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웃도어로 생각하는 것들
아웃도어로 생각하는 것들
  • 김영도 원로산악인
  • 승인 2016.11.28 13: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OUTDOOR COLUMN

TV 뉴스에 이따금 한미 합동훈련 장면이 나온다. 미군 병사들이 큼직한 짐을 지고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모습이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짐을 지고 있을까. 나는 그때마다 지난날 6.25 전란 때를 눈앞에 그리곤 한다.

그들의 짐은 오직 야전용 장비들임이 틀림없다. 싸우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도구들일 것이다. 병사들은 손에 든 소총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는가. 나는 1950년 6·25전쟁 초전 3개월을 야전 한가운데서 살아서 그것을 잘 안다.

당시 나는 학도병 중대 분대장으로 오직 야외에서 살았다. 가진 것이란 철모와 MI 소총뿐, 그 밖에 아무 것도 없었다. 식기도 수통도 없었고, 매일 때가 되면 주먹밥 한 덩어리를 손으로 받아 그대로 입에 넣었다. 소금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 3개월 동안 한 번도 비가 오지 않았다는 것. 비가 왔으면 우리는 비옷도 없이 그대로 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국군은 쫓기고 쫓겨 경주 가까이까지 밀려 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눈앞에 난데없이 들판에 엄청난 쓰레기 더미가 나타났다. 미군이 있다가 후퇴한 자리였는데, 그 쓰레기는 다름 아닌 그들의 야전 식량 C레이션의 잔재였다. 나는 말로만 듣던 그 C레이션의 쓰레기를 뒤졌다. 혹시 설탕이나 코코아 같은 것이 없을까 했는데, 눈에 띄는 것은 플라스틱 스푼과 깡통따개뿐이었다. 6.25 전쟁 때 서부전선은 미군이, 중부에서 중동부 일대는 모두 한국군이 맡았기 때문에 우리는 같이 싸우면서 그들을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밀려 모두 낙동강 주변으로 몰리면서 미군이 우리 뒤에 왔던 모양이다.

이때 나는 그들의 C레이션 쓰레기에서 미군의 야전 생활을 연상했다. 우리는 소총 외에 가진 것이 없었는데 그들은 없는 것이 없었다. 침구와 취사도구와 막영구가 있었다. 이른바 닭털 침낭과 콜맨 가솔린 스토브에 메스킷과 컵이 달린 캔틴(수통)이 있었다. 판초라는 우비와 A텐트가 있었다. 이 밖에 또 무엇이 필요했겠는가. 그러니 그들의 짐은 컸고, 그들의 야전 생활은 요새 말론 바로 아웃도어 라이프나 다름없었다고 나는 본다.

나는 낙동강 전선에서 격심한 방어전과 공격전을 치르고 많은 동료 학도병을 잃었다. 동생과 기숙사 친구들도 죽고 나 혼자 남았다. 그리고 이어서 인천상륙작전에 투입되어 서울로 진격, 9.28 수복을 맞았는데, 그때 중대장이 너는 살아서 대학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전투부대에서 빼주었다. 그길로 나는 통역장교가 되어 다시 일선에 나갔는데, 그때는 미군 고문관 장교들과 같이 생활하게 됐다.

당시 일선은 국부적 접전은 있었으나 대체로 전선이 교착상태여서 미군 장교들은 마치 야외에 놀러 나온 것 같았다. 그들은 큰 천막에 저마다 간이침대를 놓고 그 위에 에어매트리스와 담요 또는 침낭을 깔고, 여름에는 개인용 모기장까지 쳤다. 나는 한국군 장교로 쌀가마 위에서 그대로 잤다. 그들의 식사는 C레이션이 아니고 사단 사령부에 가서 탁보를 씌운 식탁에서 제대로 식사를 했다. 당시 그들의 생활은 종일 커피를 마시며 잡담하거나, 각자 침대에 누워 책을 읽으며, 콜라와 캔맥주를 즐겼다.

내가 그들과 같이 있으며 덕을 보았던 것은 그들이 읽고 버린 책들이 내 것이었고, 나도 나대로 커피를 끓여 마실 수가 있었다는 것일까. 이때 잊히지 않는 것은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와 「개선문」, 그리고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는가」 등을 내 것으로 한 일이다. 나는 이런 책들을 박격포탄 나무상자에 넣고 미군 장교의 지프로 전선을 이동했다.

새삼 미군 장교와 한국군 장교를 비교할 일도 아니지만, 그런 속에서 나는 치욕감이나 불쾌감은 없었고, 오히려 대학생으로 우리나라 싸움에 자진해서 뛰어들었다는 자부와 긍지를 가지고 있었다.

