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의 대표적인 MTB 코스인 가야산 임도는 내포지방의 군사 행정 요충지였던 해미읍성을 시작으로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시키는 삼화목장, 그리고 한적한 풍광을 자랑하는 저수지들이 코스 중간 중간 쉴 새 없이 등장한다. 더불어 그 속에 얽힌 이야깃거리를 듣다보면 라이딩 내내 지루할 틈이 없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묻어 있는 가야산 임도를 따라 두 바퀴의 자유를 누려보았다.
 

▲ 개심사로 가는 길에 지나게 되는 황락저수지. 제주도의 오름을 연상시키는 삼화목장의 풍광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가야산 임도 라이딩은 해미읍성의 남문이자 정문인 진남문에서 출발해 신창저수지~개심사~삼화목장~고풍저수지~서산마애삼존불~보원사지~용현자연휴양림~일락사를 거쳐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총 거리는 28km로 초급 실력의 라이더들도 무난하게 끝마칠 수 있다.

이번 가야산 임도 라이딩은 ‘서산MTB클럽(회장 이희집)’ 회원들과 함께 했다. 서산의 대표적인 MTB 동호회인 서산MTB클럽은 몇 달 전부터 ‘자전거 순찰대’를 결성해 경찰과 함께 서산의 치안을 돕고 있다. 매주 한 번씩 회원들이 모여 자전거를 타고 경찰차가 지나다니기 어려운 골목 구석구석을 순찰한다.

“라이딩도 즐기면서 고장의 치안도 지킬 수 있으니 라이더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요? 매주 한 번이지만 고장을 지키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된다고 생각하니 뿌듯해요. 이 때문인지 요즘에는 동호회 분위기도 훨씬 좋아지고, 단합도 잘 되고 있어요.”

친환경적인 레포츠이면서 건강에도 좋은 자전거의 또 다른 시너지 효과일까. 최근에는 지자체 별로 자전거 순찰대를 결성하는 곳이 많아졌다. 서산의 인근 지역인 천안, 홍성, 청양에서도 이미 자전거 순찰대가 맹활약(?) 중이다.

오랜 역사의 흔적이 담긴 코스

▲ 서산MTB클럽 회원들이 보원사지를 지나 용현자연휴양림으로 가는 중 늦단풍이 멋지게 든 길을 지나고 있다. 가야산 임도 라이딩은 서산의 대표적인 MTB 코스다.

가야산 임도 코스 시작점인 해미읍성(사적 제116호)은 조선시대 축조된 성으로 해안지방에 자주 출몰하던 왜구를 대비해 방어책으로 만들어졌다. 그 후 오랫동안 충청도의 군사 행정 중심지로서 기능을 했다. 하지만 해미읍성에는 가슴 아픈 역사도 남아 있다. 천주교 박해가 심했던 조선 후기 천주교인들이 대량으로 처형당한 곳이 바로 해미읍성이다. 그래서 해미읍성을 찾는 이들 중에는 사적을 보기 위해 찾아오는 관광객과 함께 천주교 신자들도 상당수 있다.

해미읍성의 성곽을 끼고 돈 후 삼화목장(서산목장)으로 향하는 647번 지방도로 접어들었다. 여의도 면적의 5배에 달한다는 삼화목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정권 시절 5·16쿠데타의 주역이었던 김종필 씨의 땅이었다. 김종필 씨가 운산면 일대의 드넓은 야산을 목초지로 바꿨고 전망 좋은 곳에 자신의 별장을 짓기도 했다. 그러다가 전두환 전 대통령 시절에는 부정축재 재산으로 환수 당해 한우개량사업소로 용도가 바뀌었다. 오랫동안 김종필 씨의 땅으로 인식 되서 그런지 아직도 서산 시민들 중에는 삼화목장이라는 이름 대신 ‘김종필 목장’이라 부르는 이들도 꽤 많다.

사실 서산은 군사정권 시절부터 급격한 변화를 겪어왔다. 수많은 땅이 그때부터 개간되기 시작했다. 국토확장이라는 목표로 천수만을 간척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하지만 천수만 간척은 드넓은 농경지를 확보하는 대신, 반대로 오래전부터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왔던 어민들의 생계 지역을 앗아가기도 했다. 천수만 간척지는 간척 개발의 표본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환경 보존이 무엇보다 중요시 되는 지금에는 ‘환경 파괴의 산물’ 쪽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를 일이다.

