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km를 46시간 안에 완주하라!”
“166km를 46시간 안에 완주하라!”
  • 글 사진ㆍ안병식(소속·노스페이스)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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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마라톤대회 참가기 l <노스페이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

▲ 순백의 아름다움으로 뒤덮인 알프스를 배경으로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힘든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알프스의 설원을 배경으로 46시간 안에 166km를 완주해야 하는 ‘<노스페이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 대회가 지난 8월 프랑스 샤모니에서 열렸다. 준비 부족과 미흡한 정보로 매우 힘든 레이스를 하고 돌아왔다는 극한 마라토너 안병식 씨. 그가 <월간 아웃도어>로 생생한 대회 현장을 보내왔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UTMB)’ 대회는 프랑스 샤모니(Chamnix)에서 열린다. 샤모니는 프랑스의 남동부 지방인 오트사부아(Haute-Savoie) 주에 있는 작은 마을로 알프스 최고봉인 몽블랑(Mont Blanc, 4807m)을 거점으로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을 가르고 제1회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곳이기도 하다.

▲ 하얀 설원 속을 달리고 있는 선수들. UTMB 코스는 166km를 46시간 안에 완주해야 한다

까다로운 참가 조건을 갖춘 대회

극한 마라토너
안병식 선수 주요 프로필

▲ 안병식(소속·노스페이스)
▶ 2001년 제주대학교 미술학과 졸업
▶ 2005년 10월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250km) 완주
▶ 2006년 6월 중국 고비사막 마라톤(250km) 우승, 7월 칠레 아타카마사막 마라톤 (250km) 4위, 10월 이집트 사하라사막 마라톤(250km) 3위
▶ 2007년 12월 남극마라톤 130km 3위
▶ 2008년 2월 베트남 정글 마라톤 238km, 4월 북극점 마라톤 우승
▶ 2009년 8월 까미노 산티아고 807km, 8월 노스페이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 166km, 9월 고어텍스 트렌스 알파인 런 240km, 10월 남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 익스트림 마라톤 240km, 10월 인도 히말라야 100마일(166km) 런 3위
UTMB는 프랑스 <노스페이스>에서 개최하는 울트라 마라톤 대회다. 올해 5회째를 맞이한 UTMB는 여느 대회보다 오랜 전통을 자랑하진 않지만, 최근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로 급성장했다.

이 대회는 참가 조건도 매우 까다롭다. 일반 도로에서 달리는 마라톤 대회는 인정해주지도 않거니와 주최 측에서 인정하는 산악 트레일 런 대회 경력을 가진 선수만이 참가 할 수 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산악 마라톤이나 울트라 마라톤 대회 완주는 주최 측에서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한국 선수들이 참가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은 편이다.

대회는 UTMB 코스(166km, 9400m), CCC 코스(98km, 5600m), TDS 코스(105km, 6700m), 팀 릴레이 코스인 La Petite Trotte a Leon 코스(245km, 2만1000m) 총 4개의 코스로 나뉘어 진행된다. 매년 5000명이 넘는 선수가 참가하지만, 엄격한 심사 덕분에(?) 완주하는 선수는 50%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그중에 필자가 참가한 UTMB 코스는 166km를 46시간 안에 완주해야 한다. 총 누적 높이 9400m의 산을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해야 하고, 각 체크포인트 마다 제한 시간이 적용된다. 4개의 코스 중에 가장 힘든 코스라 할 수 있다.

대회 당일 현장에는 이미 많은 선수들이 출발 장소에 모여 있었다. 부지런히 참가 준비를 하는데 반갑게도 작년에 알프스와 사막 마라톤 대회에서 만났던 친구들도 볼 수 있었다. UTMB 코스는 다른 3개의 코스보다 늦게 출발한다. 기다리는 사이 친구들과 사진을 찍고 얘기를 나누는 동안 대회는 시작됐고, 발 디딜 곳 없을 정도로 마을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빼곡한 거리에는 선수들을 응원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 코스가 험난해 선수들 대부분이 스틱을 사용해 달리고 있다

