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를 싣고 아프리카로
아메리카를 싣고 아프리카로
  • 글 사진 정효진 기자
  • 승인 2016.11.23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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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자의 지구별 자전거 여행

우유니 사막을 끝으로 고산 자전거 여행이 끝났다. 남쪽으로 내려온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아스팔트를 녹일 듯한 더위와 지독스런 모기였다. 달라붙은 모기를 쫓아내려다 가시덤불에 엉켜 넘어졌다. 넘어지며 눈 밑에 커다란 상처까지 생겼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얼굴이 아파져 왔다. 모기는 지옥까지 쫓아올 것 같았다. 가시덤불에 긁혀 온몸이 간지럽고 따가웠다. 어쩔 수 없이 지나가는 차 한 대에 도움을 청했다. 운전자가 크림을 줘서 온몸에 발랐다. 창문 사이로 찬바람이 불어오니 그제야 간지럽던 곳들이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경치의 차코 숲.

대통령 선거를 위한 전력질주
이민국은 대부분 국경 사이에 있다. 그런데 볼리비아 이민국은 국경 60km 전에 있었다. 심지어 너무 낡은 건물에 그냥 지나칠 뻔했다. 더 당황스러운 건 파라과이 이민국이다. 국경을 넘은 후 230km를 더 달려야 했다. 입국 스탬프 없이 계속 달려야 한다는 사실이 마치 불법 입국이라도 한 것 같았다.

18대 대통령 선거를 어디서 해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 파라과이로 결정했다. 파라과이 북쪽에는 차코라는 큰 숲 지대가 있다. 엄청나게 다양한 생명체가 살아 숨 쉬는 곳이지만, 내가 숨쉬기에는 너무 힘들었다. 인구는 5,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45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서 모기, 벌레와 추격전을 뚫고 선거 날짜에 맞춰 도착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더위를 피해 하룻밤 쉬었던 군부대.

파라과이 수도 아순시온 가는 길엔 지옥의 모기가 없기를 바랐다. 온몸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략 200방 넘게 물린 거 같다. 국경선을 넘고 다음 날, 한 시간을 달렸을까? 모기들이 온몸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지옥 같은 시간이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지나가는 차에 구조됐다. 현지인 도움으로 이민국에 도착했다. 친절한 이민국 직원이 하룻밤 건물 처마 밑에 텐트를 치도록 해줬다.

다음날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차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나에게 괜찮냐며 물었다. 이런 적이 전에 딱 한 번 있었다. 미국 사막 지역 지나갈 때도 쉬고 있으면 차들이 멈춰서 괜찮냐 묻곤 했다. 아무래도 건강이 위험해질 수 있는 극단 기온에 있나 보다. 큰 나무가 없어서 그늘도 없었다. 풀숲으로 들어가면 모기에게 테러당할 게 뻔하다. 갓길이 없어 길 중간에 앉아 쉬기도 쉽지 않다. 아스팔트는 너무 뜨거워 발바닥에 화상을 입을 거 같아 오래 서 있을 수 없었다.

고생 끝에 83km를 달려 드디어 첫 마을을 발견했다. 마당이 넓은 곳이 보이기에 들어갔더니 군부대였다. 친절하게 하룻밤 머무는 걸 허락해줬다. 텐트를 치려고 하자 벌레 때문에 위험하다며 실내에서 자라고 공간을 내줬다. 화장실엔 수십 마리의 벌레가 있었다. 벌레를 헤치고 우물에서 퍼온 물로 샤워했다.

모기를 피하려다 가시덤불에 자전거와 함께 넘어졌다.

다음날부터 가끔 슈퍼가 보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얼음을 사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그 이유는 바로 테레레Terere라는 차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것을 마테차라고 부른다. 차이점은 아르헨티나에서는 뜨겁게 마시고, 파라과이에서는 차갑게 마신다는 것.

파라과이에서 테레레 사랑은 정말 최고였다. 거의 모든 사람이 보온병을 들고 다니는데, 보온병 안에 얼음과 물을 넣어 차가움을 유지한다. 컵 윗부분에는 차를 넣을 수 있고 아랫부분에는 차를 통과한 물이 남게 된다. 보온병에 있는 차가운 물을 컵에 따른 후 끊임없이 마신다. 빨대가 컵 밑으로 연결되어 차를 마실 수 있다

차코지역의 풍경은 정말 멋있었다. 차를 타고 간다면 아마 차코를 환상적인 곳이라고 썼을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 여행을 하다 보니 현실은 인간이 생존하기 힘든 곳이란 걸 깨달았다. 며칠을 더위, 모기와의 싸움 끝에 드디어 파라과이 수도에 시간 맞춰 도착했다.

