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나라…세르비아 베오그라드
오늘을 행복하게 사는 나라…세르비아 베오그라드
  • 글 사진 이두용 기자
  • 승인 2016.11.22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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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VE THE WORLD

‘세르비아Serbia’라는 이름을 들었는데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수도가 베오그라드Beograd라는 것도 나중에 검색해보고 알았다. 지도를 펼쳐놓아도 어딘지 단번에 찾지 못할 나라,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은 출발 전부터 시작됐다. 사실 기대만큼 걱정도 됐다. 20여 년 전까지 내전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던 곳이라니. 모르는 것이 모두 약일 리 없었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묘한 기분으로 첫발을 내디뎠다.

첫인상을 믿지 마세요
베오그라드 니콜라 테슬라 공항에 도착했다. 묵직한 돌덩이를 가슴에 올려놓은 듯 긴장된다. 입국심사를 마치고 입국장으로 들어서는데 키가 190㎝는 돼 보이는 장정들이 떼지어 서 있다. 하나같이 바짝 자른 스포츠머리에 몸은 근육질인 것이 특수 훈련을 받은 군인들 같았다.

굳어 있는 표정에 의미심장함이 묻어난다. ‘혹시 무슨 훈련이 있나?’ 싶어 공항을 빠져나오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세르비아의 첫인상은 그랬다. 쓸데없는 긴장감과 무지가 빚어낸 유치한 착각. 세르비아에 와서 첫인상을 믿지 말았어야 했다. 베오그라드 시내에 도착하기도 전에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게 됐다.

여느 유럽의 거리와 비교해도 세련된 베오그라드 도심의 거리.
세르비아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키가 크고 늘씬해서 전문 모델을 보는 것 같다.
상점의 흔한 점원들도 사진을 찍자고 하면 흔쾌히 자세를 취해준다.

세르비아 남자들은 키가 컸다. 키가 180㎝ 정도인 내가 옆에 서도 몇몇은 머리가 하나쯤 더 있기도 했다. 그리고 20~30대 젊은이들은 머리를 짧게 잘랐다. 신기한 건 옷들도 하나같이 청바지에 단색 반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공항에서는 절대적인 오해였다. 며칠이 지나 세르비아 공항에서의 이야기를 가이드 밀리차에게 얘기했더니 한참이나 웃었다.

세르비아를 여행하는 동안 유독 사람 사진을 많이 찍었다. 해외를 다니며 사람을 이렇게 많이 찍기도 처음이었다. 그냥 평범한 그들인데 직업 모델만큼 전부가 늘씬했고 표정이 남달랐다. 사진을 찍겠다고 하면 인상을 쓰며 손사래를 치던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달리 이들은 카메라를 보고도 의식하지 않거나 편하게 웃어줬다.

늦은 밤에 공원을 걸으면 덩치 큰 남자가 내게 다가와 말을 건다. 처음엔 잔뜩 긴장했는데 서툰 영어로 “길을 잃었으면 알려줄게요”라고 한다. 그게 한두 번이 아니어서 더 놀랐다. 외국인에게 다가와서 먼저 손을 내미는 친절이라. 고작 열흘 남짓 머물며 세르비아에 흠뻑 빠진 이유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아름다웠던 도시와 자연도 있지만 낯선 지방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한 상냥함과 미소 때문이었다. 내 돈을 들여서 하나의 나라만 여행할 수 있다면 여정이 복잡하고 멀더라도 다시 세르비아를 선택할 것 같다.

칼레메그단 요새에서 웨딩 사진을 찍는 신부와 친구들. 역시 남달라.
낮에도 거리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도나우강에 늘어선 바지선에서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는 사람들.

베오그라드에 빠져들면
더웠다. 일기예보에서는 낮 기온이 25~28도라더니 이건 아무리 못해도 30도는 훌쩍 넘었다. 시계는 아직 오전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베오그라드와 정식 인사를 앞두고 더운 날씨가 방해꾼이 되는 듯했다. 지방 곳곳을 다녀야 하는 스케줄이 벌써 걱정됐다.

호텔에 비치된 베오그라드 안내 책자를 읽으며 동기부여를 했다. ‘좋을 거야’ , ‘아름다울 거야’ 그렇게 밖으로 나왔는데 100걸음도 채 내딛기 전에 더위 따위는 잊어버렸다. 여느 유럽에서나 보았음 직한 이국적인 거리와 사람들. 하지만 달랐다. 건물과 하늘의 컬러가 달랐고 사람들의 표정이 달랐고 도시에서 느껴지는 여유가 완전히 달랐다.

유람선을 타고 사바강과 도나우강을 지나며 도시풍경을 조망할 수도 있다.

100년 가까이 옛 유고슬라비아와 몬테네그로의 수도였던 이곳. 지금의 세르비아 수도가 되기까지 ‘발칸 반도의 자존심’ , ‘동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며 수없이 무너지고 다시 지어지길 반복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리도 말짱하게 도시의 모습과 사람들의 평온함이 유지될 수 있었을까. 골목 하나하나를 지날 때마다 호기심은 존경으로 바뀌었다.

