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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미소…‘심야식당’
내내 미소…‘심야식당’
  • 글 이지혜 / 사진제공 영화사 진진
  • 승인 2016.11.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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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MOVIE

최근 처음으로 일본을 다녀온 뒤, 아직도 속상하게 남아있는 기억은 바로 음식이었다. 일정 내내 정해진 식사 메뉴들이 하나같이 가이세키( かいせき )였다. 가이세키는 조그마한 그릇에 순차적으로 나오는 일본 음식을 말하는데, 꼭 한국의 한정식 같다. 결국, 일본에서 먹어보고 싶었던 우동, 어묵, 녹차밥, 오코노미야키, 다코야키, 돈부리, 카레같은 음식은 구경도 못 했다. 그래서 <심야식당>이다.

도쿄의 번화가에 숨은 뒷골목, 시간을 뛰어넘어 과거의 일본을 연상케 하는 그곳에 조용히 자리 잡은 밥집 ‘심야식당’이 있다. 자정에 문을 열어 아침 7시까지, 잠 못 드는 이들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준다. 단출한 메뉴는 형식적일 뿐, 주문하는 거의 모든 음식이 가능하다.

영화는 크게 나폴리탄, 마밥, 카레라이스의 세 에피소드로 나뉜다. 돈밖에 모르는 타마코는 우연히 심야식당에서 나폴리탄을 먹다 만난 나사공장 영업사원 하지메와 사랑에 빠진다. 그들은 내내 나폴리탄을 먹으며 사랑한다. 하지만 내내 행복하지만은 않다.

시골에서 상경해 사랑하던 남자에게 사기까지 당한 미치루는 심야식당에서 밥을 먹고 돈이 없어 도망간다. 하지만 양심에 가책을 느껴 돌아와 식당 일을 하며 빚을 갚기로 한다. 음식도 잘 만들고 칼도 잘 가는 미치루는 마스터의 다친 손이 다 낳을 때까지 신세를 지기로 한다.

먹튀녀로 시작한 그녀의 이미지 쇄신이 볼만하다. 도망가느라 못 먹었던 마밥을 심야식당 마지막 날 맛있게 먹는 장면 역시 꽤 감동적이다. 한마디의 말도 없이, 단지 군더더기 없는 음식으로 누군가를 위로해주는 마밥을 먹고 싶다.

마지막 카레라이스편도 실망시키지 않는 비주얼이다. 후쿠시마 쓰나미 피해지역으로 자원봉사를 갔던 아케미는 재해에 아내를 잃은 겐조를 극진히 보살핀다. 어느새 아케미에게 사랑을 느낀 겐조는 마음을 거절한 아케미를 찾아 무작정 도쿄로 올라온다.

두 명은 감정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다. 봉사가 사랑으로 느껴진 것에 죄지은 기분, 재해자는 무조건 배려받아야 한다는 오해를 꽤나 세밀하게 표현했다. 두 명은 한 번도 심야식당에서 만나진 않지만 마스터에게 속마음을 터놓는다. 그런 마스터는 겐조에게 아케미와의 추억이 담긴 카레라이스를 내준다.

마스터. 왼쪽 눈에 커다란 상처가 있는 험상궂으면서도 섹시한 코바야시 카오루가 두 시간 내내 존재감을 뿜어낸다. 오다기리 죠는 어설프지만 뭔가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한, 체취가 없는 경찰역을 맡았는데, 역시 잘생겼다. 타베 미카코가 연기한 미치루는 시골에서 상경한 모성애를 자극하는 촌스런 여자의 완벽한 표본이다.

영화는 내내 다양한 사람을 교차시키고, 새로운 사람을 등장시킨다. 단순하면서 복잡하고 교묘하게 얽혀있는 이야기들이 내내 미소 띠게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가 지루하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음식이다. 기교 섞인 화려한 칼질도 없고 불 쇼도 없다. 요리의 기술이나 레시피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영화는 그저 정성을 말한다. 음식에 쏟는 정성, 이야기를 들어주는 인내와 그 시간의 값어치를 담았다. 그래서 더 맛있어 보이나 보다. 결국, 올해가 가기 전 다시 일본에 가야겠다. 뒷골목의 정성스런 밥 한 그릇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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