투표날짜에 제때 맞춰 도착했다는 기쁨과 힘든 차코 지역을 7일 만에 무사히 지나쳤다는 성취감에 너무 행복했다. 투표 장소는 대사관이 아닌 한국 학교였다. 학교가 예상과 달리 매우 컸다. 뜻밖에 투표소에 많은 사람이 보였다. 국회의원 때와 마찬가지로 여권을 보여준 뒤 지문 기계에 엄지를 갖다 대면 직원이 투표용지를 준다. 이후 봉투에 붙일 주소가 프린트되어 나온다. 최대한 신성한 기를 모아 투표했다.

넘어지며 눈 밑에 큰 상처까지 입었다.

자전거가 배수로에 빠진 날
아순시온을 떠나는 날 아침, 비가 많이 내렸다. 배수시설이 열악한 파라과이 수도를 빠져나가는 것은 마치 물살이 강한 강을 건너는 것과 같다. 인도가 끝나는 지점이 보여서 차도로 이동하려는데, 발을 내딛는 순간 배수로에 몸 전체가 빠져버렸다. 머리부터 물속에 거꾸로 몸이 잠기는 바람에 공포감이 밀려왔다. 다행히도 물은 허리까지만 왔었다. 자전거도 함께 빠졌는데 자전거가 너무 무거워 혼자 힘으로 들어 올리는 게 불가능했다.

중남미에서 가장 친절한 나라를 꼽으라면 콜롬비아와 파라과이였다. 파라과이를 여행하며 좋은 사람을 많이 만났지만, 하필 이 순간만큼은 누구도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비가 많이 와서 인도를 걷는 사람도 없었고, 나를 도와주려면 차에서 나와야 했었는데 비가 많이 와서 다들 출근길을 재촉하는 중이었다.

45도 무더위에 달리다가 얼굴이 까맣게 익어버렸다.

10분을 넘게 기다린 후에 한 현지인이 자전거를 함께 들어줬다. 자전거 한쪽이 완전 물에 잠겼는데 다행히 침수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후 계속 비를 맞아 결국 가방 안이 다 젖었다. 방수가방인데도 비가 많이 오면 항상 안이 젖는다. 다음날엔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했다. 배수로에 빠진 충격이 강한 햇볕에 조금씩 말라갔다.

파라과이 남쪽은 북쪽과는 달리 많이 덥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의 친절한 초대가 계속되었고 테레레를 즐겨 마시는 모습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파라과이에는 황소 마차가 유명하다. 큰 황소를 자주 마주치는 것도 꽤 재밌었다.

현지인들의 삶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브라질 국경에 도착했다. 사실 브라질은 내 예상 목록에 없는 나라였다. 투표 때문에 경로가 크게 수정됐다. 또 돈이 충분치 않아 아메리카 여행을 계속하게 되면 아프리카 여행을 못 할 것 같아 급하게 이곳을 정리하게 됐다. 배 안에서 일하면서 무료로 아프리카로 건널 수 있는 크루저와 화물선을 알아봤지만, 원하는 배를 찾지 못해서 결국은 비행기를 타기로 했다.

브라질에서 바라본 이구아수 폭포.

이구아수폭포를 만나다
볼리비아-파라과이 국경과는 달리 파라과이-브라질 국경은 상가 밀집 지역이다. 사람들과 차로 매우 복잡했다. 이곳은 세계에서 홍콩 다음으로 거래량이 많은 곳이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물가가 비싸지만, 파라과이는 상대적으로 싼 물가에 세금이 면제라 쇼핑을 위해 많이 찾는다. 브라질을 가기 위해 다리를 넘었는데, 오토바이와 택시가 너무 많아 자전거로는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였다.

국경에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돈을 환전했다. 이구아수폭포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양쪽에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에서 보이는 이구아수폭포부터 감상할 예정이다. 나이아가라폭포는 다리만 건너면 양쪽에서 볼 수 있는데 이구아수폭포는 버스를 타고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입장료도 있다. 각각 20달러 정도. 대신 숲길을 걸을 수 있고 기차와 버스도 마음껏 탈 수 있다.