삼화목장도 마찬가지다. 수백 수천 마리의 소들과 어우러진 목장 풍광은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아름답지만, 한편에서는 목장으로만 쓰기엔 너무 아깝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어차피 예전의 모습을 되찾기 어렵다면 지역 발전을 위해 관광 자원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서산에 얽힌 역사들은 라이더들에겐 지루할 틈 없는 이야깃거리다.

▲ 개심사 일주문을 지나 만나게 되는 노송길

잘 정비된 임도 구간
해미읍성에서 647번 지방도를 따라 4km 정도 가자 우측으로 개심사로 이어지는 포장길이 나왔다. 가을의 끝자락을 놓치기 아까운 라이더들이 늦단풍의 절경을 담은 개심사 오름길을 그냥 지나칠 수 없는지 핸들이 자연스레 우측으로 향했다.

가야산 임도 코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 중 하나가 바로 저수지를 끼고 도는 라이딩이다. 가야산 임도 코스에서는 신창저수지, 용비저수지, 고풍저수지, 황락저수지 이렇게 총 4개의 저수지를 지나게 되는데, 그 중 하나가 개심사로 오르는 길에 만나는 신창저수지다.

개심사에서 잠시 몸을 식히고 다시 삼화목장으로 향했다. 삼화목장의 규모가 크긴 큰지 한참을 라이딩한 거 같은데 주변은 아직도 초지였다. 개심사부터는 보원사지로 바로 갈 수 있는 콘크리트 포장길도 있었지만, 고풍저수지와 서산마애삼존불을 거쳐 가려면 647번 지방도 방향으로 다시 내려와야 했다. 그래도 고풍저수지까지 차량이 많은 도로를 피해 갈 수 있는 마을길이 나있어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잠깐의 업힐이 이어지고 고풍터널을 통과했다. 이내 서산마애삼존불에 도착하자 회원들이 자연스레(?) 안장에서 내려 저마다 식당 한 켠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용현집’이라는, 어죽으로 유명한 맛집에서 허기를 달래기 위해서다. 20년 동안 대를 이어 오고 있는 용현집은 가야산 임도를 찾는 라이더들이 자주 찾는 ‘명소’ 중에 하나다.

▲ 서산MTB클럽 회원들

임도 정상에 놓여 있는 ‘안전기원비’
본격적인 가야산 임도 라이딩은 용현자연휴양림부터 시작됐다. 용현자연휴양림 매표소를 지나자 비포장길로 바뀌더니 계속해서 오르막이 이어졌다. 하지만 길 상태는 매우 좋은 편이었다. 경사가 심한 구간은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었고, 급격히 휘어지는 곳은 가드레일도 설치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가야산 임도는 소방도로로 만들어진 거라 비포장 구간이라 할지라도 길이 잘 다져져 있어 비가 많이 내려도 움푹하게 파이지 않는다고 한다.

싸늘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었지만, 업힐 구간을 마치고 임도 정상에 도착하자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용현자연휴양림 매표소부터 임도 정상까지 쉼 없는 업힐 구간으로, 완만한 오르막이 1km, 급경사 구간만 1.5km 정도 됐다. 임도 정상은 가야산 자락의 일락산과 석문봉을 잇는 안부 지역이다. 임도 정상에 서자 해미읍의 전경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 회원들이 MTB를 들고 개심사로 이어지는 계단길을 오르고 있다

해미읍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는 ‘안전기원비’라는 글씨가 새겨진 조그만 비석이 놓여 있었다. 2년 전에 외지에서 온 한 라이더가 이곳을 라이딩하던 중 추락사 한 일이 있었는데, 그 후 서산MTB클럽에서 가야산 임도를 찾는 모든 라이더들이 한 번 더 안전사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세워 놓은 것이다.

임도 정상에서 일락사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의 다운힐이 이어졌다. 다시 한 번 ‘안전기원비’의 의미가 머릿속을 스쳤다. 임도 정상에서 일락사까지는 10분도 안 돼 도착할 수 있었다. 일락사부터는 다시 아스팔트 포장길이 해미읍성까지 이어졌다.

가야산 임도 코스는 깔끔하게 마무리할 수 있는 난이도가 특징이다. 완만한 경사의 길이 계속되다가 용현자연휴양림부터 급경사를 이루는 2.5km의 구간을 통과하고 나면 큰 어려움이 없다. 무엇보다 가야산 임도 라이딩은 빼어난 자연 경관과 문화 유물로 가득한 볼거리, MTB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임도 구간, 그리고 서산에 얽힌 크고 작은 이야깃거리들이 서로 어우러진 서산의 참맛을 느낄 수 있는 명품 MTB 코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