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이애슬론, 태극마크의 무게
트라이애슬론, 태극마크의 무게
  • 글 이지혜 / 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6.12.26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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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EAL EXTREME

궁극의 한계, 극한(極限). 극한과 가장 가까운 종목은 두말할 것 없이 트라이애슬론이다. 매순간 포기하고 싶고, 힘들지 않은 순간이 없는 훈련을 견뎌내야 한다. 오로지 잔인한 초시계 하나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대한민국 트라이애슬론, 극한의 정점에 두 명의 국가대표가 있다.

오랫동안 알아 온 만큼, 서로를 소개해주시겠어요?
허민호(이하 허)
반갑습니다, 저는 허민호라고 합니다. 제 옆엔 트라이애슬론 국가대표 김지환 선수입니다. 지환이와 처음 만난 건 2004년, 중학교 2학년 때에요. 이후 대회마다 자주 만났고, 국가대표가 되며 본격적으로 같이 운동을 했죠. 지금까지 본 김지환은 노력 그 자체에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작은 성실함은 위대하고 과도한 성실함은 치명적이다. 지환이는 이 말의 산증인이라고 할 수 있어요. 보고 있으면 참 도움이 되는 고마운 친구죠.

김지환(이하 김) 안녕하세요, 저는 김지환입니다. 이쪽은 제 오래된 친구이자 라이벌이자 멘토이자 동료인 국가대표 허민호 선수입니다. 지금은 국가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죠. 사실 저는 우리가 만나기 훨씬 전부터 민호를 알고 있었어요. 어릴 때부터 워낙 실력이 좋아 유명했거든요. 어린 제게는 우상 같은 존재였죠. 많은 사람이 민호가 타고났다고 해요. 저 역시 그런 줄 알았죠. 하지만 가까이서 본 민호는 절대 타고난 게 다가 아니었어요. 철저한 노력형이죠. 오히려 타고났다는 말이 싫어서 더 독하게 훈련하는 거죠.

시즌이 거의 끝났다고 들었어요. 올 시즌은 어땠나요?
며칠 전 일본 대회를 끝으로 사실상 올 시즌은 종료됐어요. 지금이 가장 편한 시기죠. 처음으로 2주간의 긴 휴가를 받고 막 대표팀에 복귀했어요. 돌아보면 아쉽기도, 보람차기도 하지만 항상 후회는 있죠.

개인적으론 조금 힘든 해였어요. 리우올림픽에 나가지 못했거든요. 모든 조건이 충족된 상황에서 경기 중 자전거에 문제가 생겼어요. 모든 사람이 충격이었겠지만, 저 자신이 가장 충격을 받았죠. 아무 의지도 생기지 않더라고요. 트라이애슬론 인생에 가장 힘든 기억이었어요. 지금은 많이 극복했어요.

트라이애슬론은 사실 아직 낯설어요.
국가대표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철인 3종이라고 해야 알만큼 단어 자체도 낯설고요. 트라이애슬론 대회는 개인전과 단체전이 있어요. 개인전은 수영 1.5km, 자전거 40km, 달리기 10km를 완주해야 하죠. 단체전은 혼성 릴레이인데 4명이 각자 수영 330m, 자전거 6.6km, 달리기 1.6km를 완주해야 하는 경기에요.

대중화가 덜 되어 있는 게 사실이죠. 특히 가까운 일본에 비해 선수층도 너무 얇아요. 전국체전 같은 경우, 고등부와 대학, 일반부가 따로 있는데 트라이애슬론은 워낙 선수층이 얇아 한 번에 경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국가대표들이 동호인과 같은 경기를 뛰는 거죠. 학교팀이 많이 생겨야 해요. 저 역시 학교 팀이 없어서 육상부와 함께 고등학교 시절을 지냈어요.

성적이 모든 과정을 말해주는 스포츠, 트라이애슬론은 유난히 힘들 것 같아요.
말 그대로 극한이죠. 한계를 뛰어넘어야 해요. 누군가 언제 가장 힘드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항상”이라고 말해요. 말 그대로 훈련은 항상 힘들어요. 이 고통을 정말 겪어야 하는지 매번 마음속으로 되뇌어요. 하지만 대답은 늘 같죠.

만일 누군가 언제 가장 행복하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좋은 성적이 나왔을 때”라고 입을 모을 거에요. 좋은 성적은 힘든 훈련을 보상해주니까요. 그래서 간혹, 열심히 노력했는데 성적이 나오지 않을 때, 좌절하고 정말 포기하고 싶어지죠.

포기하고 싶었던 적 있었나요?
고등학교 시절엔 많았어요. 저는 어릴 적 수영으로 운동을 시작했고, 초등학교 3학년 이후 수영과 달리기를 하는 아쿠아애슬론으로 변경했어요. 이후 고등학생 때는 학교에 트라이애슬론부가 없어 육상부와 함께 훈련하고 합숙했죠. 함께 트라이애슬론을 하는 선수가 없었어요. 좋은 환경이라곤 할 수 없었죠. 그래서인지 성적도 잘 나오지 않았어요.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력한 만큼 성적이 보상을 해주다 보니, 점점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어요. 지금은 전혀 그런 생각이 없어요.

잠시 말했듯 올해 리우올림픽이 좌절되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생겼어요. 5살 때부터 트라이애슬론을 하며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어요. 하지만 리우올림픽이 좌절된 당시 올 시즌은 반 이상 남아있었죠. 아무것도 하기 싫더군요. 대회도 나가기 싫었어요. 지난 런던 올림픽엔 출전했지만,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어요. 이후 4년을 피땀 흘리며 노력했는데, 한순간의 실수로 다시 4년을 보내야 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어요. 다행히 코치님과 동료 선수들 덕분에 힘을 내서 시즌을 마칠 수 있었죠.