파라과이 사람이라면 꼭 들고 다니는 테레레.

아르헨티나에서 보이는 이구아수폭포는 나이아가라폭포와 달리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그래서 폭포를 볼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그 중 유명한 포인트가 악마의 목구멍이란 곳이다. 이름에 걸맞게 무시무시한 곳이다. 마치 폭포 속으로 영혼까지 빨려 들어갈 것 같다. 넋을 놓고 바라봤다. 악마의 목구멍에서는 엄청난 물량이 아래로 흐른다. 블랙홀 같다.

나이아가라폭포와는 달리 이구아수폭포는 근처에 있는 것만으로도 흠뻑 젖는다. 나를 비롯한 모든 관광객은 다들 한 차례 비 맞은 것처럼 옷이 홀딱 젖었다. 종일 폭포를 구경했다. 풍부한 물과 햇살 덕분에 폭포 주변에 큰 숲이 조성되어 있다. 여러 동물을 볼 수 있어 좋았다.

다음날은 브라질 쪽의 이구아수폭포를 구경했다. 브라질에서는 좀 더 넓은 시각으로 볼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폭포가 병풍처럼 나누어져 있는 대신 가까이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브라질에서는 한 눈에 긴 폭포를 볼 수 있는 대신 조금 멀리서 바라봐야 한다. 아르헨티나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라면, 브라질은 천국의 폭포를 보는 기분이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폭포 안에 새 둥지가 있는데, 새들이 폭포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장면이었다. 마치 내셔널지오그래픽을 보는 듯했다.

집중호우 때문에 배수로에 빠진 날.

안녕, 아메리카
브라질은 다른 라틴아메리카에 비해 선진국화되어있다. 물가는 완벽한 선진국에 가깝다. 버스비가 1,500원 정도다.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시설도 준비되어 있어 버스비가 비싸도 그러려니 했다.

브라질에서 자전거 이동 거리는 많지 않았다. 상파울루에서 비행기를 타고 남아공으로 날아가야 한다. 시간이 얼마 없다. 비록 짧은 일정이었지만 잠깐 브라질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파라과이와 달리 브라질 사람들은 텐트 치는 걸 쉽게 허락해주지 않았다.

달리고 또 달려 투표 날에 맞춰 파라과이에 도착했다.

운 좋게도 크리스마스 이브 날 한 현지인 집에 텐트를 칠 수 있었다. 그 브라질 여성은 매우 친절했다. 심지어 나에게 하루 더 머물며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고 했다. 하지만 하루빨리 공항이 있는 상파울루에 도착해야한다. 크리스마스 아침, 친절한 그녀의 가족을 뒤로하고 길 위를 나섰다. 골목이 조용했다. 문득 지난해 멕시코에서 보낸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멕시칸 친구들이 그리워졌다.

인터넷을 통해 한인 가족을 소개받아 그곳에서 아메리카 대륙의 마지막을 정리했다. 자전거를 비행기에 태우는 일이 처음이라 긴장됐다. 자전거 가게에 들러서 상자를 구했다. 바퀴와 페달을 분리하고 바퀴 바람은 빼야 한다. 핸들 나사를 느슨하게 한 뒤 90도로 꺾어야 한다. 한 시간 정도면 가능하다고 들은 것 같은데 생전 처음 하는 일이라 여섯 시간이 걸렸다.

파라과이에서 18대 대통령 선거 투표에 참여했다.

12월 31일 오후 6시 30분, 아프리카로 떠나는 비행기에 탄다. TV에서 보던 아프리카와 그 실체는 어떻게 다를까? 여행 내내 만나는 사람들에게 “다음 일정은 아프리카”라고 말했다. 사실 그 말을 하면서도 정말 아프리카로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말로만 내뱉던 것이 현실로 다가왔다. 시간이 내게 “이제 아프리카로 가야 한다”고 말해줬다.

무엇보다 안전하고 무사하게 종단하길 바란다. 가는 길마다 행복하고 즐겁고 감사한 일 가득하기를 바란다. 많이 배우고 배움으로부터 겸손해지기를 바란다. 하루하루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되길 바란다. 아메리카에서 받은 인연이라는 큰 선물을 들고 이제는 아프리카로 간다.

블랙홀 같았던 아르헨티나의 이구아수 폭포.
브라질에서 바라본 이구아수 폭포.
자전거에 실을 박스를 자전거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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