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소리를 삼킨 곳, 우유니 사막
세상의 소리를 삼킨 곳, 우유니 사막
  • 글 사진 정효진 기자
  • 승인 2016.10.3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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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여행자의 지구별 자전거 여행

볼리비아 비자를 받은 후 30일 이내로 입국해야 했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낭패다. 32일째인 오늘, 우선 가진 돈을 환전하고 출국 도장을 받았다. 볼리비아 입국 심사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다행히 직원은 아무 말 없이 입국 도장을 찍어줬다. 국경에 있는 3달러짜리 숙소를 잡고 지친 몸을 뉘었다.

다양한 얼굴의 라파즈
볼리비아에서 첫날이 밝았다. 해발 3,800m 라티카카 호수를 끼고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오후 늦게 해발 4,000m 고지를 찍고 내려가는 순간, 숨 막히는 광경이 눈에 보였다. 설산이 펼쳐졌다. 설산이 이렇게 연속적으로 퍼져있는 모습은 처음이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저렇게 많은 설산 중 내가 오를 수 있는 건 없을까?

오늘 40km 밖에 못 달릴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70km나 넘게 달렸다. 멀리 마을이 보였다. 잠자리를 해결하기로 했다. 볼리비아 물가가 싼 거 같아서 호텔을 찾았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볼리비아 경찰서에서는 먼저 흔쾌히 공간을 내줬다. 빈방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다.

현지 시장 모습.

다음날,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 도착했다. 숙소는 시내 한가운데 7달러짜리로 잡았다. 뜨거운 물도 나오고 인터넷도 잡히는 곳이다. 하지만 1층이 헬스장, 2층이 술집이어서 너무 시끄러웠다.

숙소 주변은 복잡했지만 사람 구경하는 재미 하나는 쏠쏠했다. 숙소에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샌프란시스코 광장이 있다. 그곳엔 엄청나게 저렴한 길거리 음식이 가득했다. 햄버거, 피자, 샌드위치, 과일주스 등이 천 원가량이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콜라가 가장 싼 나라는 볼리비아가 아닐까 싶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길거리에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라파스는 내가 방문한 라틴 수도 중 제일 복잡했다. 길거리에 상점이 넘쳐났고, 발 디딜 틈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하다. 중심에 숙소를 잡은 탓도 있지만 어쨌든 라파스는 정말 흥미로운 곳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광장에서 앉아서 사람을 구경하는 게 가장 큰 낙이었다. 성당 앞이라 많은 사람이 성호를 그으며 지나가기도 했다.

라파즈 숙소 앞 풍경.

달빛에 의지한 원주민 노동자
라파즈를 빠져나가고 오후 5시쯤 되어서 한 마을에 멈췄다. 날이 추워 그런지 사람이 보이질 않았다. 앞마당에 텐트 치는 걸 요청하려면 누군가 눈이 마주쳐야 쉬울 텐데, 아무도 보이질 않았다. 1시간 넘게 골목을 헤매다가 한 원주민과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의 집은 저 멀리 있는데, 지금 일을 하는 중이라 함께 가줄 수가 없다고 했다. 집에 찾아가면 자기 엄마가 있을 거라고 했다.

내가 그에게 “지금 해지기 전인데 언제까지 일할 거냐” 묻자 “밤 8시가 넘을 때까지 일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다시 “밤 8시에 어두운데 어떻게 일을 할 거냐”고 물어보자 돌아온 그의 대답은, “달빛이 있기에 가능하다”였다. 그는 흙으로 된 담벼락을 짓고 있었다. 아쉽게도 그의 집은 찾을 수 없었다.

라파즈 시내 모습.

그러다 다른 원주민 아주머니를 보게 되었고 혹시 몰라 물어보니 환하게 웃으며 텐트 치는 걸 허락해주셨다. 이들 부부에겐 아이가 여섯 있다. 원주민 부부에게 이름을 써달라고 수첩을 내밀어 부탁했으나 딸이 대신 적어주었다. 이름을 제대로 알기 위해 수첩과 펜을 내미는 일이 요즘 들어 미안할 때가 있다.

해발 4,000m 텐트에서 자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밤에 추워서 죽는 줄 알았다. 이제 곧 우유니 사막을 가야 할 텐데 우유니 사막에서 어떻게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곳 가족들이 따뜻하고 친절했기에 그나마 내 텐트 안이 좀 덜 추웠다. 어제 텐트 칠 때 바닥에 깔 무언가를 주었기 때문이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던 샌프란시스코 광장.

요즘 안데스 산맥에서 자전거 타는 게 너무 힘들다. 오르막 내리막에 바람이 너무 불고 시도 때도 없이 비가 몰아친다. 무엇보다 힘든 게 바람이다. 바람이 불 때 큰 트럭도 함께 지나가면 자전거가 휘청하면서 엄청나게 위험한 상황에 맞닥뜨린다.

