시에요. 어느 정도 자라면 덩치는 성조와 비슷해지기 때문에 이마를 보고 새끼와 어미 구분을 해요. 덩치는 커져도 어미 노릇 제대로 하려면 2~3년은 걸리거든요.”

▲ 탐조대 근처 들판에는 낙곡을 먹는 철새들이 많다. 덩치가 큰 쪽이 큰기러기고, 작은 쪽이 청둥오리다.

농경지를 끼고 있는 간월호에는 개구리를 비롯해 조류의 먹이감들이 풍부해 철새들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휴양지다. 덕분에 겨울에만 철새들이 날아드는 것이 아니다. 천수만 일대는 갈대 등이 지천에 있어 일정 수위가 유지되는 논이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번식지이기도 하다. 덕분에 호사도요, 장다리물떼새 같은 여름철새도 찾아든다. 다만 탐조 코스가 간월호 주변의 농경지를 끼고 있어 농민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여름에는 공식적인 행사가 없을 뿐이다.

“여기 자연환경은 철새들에게 최고지요. 쉴 곳도 있고 먹을 것도 있으니까요. 다만 대접을 좀 더 잘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들이 조심해주고, 먹을 것도 신경 써 줘야 해요.”

매년 천수만을 찾는 철새의 수는 1백여 종 200만 마리에 이른다. 오리와 기러기류는 물론이고 황새, 흑고니, 재두루미 등 멸종 위기에 처한 새들도 이곳에서 겨울을 난다. 운이 좋으면 새떼가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나는 장관도 볼 수 있다고. 붉게 물든 노을을 배경으로 수십만 마리의 가창오리가 날갯짓 하는 장면은 삼대쯤 덕을 쌓아야 제대로 볼 수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관이란다.

“저기 좀 봐요!”

▲ 번식을 마치고 한반도로 ‘겨울휴가’를 온 철새들은 간월호에서 쉬면서 먹이를 먹는다.

스물스물 넘어가는 태양을 배경으로 말똥가리 한마리가 느긋하게 식사중이었다. 메뉴는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으나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오리 종류의 하나인 듯 했다. 참매, 황조롱이, 말똥가리 같은 육식성 조류인 맹금류들 역시 천수만에서 볼 수 있는 겨울철새다.

추수도 끝난 누런 들판을 박차고 새떼가 날아오른다. 푸드덕 거리는 날갯짓이 조금 둔한 것을 보니 기러기일 게다. 낙곡이 흩뿌려진 들판의 누런 속살로 태양이 몸을 감춘다. 한껏 쉬고 나서일까. 기러기 무리는 아무래도 또 여행 떠날 채비를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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