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첫 발을 내딛다
아프리카에 첫 발을 내딛다
  • 글 사진 정효진 기자
  • 승인 2016.12.21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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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자의 지구별 자전거 여행

여자 혼자 아프리카 자전거 여행이 가능할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인터넷으로 아프리카 여행한 사람들을 검색한 후 이메일을 보냈다. 대부분의 여행자가 내가 라틴아메리카에서 잘 살아남았으니, 아프리카도 조심한다면 괜찮을 거라고 응원을 보내왔다. 그들의 응원에 힘이 났다.

도착하자마자 강제 추방?
먼저 비행기 표를 구해야 한다. 목적지는 남아공. 브라질에서 출발하는 항공료는 무려 140만 원이다. 시작부터 금전적 압박이 심하다. 아프리카에선 돈이 떨어질 때까지 달려야겠다.

동부 쪽으로 달릴 계획이다. 대부분 여행자가 동부를 지난다. 비자 발급이 서부보다 훨씬 쉽고,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날씨도 덜 습하다. 모든 면에서 동부가 나았다.

아프리카에서 펭귄 구경을 했다.

두려움과 설렘을 가득 안고 브라질 상파울루 공항에 갔는데, 직원이 표를 줄 수 없단다. 남아공에 입국하기 위해선 국제 황열병 예방접종 증명서가 필요한데, 내가 콜롬비아에서 얻은 황열병 증서로는 부족하다는 게 이유였다.

비행기를 이대로 날릴 순 없다. 직원에게 간곡히 부탁했다. 고민하던 직원은 내게 “국제 황열병 증명서가 없으면 남아공에 입국하자마자 강제 추방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으십니까?” 물었다. 내 대답은 당연히, “물론이죠.”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비행 내내 예방접종 증명서가 마음에 걸렸다. 긍정적인 생각만 하려고 노력했다. 큰 모험이 분명했다.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니, 걱정했던 것이 민망할 정도로 별문제 없이 입국 도장을 받았다. 새해를 비행기 안에서 보내는 특별한 경험을 했고, 시작부터 긴장감이 넘쳤지만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건축가 현지인과 함께 방문한 학교의 학생들.
매우 잘 발전되어있던 남아공 도시.

남아공 암흑의 역사
남아공의 케이프타운에 가면 꼭 해야 할 일이 있다. 바로 펭귄을 보는 거다. 남아공 펭귄은 북극 펭귄보다 아주 작고 귀엽다. 시내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펭귄을 보러 가려면 기차를 타야 한다. 기차는 1등석과 2등석으로 나뉜다.

남아공에선 코카서스인(백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코카서스인의 역사는 15세기 유럽인이 남아공에 처음 오기 시작하면서부터다. 17세기엔 네덜란드 농민이 정착했다. 19세기 초 영국인이 넘어왔고, 20세기가 되자 영국이 네덜란드와의 전쟁에 승리했다. 그렇게 남아공은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한다.

아프리카 일주일 만에 마주한 빈민촌.

영국은 1948년, 이곳에 이상한 정책을 만들었다. 바로 원주민 아프리칸 분리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다. 아파르트헤이트로 인해 원주민은 코카서스인과 학교가 나뉘는 등 사회에서 완전히 격리된다. 인권도 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1994년 넬슨 만델라가 첫 원주민 아프리칸 대통령이 된 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은 폐지됐다. 하지만 펭귄을 보러 가는 기차 안, 1등석과 2등석의 구별이 아파르트헤이트의 잔여물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친절한 현지인에게 초대받아 사파리 구경을 했다.

여기가 진짜 아프리카라고?
케이프타운을 떠나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는데, 도시 풍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놀랄 만큼 발전되어 있었다. 왜 TV에서는 한 번도 이런 아프리카 풍경을 보여주지 않은 거지? 아니면 내가 미쳐 못 본 걸까? 마치 북미권에 와있는 느낌이다.

아스팔트 도로가 잘 포장되어 있고 건물들은 현대식으로 깔끔한 모습이다. 집집마다 정원도 꾸며져 있다. 집들이 너무 좋아서 차마 그들의 마당에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어보기 쑥스러울 정도다. 그래서 처음엔 경찰서에 텐트를 쳤다. 더욱 놀란 건 운전석이 오른쪽이란 것. 이것 역시 영국 식민지의 영향이다. 초반엔 무의식적으로 반대편으로 달리다 몇 번 고생했다.

하룻밤 텐트 칠 곳을 제공해준 경찰들.
꼬리가 몸통의 세 배나 되는 새를 봤다.

일주일간 자전거를 타며 느낀 건, 아프리카에 와 있다는 느낌이 안 든다는 거다! 길에서 내게 도움 준 사람들 대부분은 코카서스인이었다. 낮에는 덥지만, 밤에는 쌀쌀하다 못해 추웠다. 샤워할 때 뜨거운 물은 필수다. 오히려 중미에선 샤워할 때 찬물이 필수 사항이었다.

TV를 통해 봐왔던 아프리카의 이미지는 일부였나 보다. 실제로 와보니 여러 면이 공존해 있었다. 남아공이 아프리카에서 잘 사는 나라이기도 하고, 내가 안전한 곳만 찾다 보니 빈민가에 갈 일이 없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TV에서 보지 못한 다른 면을 볼 수 있었다. 와보길 잘했다.

최고급 골프 리조트에 초대받기도 했다.