원래 계획은 오루로라는 마을까지 자전거를 탄 뒤, 거기에서 우유니 사막까지 버스를 타고 가는 것이다. 최대한 우유니 사막에 물이 차기 전에 도착하는 것이 목표다. 오늘 오루로까지 가는 건 무리였다. 마을 입구에선 엄청난 쓰레기가 먼저 마중을 나와 있다. 중남미에서는 코스타리카만 빼고 대부분의 나라가 이런 상태였다.

앞마당에 텐트를 치게 허락해준 원주민 가족.

인구조사에 발이 묶이다
지나는 길에 병원이 보이기에 혹시 몰라 앞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는지 물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내일 자전거를 탈 수 없다고 한다. ‘Census’ 때문이라고 한다. 내일 자전거 타고 가다가 경찰에 걸리면 24시간 구금된다고 한다. 어떠한 차도 길에 나오면 안 된다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야? Census가 뭐기에? 계엄령인가? 공산당도 아니고 밖에 나가다 걸리면 24시간 구금 된다니 대체 이게 뭘까? 알고 보니 볼리비아에서는 10년에 한 번 인구조사를 한다. 그래서 밖에 돌아다니면 안 된다. 안토니오라는 의사가 걱정하지 말라며 병원에서 이틀 머무르라고 했다.

쓰레기가 가득한 마을 입구.

안토니오와 얘기하며 알게 된 사실, 볼리비아 평균 월급은 100달러에서 200달러 정도 된다고 한다. 경찰은 300달러 정도 된다. 의사는 750달러 정도 번다. 물론 내가 지낸 국립병원 말고 라파즈 같은 대도시에 있는 사립병원에서 일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의사는 한 달에 750달러를 받고 생활한다.

칠레, 브라질에만 가도 무려 7,000~8,000달러, 아르헨티나 4,000~5,000달러를 벌 수 있다. 에콰도르, 콜롬비아는 볼리비아와 사정이 비슷했다. 전문직종이지만 대우가 너무 시원찮아서 많은 의사가 국경을 넘는다. 안토니오는 스페인에서 의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서류를 준비할 예정이었다. 서류준비는 6개월에서 2년 정도 걸린다. 병원에는 쿠바에서 자원봉사 온 의사도 있었다. 그는 아프리카 나미비아에서도 자원봉사를 했었다. 볼리비아 현재 의료 상황은 꽤 어려워 보였다. 빈 병실에서 잠을 자게 되었는데, 병원은 컸다. 하지만 단수상태였고 시설은 열악했다.

체 게바라 사진이 붙어 있는 병원.

다음날 정말 밖에 돌아다니면 경찰에 걸리는 걸까 궁금해서 주변 산책을 했다. 병원 앞에 있던 체 게바라 사진과 체 게바라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문구가 보였다. 체 게바라는 쿠바 혁명을 성공하게 한 뒤 그곳에서의 권력을 포기하고 볼리비아 혁명을 하러 내려왔다. 하지만 그는 볼리비아에서 살해당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는 사실 아르헨티나 출신이며 의사이다. 그가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았다면 아마 지금쯤 큰 부를 축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모든 특권을 거부하고 혁명의 길을 간 사람이다.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굉장히 감명 깊게 봤다. 친구와 오토바이 여행을 하며, 라틴아메리카의 실체 없는 분열이 완벽한 허구였음을 보았다고 한다. 나는 그보다 더 힘든 자전거 여행자에, 동료도 없이 혼자 다니고, 그보다 훨씬 더 길게 여행하고 있는데, 참 부끄럽다. 얼마나 더 많은 경험을 했느냐가 중요하지는 않은 거 같다. 경험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깨닫느냐,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부터 행동을 하는 것이 결국 제일 중요한 거 같다.

길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현지인.

밖에 막상 나와 보니 어린아이들이 노는 모습이 보이고 어른들이 길에 앉아 시간을 때우는 모습도 보였다. 물론 인구조사를 하는 사람들도 보이긴 했지만, 길에 있다고 무조건 경찰이 잡아가진 않았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정말 길 위에 차가 한 대도 보이질 않았다. 인구조사를 위해서 계엄령 비슷한 걸 내린다는 게 신기해 보였다.

오후 늦게 의사들과 같이 차를 마시다가 갑자기 응급 환자가 와서 혼자 남게 되었다. 차를 마신 후 다시 한 번 동네 한 바퀴를 돌았는데 굉장히 활기차다. 오후 6시가 되니 인구조사가 끝났다. 가게들이 문을 열었고 사람들도 돌아다니고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차들이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나도 달려야 한다. 우유니 사막을 달리기 위해 서둘러서 우유니 마을로 이동해야 했다.

