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도 장진답게…연극 ‘택시드리벌’
지극히도 장진답게…연극 ‘택시드리벌’
  • 글 이지혜 / 사진제공 아시아브릿지컨텐츠
  • 승인 2016.11.04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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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PLAY

15년 전, 강원도 화천 촌놈이 서울로 올라왔다. 고향엔 사랑하는 가족과 여인이 있었지만, 성공을 위한 결심이었다. 촌놈, 덕배는 택시를 선택했다. 택시 드라이버를 발음하지 못해 “택시 드리벌”이라고 자신의 직업을 말하는 덕배. 그의 택시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화천에 닿지 못한 채 서울 언저리를 돌고 있다. 다양한 진상 손님을 태운 채. 고향의 여인을 가슴에 품은 채.

김수로 프로젝트의 열두 번째 작품, 장진 연출의 <택시드리벌>은 택시기사 덕배의 일과를 통해 팍팍한 도시 생활의 고충을 코믹하고 직설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성별, 연령, 지역, 직업, 사회적 계급이 다양한 사람들의 행태가 익살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표현된다. 오래전 없어진 ‘합승’이라는 제도를 극의 진행을 위해 그대로 설정했다.

아침마다 피곤함에 찌들어 강남으로 실려 가는 직장인, 사랑에 실패해 눈물을 흘리는 여인, 시아버지의 직업이 타이틀인 무개념 청담동 며느리, 모이기만 하면 직장 상사의 뒷담화를 하면서도 정작 앞담화는 한마디도 못 하는 회사원들, 무시무시한 문신과는 어울리지 않게 폭소를 자아내는 조폭들, 야구로 시작된 영호남 아저씨들의 택시판 ‘썰전’. 덕배의 택시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저마다의 색깔을 뿜어대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하지만 정작 택시의 주인, 덕배의 색깔은 회색이다. 과거에 갇혀 현재를 산다. 과거의 부끄러움이나 후회되는 선택을 현재로 끌고 오며 미화시킨다. 또 그런 자신을 한심해 한다. 덕배의 다양한 감정이 공연 내내 공존하는데, 이는 다섯 명의 덕배 속 목소리로 잔인할 만큼 솔직하게 채워진다. 장진이 아니면 어려울 정도의 솔직함이다.

에디터의 아버지 역시 택시 기사다. 기사를 천직으로 삼고 택시를 보물처럼 아끼는 양반이다. 아직도 아침 아홉시에 나가 새벽 두시에 들어오시는 아버지에게도 싫은 것이 있다. 술에 취한 승객이 택시 안에서 어떠한 형태의 실례라도 하는 날. 그때가 몇 시던, 아버지는 그 날 영업을 접으신다. 비릿한 냄새가 풍기는 수건을 손에 들고 오시며 말이다.

극 중 덕배가 구토한 승객을 어쩌지 못해 당황하던 장면에서 자연스레 늦은 밤 아버지가 겹쳤다. 여기서 겹쳤다는 말은 절대 과장이 아니다. 에디터는 평소 미디어 직업군의 주인공이 나오는 드라마는 현실성 떨어지는 대사와 환경에 오글거려 조금도 못 본다. 하지만 <택시드리벌>에선 아주 자연스레 아버지를 떠올렸고 거부감이 꽤 들지 않았다.

동시에 슬프지 않았다. 서글픈 덕배의 운명도, 힘들었던 아버지의 지난날도 슬프지 않았다. 누군가가 내 차에 토악질을 했는데, 슬프지 않은 건 장진만이 할 수 있다. 룰루랄라 엑셀 페달을 밟는 아버지의 경쾌한 발이 떠올랐고, 과거를 훌훌 털고 새로운 손님을 맞으러 가는 덕배의 콧노래가 들렸다.

이런 찌릿함은 분명 필연이다. 장진 감독 역시 실제 택시기사였던 아버지를 보며 이 작품을 연출했다. 과장 없이 깔끔하다. 택시 드라이버의 삶을 잔잔히 담았다. 결국, 연극을 보던 관객 하나가 자연스레 택시 드라이버 아버지가 겹친 건 전적으로 연출의 힘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일 수밖에 없겠지만, <택시드리벌> 입장에서 이보다 더 좋은 칭찬은 없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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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모기간 : 10월 25일~11월 15일
당첨발표 : 11월 16일
관람기간 :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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