6·25때 미군이 쓰던 콜맨 스토브와 닭털 침낭과 수통은 오랫동안 우리들 산악인의 절대적인 등산 장비였다. 오늘날은 가스스토브와 우모제품 등 남부럽지 않은 우수한 장비들이 나왔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은 당시의 상황을 감히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나는 지난날 에베레스트와 그린란드라는 황무지를 체험했지만, 당시 우리나라 사회상은 겨우 전근대성에서 벗어나려고 하던 무렵으로 모든 것이 부족하고 살기에 불편했다. 그러나 당시 산악인들은 조금도 불만이나 불편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이렇게 살아온 내가 지금 가장 소중히 여기고 있는 것이 있다. 군용 침낭 커버와 매트리스다. 모두 군용답게 내구성이 뛰어난데, 굳이 흠을 잡는다면 다소 무겁고 부피가 나간다. (나는 이 침낭 커버와 매트리스를 깊은 산중에서 홀로 비박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사람들은 아웃도어에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누구나 차를 가지고 있고, 없는 것이 없는 세상이니 그런 준비가 가능하고 재미도 난다. 그러나 등산가로 살아온 나 자신은 언제나 큼직한 배낭 하나로 만사를 해결한다는 것이 원칙이다. 아웃도어는 휴식이 첫째 목적이지만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을 벗어나 자연 속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일이며, 그 시간이나마 인공을 벗어나 야성(野性)을 맛보는 일이다. 사람들은 캠핑카를 부러워하지만 아웃도어라면 첫째가 텐트고, 둘째도 텐트다. 식사도 지지고 볶는 것보다 간편한 레시피가 제격이다. 미군용 C레이션이야말로 이런 때 가장 알맞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늦도록 모닥불 앞에서 오순도순 이야기하다 밤이 깊어 천막에 들어가 침낭 속에서 단잠을 잔다. 그리고 아침 눈뜨자 가스스토브에 커피부터 끓인다. 아웃도어가 절정을 맞는 순간이다.

TV 스크린에 비치는 이 야전군 병사들의 큼직한 짐에서 나는 언제나 그 속에 어떤 것들이 들어있을까 궁금하다. 필경은 야전 생활에 필요한 잡다한 물건들이겠지만, 그것이 반세기 전보다 얼마나 개량되고 어떤 새로운 아이템이 생겼을까 관심이 간다.

등산은 스포츠가 아니라 삶의 방법이라고 한 선구자가 있는데, 등산이야말로 아웃도어 라이프의 프로토타입인 셈이다. 의(衣)와 식(食)과 주(住)라는 생활의 3대 요소를 큼직한 배낭 하나에 꾸리고 야외로 나가, 사회의 번잡과 간섭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언젠가 친구랑 셋이서 늦가을 내설악을 갔다. 길을 헤매다 날이 저물어 숲 속에 천막을 쳤다. 바람이 강했으나 달이 좋았다. 천막에 나뭇가지 그림자가 흔들렸다. 다음날 우리는 귀때기에 올랐다가 길 없는 데를 뚫고 쉰길폭 쪽으로 내려왔는데, 숲 속에 작은 호수 같은 곳이 나타났다. 우리는 짐을 내려놓고 커피부터 끓였다. 물론 원두커피다.

바람도 잦고 주위가 고요했으며, 적막강산이 따로 없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펜심포니가 들려오는 듯했다. 나는 가본 적 없는 캐나다의 로키 숲 속 호수를 머리에 그렸다. 또한, 독일의 본바겐(캠핑카)을 끌고 알프스 산록을 달리다가 알펜로제 등 야생화가 만발한 고소 목초장에서 일박하는 장면을 연상했다.

오늘날 아웃도어 세계는 넓으며, 젊은이들은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꿈이다. 지금 우리 주변에는 오토캠핑이 유행이지만 캠핑장은 너무나 인위적이고 사람들로 붐빈다.

20세기 초엽, 조지 오웰의 「1984」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책이 크게 화제가 된 일이 있는데, 그것들은 과학기술 문명이 지배하는 우울하면서도 상상을 넘은 인간의 미래상을 그렸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바로 그 속에 살며 생의 위협을 받아 도망하려고 한다. 그렇다고 이 지구촌을 벗어날 길은 없다. 아웃도어가 현대적 의미를 가지는 까닭이다. 아웃도어란 필경 사람들이 그리워하는 마음의 고향인 셈이다.

김영도 원로 산악인
1924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 1950년 6·25 자원 입대.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출. 1977년 대한산악연맹 회장 취임.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 1978년 북극 탐험. 1980년 한국등산연구소 개소. 저서, 1980년 <나의 에베레스트>, 1995년 <산의 사상>, 1997년 <등산시작>, 1990년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2000년 <하늘과 땅 사이>, 2005년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2007년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2009년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 등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