베오그라드 명소인 칼레메그단 요새로 향했다.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만나는 지점에 125.5m로 세워진 전투에 최적화된 요새다. BC 3세기 켈트족 정착후, 지정학적 중요성 때문에 로마제국시대부터 115번의 전투를 치르고 40번 넘게 파괴와 재건을 반복했다. 성벽과 대리석 통로 곳곳에는 총알 자국과 함께 무너졌다 재건된 오랜 역사와 시간의 흔적이 오롯하게 남아 있다.

칼레메그단 요새로 들어가는 입구. 과거 지어진 성곽과 문이 남아 있다.
요새 안쪽에 마련된 전쟁공원. 과거 사용했던 무기들이 전시돼 있다.

요새 안쪽에는 전투에 사용했던 대포, 무기가 전시된 공원, 세월이 묻어나는 성곽, 이곳의 상징인 높이 우뚝 선 빅토르 동상, 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을 위해 지었던 교회가 있다. 좀 생뚱맞지만 최근 조성한 듯한 공룡테마공원도 눈에 띈다. 도시민을 위한 운동시설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 보여주기가 아니라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명소다.

요새 아래로는 사바강과 도나우강이 만나 큰 강을 이루어 흘러간다. 서울에도 아름다운 한강이 있지만 다르다. 턱까지 차올랐던 숨이 몸에서 단번에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아름답다거나 웅장하다는 미사여구를 보태지 않고도 그저 좋다. 과한 채색이 아닌 연한 수채화로 그려낸 것 같은 도시는 저녁노을을 끌어안고 붉게 물들어간다. 어디에 눈을 돌려도 신기하리만큼 좋다. ‘왜’라는 말은 마음에 담아두고 계속 “좋다!”만 연발했다.

베오그라드엔 세르비아 정교회의 교회도 여럿 있다.
최근 조성된 듯한 공룡테마공원도 자녀를 동반한 가족에게 인기다.
세르비아 사람들은 일과를 마치면 자전거를 타거나 달리는 등 아웃도어를 즐긴다.
도나우강이 내려다보이는 정상엔 빅토르 동상이 우뚝 서 있다.


이 사람들 정말 뭐야!
노비사드, 수보티차, 토폴라, 즐라티보르 같은 매력적인 도시 이름을 뒤로하고 다시 베오그라드로 돌아왔다. 도시를 하나씩 지나면서 세르비아는 마을 하나하나가 예술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럽의 많은 나라와 도시를 다녀봤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보았던 도시와는 다른 감동을 받았다. 마을 전체를 내려다볼 때 아름다운 곳이 있는가 하면 골목 하나하나를 걸을 때 좋은 곳이 있었고, 동화 속 풍경 속으로 들어온 것 같은 곳도 있었다.

하지만 세르비아에서 받은 가장 큰 감동은 늦은 밤 제문에서였다. 칼레메그단 요새에서 내려다보이는 다뉴브 강 너머 마을이 제문이다. 이곳은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베오그라드 도심과는 달리 가르도스 타워가 세워진 언덕에서 아래로 거미줄처럼 이어진 골목을 따라 올드시티로 이루어져 있다. 강을 끼고 줄지어 서 있는 고풍스러운 레스토랑에선 밤마다 축제가 벌어지는데 여기에 한 번 빠지면 세르비아 앓이에서 헤어나오기 어렵다.

가르도스 타워 아래 알록달록한 건물로 이루어진 제문의 올드시티.

우리가 간 곳은 레카Reka. 사실은 춤을 추는 곳도 아니었다. 그저 저녁 식사를 즐기는 식당. 저쪽 귀퉁이에서 밴드가 곡을 연주하면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은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즐기는 게 전부였다. 우리 일행도 그랬다. 흠뻑 빠진 세르비아의 매력 얘기를 하면서 각자 시킨 메뉴가 나오길 기다렸다.

처음은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시작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눈을 감고 어깨를 흔들며 춤을 췄다. 그리고 옆에 앉은 할아버지가 일어나 춤을 췄다. 음악은 탄력을 받았고 리듬은 점점 빨라졌다. 마치 오랜 시간 특훈이라도 했던 사람들처럼 여기저기서 일어나 춤판(?)에 가세했다.

베오그라드를 사랑하게 만든 레카Reka의 행복한 춤판(?).

그렇게 몇 곡이 연주되었을 때 식당 안에는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이 몇 명 없었다.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고 춤을 배운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저 오늘 이 시간 이곳에 있는 것이 즐거운 사람들이었다. 누구도 권하거나 눈치를 주지 않는다. 그렇다고 과하게 추거나 빼지도 않는다. 내가 놀라고 있는 이 멋진 장면이 이들에겐 그저 평범한 저녁 시간이었다. 나중에 들어보니 내전이 잦았던 이들은 어찌 될지 모를 내일을 기대하기보다 오늘을 가장 행복하게 보내자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늘 그랬다는 듯 음악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리고 누구도 흥겨움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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