힘든 운동인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가 있을 것 같아요.
사실 힘든 운동이라 특별한 자기관리가 필요 없어요. (웃음) 무슨 말이냐면, 숙소에 있으면 5시 30분에 일어나 8시까지 새벽 훈련, 9시 30분부터 12시까지 오전 훈련, 2시부터 6시까지 저녁훈련이에요. 여기에 가끔 7시 30분부터 9시까지 야간훈련이 있죠. 워낙 훈련 강도가 높아서 저절로 자기 관리가 돼요. 놀 시간은커녕 훈련이 끝나면 녹초가 되니까요. 비시즌 주말엔 집으로 가는데, 토요일도 모든 훈련을 다 소화하고 가요. 집에 가도 자기 바쁘죠.

특히 이곳 진천선수촌은 주위에 아무것도 없어서 운동에 집중하기 좋아요. 밥 잘 나오고, 트레이너 있고, 마사지도 받을 수 있는데 뭐가 더 부족하겠어요. 와이파이까지 있는 걸요. (웃음) 단, 심폐지구력 운동인 만큼 술이나 담배는 저절로 멀리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건 딱히 신경 써서 관리하지 않아요.

운동하지 않을 땐 주로 어떻게 쉬나요?
보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러 가거나 극장이나 집에서 영화를 봐요. 집에 가만히 누워 있는 것도 좋아해요. 워낙 신체 에너지를 많이 쓰는 운동이라 아무것도 안 하고 쉴 때가 많아요.

저는 좀 반대예요. 제 시간이 나면, 최대한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에요. 스키 타는 걸 좋아해서 겨울엔 시간 날 때마다 스키장을 가요. 축구도 좋아하고요. 맛집을 찾아다니기도 해요.

가장 친한 동료치곤, 성격이 다르네요. 싸우진 않나요?
특별히 싸운 적 없어요. 지금 트라이애슬론 대표팀은 12명이에요. 그중에 저희가 맏형들이죠. 그래서 그런지 싸우기보단 팀을 잘 이끌어 나가려고 노력해요. 제가 주장인 만큼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줘야 하니까요. 그런 점에서 지환이는 든든한 조력자죠.

사실 기분 나쁜 일이 있어 봤자 매일 얼굴 보고 훈련하다 보면 그것도 잊어버리게 마련이에요. 오랜 기간 같이 땀 흘리다 보면 끈끈한 전우애가 생기죠. 함께 상무 시절까지 보냈으니까요. 저를 독려하는 원동력이에요.

트라이애슬론의 매력을 꼽아주세요.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자연과 가장 가까이할 수 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맑은 물에서 수영하죠, 자연과 가까이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 타죠, 다양한 길을 뛰니까요. 자연과 친할 수밖에 없죠.

훈련뿐만 아니라 경기를 뛰러 가도 항상 배경 바뀌잖아요. 그 매력이 엄청나요. 다른 운동은 대부분 같은 배경인데 반해, 트라이애슬론은 경기나 시합이 계절마다, 장소마다 그 색을 달리해요.

지금까지 경기했던 곳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요?
스위스 로잔이요. 알프스 산맥을 끼고 경기를 치러요. 기록에 모든 걸 쏟아붓고 있으면서도 펼쳐진 배경이 아름다워 잊을 수가 없어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꼭 가보고 싶어요. 또 런던을 꼽고 싶어요. 아름다운 자연환경보다는 관중의 환호가 더 기억에 남아요. 트라이애슬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열정적인 호응에 행복하면서도 한편으론 부러웠어요.

맞아요. 영국이 워낙 트라이애슬론 강국이라 그렇겠지만, 한국도 빨리 대중화가 되어서 열정적인 관중 응원을 받으며 경기를 치르고 싶어요. 저 역시 기억에 남는 곳을 꼽으라면 지환이와 함께 뛰었던 스위스 로잔에서의 대회예요. 알프스의 맑은 호수와 길을 건너는 경험은 이 운동이 아니면 하기 어렵죠.

선수로서, 혹은 장기적인 목표가 있다면요?
일단 다음 도쿄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위해 훈련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나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비시즌도 열심히 하고 있죠. 개인적으론 고등학생 시절을 그렇게 방황하고 나니 선수 생활이 끝난다면 선수 육성에 힘쓰고 싶어요. 특히 저와 함께 트라이애슬론을 했던 재능 있는 선수들이 환경의 벽에 막혀 운동을 그만두는 것을 자주 봤어요. 안타까운 선수들이 많았죠. 학생 선수를 위해 지원하고 싶어요. 저처럼 힘들게 방황하는 트라이애슬론 선수가 없었으면 해요.

저 역시 올해 리우올림픽의 아픔을 빨리 잊고 다음 올림픽에 도전할 거예요. 사실상 마지막 올림픽 도전일 수도 있으니 모든 걸 쏟아부어야죠. 트라이애슬론이 더 대중화되면 좋겠어요. 트라이애슬론을 아시는 분도 수영-자전거-달리기 순서는 잘 모를 정도로 아직은 부족한 게 많아요. 그런 만큼 저는 선수로서 끝까지 뛰고 싶어요. 나이가 들어 국제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거나 태극마크를 내려놓아야 할 시간이 오겠죠. 그때는 국내 대회라도 계속 뛸 거예요. 달릴 수 없을 때까지 달려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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