예상치 못한 상황으로 힘들었던 레이스

드디어 UTMB 코스가 시작됐다. 산을 오르고 내리고 다시 마을들을 지나는 사이 날은 어두워졌다. 밤 12시가 넘도록 마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마치 자기 가족을 응원하듯 선수들에게 힘을 주었다. 그러는 사이 밤은 더욱 깊어갔고 새벽이 찾아오자 길게 이어진 랜턴의 불빛과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정적의 시간, 내 자신과의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그동안 세계 여러 나라의 대회에 참가했지만, 이번 대회는 정보도 부족했고 준비도 많이 미흡했다. 특히 다른 레이스처럼 생각해서 스틱을 준비하지 않았는데, 이 대회에 참가한 선수들 대부분은 스틱을 사용하고 있었다. 코스 자체가 스틱을 사용해야 할 만큼 체력소모가 컸기 때문이다. 랜턴도 너무 작은 것을 준비해서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밤새 거북이걸음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 고불고불 이어진 초원길을 따라 선수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초반에 오버페이스를 하면서 체력은 점점 더 떨어졌다. 게다가 랜턴 불빛도 약한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안개비까지 내려 앞은 더 보이지 않았다. 체력소모를 많이 해서 그런지 50km 지점인 레 사피유(Les Chapieux)에 도착해서는 현기증까지 생기면서 ‘레이스를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체크포인트에서 음식과 음료를 먹으면서 20분 넘게 쉬고 나니 몸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아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지만, 음식을 잘못 먹었는지 설사까지 하면서 가다 멈추기를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걷고 뛰기를 반복하는 동안 악몽 같은 밤이 지나갔다.

다행히 날이 밝아오면서 몸도 회복되어 갔고 알프스 산맥 사이로 태양도 밝게 떠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78km 중간 지점인 이탈리아의 꾸르마이어(Courmayeur)에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4시간이나 늦은 아침 9시가 넘어 도착하는 바람에 이미 상위권 진입에 대한 계획은 포기해야 했다. 그저 다치지 않고 즐기면서 완주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욕심을 버리고 나니 시간적인 여유도 생겼다. 힘들 땐 멈추거나 천천히 걸으며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 다음을 위해 간간히 코스에 대한 정보를 수첩에 적어 놓았다. 꾸르마이어에서 음식을 먹고 휴식을 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지만, 다행이 몸은 많이 좋아졌다. 꾸르마이어를 지나면서부터는 날씨도 맑아져 푸른 하늘과 알프스의 멋진 풍광을 실컷 눈에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특히 체크포인트인 에레나(Elena) 산장을 넘어 100km 지점인 그랑 콜 페레(Grean Col Ferret, 2537m)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이번 대회 코스 중 가장 높은 곳이었고 경사도 심했다. 모든 선수들이 정상을 향해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완주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었던 값진 경험

스위스의 작은 마을 라 페울에(La peule)를 지나 다음 체크포인트인 라 포울리(La Fouly)에 도착했다. 아주 작은 마을이었지만 주민들이 나와서 많은 응원을 해주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123km 체크포인트 지점인 샴펙스(Champex)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체크포인트에서는 충분한 음식과 음료를 지급하지만 환경보호를 위해 1회용 컵을 사용할 수 없다. 때문에 선수들 각자는 모두 개인 컵을 지참해야만 체크포인트에서 음료를 지급 받을 수 있다. 주최 측의 환경보호를 위한 세심한 배려가 인상적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주최 측에서 마련한 곳에서 무릎 마사지를 받으며 잠시 휴식을 하고 곧바로 레이스를 시작했다. 샴펙스를 지나면서 골인 지점까지 40km밖에 남겨두지 않았지만 Bovine(1987m), Catogne(2011m), Flegere(1877m) 3개의 산을 다시 올라야 해서 힘든 레이스는 계속됐다. 저녁쯤에 레이스를 끝마칠 걸로 예상해서 긴 옷을 꾸르마이어 체크포인트에 남겨두고 왔는데, 새벽이 되면서 날씨도 추워졌고 랜턴 건전지도 떨어져 예상치 못한 레이스가 이어졌다.

정신없이 산을 오르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사이 어느새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산 정상에 오르고 난 후에야 날이 밝아왔고 멀리 몽블랑 산맥이 보이기 시작했다. 햇살 쏟아지는 몽블랑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어 해가 떠오르기를 30여 분 기다리고 사진 몇 장을 찍고 난 후 골인 지점인 샤모니로 향했다. 골인 지점에는 아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고 있었다.

이번 대회에는 UTMB 코스 166km 2300명, CCC 코스 98km 1800명, TDS 코스 106km 1200명, PTL 코스 245km 60팀(1팀에 3명)이 참가했고, 완주한 선수는 51%였다. 대회 준비에 부족함이 많았는데, 완주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아마도 친구들과 마을주민들, 그리고 자원봉사자들의 응원이 없었다면 완주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 <노스페이스> 몽블랑 울트라 트레일 런의 전체 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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