자전거로 지나기엔 무서운 나라
아프리카에 도착한 지 일주일 만에 빈민촌을 만났다. 도시와는 한참 멀었다. 빈민촌은 위험하니 들어가지 말라는 조언을 들어서 멀리서 사진만 찍었다. 주변엔 농장이 자주 보였다. 나중에 유명한 포도밭을 지났다. 최근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임금 문제로 파업했다. 그들의 하루 임금은 약 80랜드(10달러)다. 파업은 하루 임금을 120랜드(15달러)로 인상하기 위해서였다.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려 했지만, 분위기가 심상찮다. 남아공은 전 세계 범죄 발생률 9위다. 넬슨 만델라 이후 정치권이 타락하기 시작하며 일부 아프리칸이 코카서스인을 상대로 살인과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대한 뒤늦은 복수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거의 매일같이 나를 초대해 준 코카서인 가족.

많은 코카서스인은 각종 범죄에 노출돼 두려움에 떨며 살고 있다. 내가 머문 한 코카서스인 집에는 안방 앞에 감옥처럼 철창이 있다. 잠잘 땐 안전을 위해 철창문을 잠근다. 대부분이 안전을 위해 총을 소지하고 있다. 미국과 다른 점은 사람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총기 사건이 별로 없다는 정도다.

사자 농장에 초대받았다.

남아공은 일자리 부족과 저임금 문제가 심각하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뉴질랜드나 호주, 영국 이민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많은 젊은이가 한국에 영어 강사를 하러 간다. 이곳에서 만난 한 사람의 딸은 법대를 다니고 있었는데, 등록비가 부족해 한국으로 넘어가 3년째 영어 강사 생활을 하고 있다. 비행기 표가 비싸서 3년 동안 한 번도 딸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면 일부 구간은 특별히 더 위험해 보였다. 범죄를 경고하는 표지판이 심심찮게 보였다. 어떤 표지판에는 ‘이 구간에서는 차 강도가 많으니 차를 멈추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기도 했다. 자전거를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야 하나? 어쩔 수 없이 평소 속도로 달렸다.

밀렵꾼들에 의해 코뿔소가 위기에 처했다.

당신은 왜 이렇게 친절합니까?
아프리카 생활 둘째 주부터는 코카서스인들에게 항상 초대받아 집 안에서 잤다. 여러 나라를 여행해봤지만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은 처음 본다.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으면 집 안에서 자라며 방을 내줬다. 맛있는 저녁 식사도 초대해줬다. 심지어는 다음 동네에 사는 사람에게 전화해 잠잘 곳을 대신 찾아주기도 했다. 덕분에 매일 같이 쉽게 안전한 잠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자전거를 타다 보면 가끔 지나던 차가 서서 내게 물을 주거나 질문을 던진다. 돈을 주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한 골프클럽 사장은 자신의 호텔에 초대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코카서스인이었다. 왜일까?

코카서스인의 뿌리는 네덜란드 농부다. 자연스럽게 도시가 아닌 농장에서 사는 사람이 많다. 대부분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신앙심이 강하다. 추측하건대 이들이 친절한 이유는 지리적으로 자연스러워진 손님 접대 문화와 독실한 신앙심이 어우러진 게 아닐까. 한 번은 이들에게 왜 이토록 친절하냐고 묻자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식사시간이 되면 항상 빈 접시를 식탁 위에 올려두셨어. 혹시 모를 손님이 올까 봐”라고 대답했다. 문득 한국의 집이 떠올랐다. 우리 어머니 역시 항상 주스를 사다 놓으셨다. 혹시 모를 손님이 올까 봐.

코카서스인 덕분에 위험하다는 남아공 자전거 여행이 참 쉬웠다. 당연히 부작용도 있었다. 친절한 사람을 만날수록 헤어지는 슬픔이 커졌다. 그들과 헤어질 때마다 눈물을 몇 번이나 쏟았는지 모른다. 코카서스인은 내 여행에 있어서 특별한 사람들이다.

코카서스인 집에 머물다가 사자 농장에 초대받아서 사자를 구경한 적도 있다. 어떤 날에는 사파리에 초대받아 아프리카에 온 기분을 만끽하기도 했다. 코뿔소도 가까이서 구경 했다. 당시엔 몰랐지만, 코뿔소 구경은 쉽지 않은 것이었다. 일부 아시아 갑부들이 코뿔소의 뿔을 불법으로 잘라 코뿔소가 위험에 처해 있다. 코뿔소의 뿔을 갈아 먹으면 건강해진다는 미신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코뿔소의 뿔을 갈아 먹는 건 손톱을 갈아 먹는 것과 똑같은 효과라고 한다. 밀렵꾼을 고용한 그들에게 코뿔소 뿔 대신 손톱을 갈아 먹으라고 추천해주고 싶다.

학교에 초대받아 아이들과 즐겁게 지냈다.

아프리카의 또 다른 면
하루는 학교에 초대받았다. 아이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들려줄 기회가 생겼다. 40대 이상의 남아공인의 경우, 원주민 아프리칸과 코카서스인 아프리칸은 서로를 굉장히 증오한다. 하지만 내가 방문한 학교는 모두 함께 어우러져 수업을 받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 중 하나는 아이들 대부분이 신발을 신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TV가 보여주는 가난한 이미지와는 달랐다. 원주민 아프리칸 뿐만 아니라 코카서스인 아이들도 신발을 신고 있지 않았다. 햇볕이 내리쫴 돌이 매우 뜨거웠는데 아기 때부터 맨발로 다니다 보니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겨 맨발로 다니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TV는 시청률을 위해 자극적인 빈민촌 영상만 방송했던 건 아닐까?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TV에선 볼 수 없던 또 다른 아프리카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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