하루에 두 번 그림자는 길어진다.

우유니를 달릴 모든 준비
우유니 마을에 도착해서 정보를 얻으러 마을 탐색을 시작했다. 투어 회사 차들이 잔뜩 보이는 곳에 가서 들은 사실은 현재 우유니에는 물이 차지 않았다는 것이다. 북쪽과 달리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고 한다. 배낭 여행자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자전거여행자인 나에게는 정말 다행이었다. 이 말은 즉, 우유니 사막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소리였기 때문이다.

우유니 마을은 예상외로 현지인이 많이 사는 곳이었고 활기찼다.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우유니 정보와 큰 지도를 획득했다. 라파즈에 있는 여행사들은 우유니 자전거 횡단 불가능할 거라고만 했는데, 역시 정부가 운영하는 관광정보 사무실은 정확한 정보를 주었다. 차들이 매일 다니는 경로가 있는 데 그 바퀴 자국을 따라가면 될 거라고 한다.

다음날 드디어 꿈을 현실로 만들 날이 왔다. 비포장도로를 열심히 달려 마지막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물 8L를 샀다. 사실 우유니를 횡단하는 방법은 두 가지다. 우유니 사막을 거쳐 밑에 칠레로 내려가는 방법, 또는 우유니 마을로 다시 돌아오는 방법이다.

곧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다. 난 꼭 투표해야 한다. 그리고 아프리카 자전거 횡단을 위해 브라질로 넘어가야 했다. 결국, 파라과이에서 대통령 선거를 하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칠레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우유니 사막 끝까지 간 다음에 다시 우유니 마을로 돌아올 계획을 잡았다.

우유니 마을에 다시 돌아오긴 해도 이곳에서 머무를 계획은 없었다. 모든 짐을 다 챙겨 들고 나왔다. 사실은 완장 상태에서 횡단을 해보고 싶은 꿈도 있었다. 우유니 사막에서 1박을 할지 2박을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혹시 몰라 비상용까지 다 포함해 8kg이 넘는 물을 샀다. 오랫동안 비포장도로를 달려보기는 처음이었다. 도로가 너무 울퉁불퉁해서 물병들을 몇 번이나 땅에 떨어트렸다.

소금사막에서 캠핑하다.

모든 소리를 삼킨 곳
그렇게 비포장도로를 힘겹게 달리다가 드디어 우유니 사막 입구에 들어서게 되었다. 우유니 사막 입구에는 현지인들이 직접 소금을 채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채취된 소금은 90% 이상이 식용이고, 나머지는 가축용이다. 순도도 매우 높고, 총량으로 볼 때 볼리비아 국민이 수천 년을 먹고도 남을 만큼 막대한 양이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해발 3,600m에 있다. 안데스 산맥에서 자전거를 탄 덕을 보게 됐다. 고산지대는 완벽 적응했지만 바람이 정말 심하게 불었다. 투어 차들이 몇 년 동안 한결같은 길로 다니다 보니 아스팔트처럼 검은 길이 나 있었다. 이것만 따라가다 보면 길 잃을 염려는 없어 보인다.

차들이 멀리 시야에서 멀어지자 마치 날아다니는 새처럼 보였다. 소금결정체들 때문에 길은 울퉁불퉁했다. 이후 한참을 들어가니 그동안 사진으로만 봐왔던 육각형 소금 결정체 길이 뚜렷이 보이기 시작했다. 꿈을 이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다운 노을이 질 무렵 한 섬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서 하얀 사막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여러 재미있는 사진들을 찍었다. 이후 마을로 돌아가는 길은 바람이 등 뒤로 불어서 쉬웠다.

잠시 우유니 사막에 누웠다. 어느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바람 소리도, 심지어 그 흔한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차 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우유니 사막, 이게 바로 내가 꿈꾸던 곳이었구나, 내가 해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그림자는 하루에 두 번 길어진다. 그것은 여행을 시작한 이래 변함없이 매일 같이 깨닫는 사실이었다. 나의 그림자는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길어진다. 오늘만큼은 길어진 나의 그림자를 보니 눈물이 났다. 꿈을 이뤘고, 이제는 다른 꿈을 찾아 떠날 시간이 왔다는 걸 그림자의 길이가 말해줬다.

사막에서 재미있는 사진을 찍다.

꿈이 꿈을 만들다
사막 입구 8km 전에 텐트를 치고 하룻밤 자기로 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밤에는 엄청나게 바람이 몰아닥쳤다. 밥 짓는데 무려 한 시간 반이 걸린 거 같다. 근데 또 신기한 것이 새벽이 되면 바람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어제와는 달리 허허벌판에 텐트를 치니 엄청나게 추웠다. 사막 입구에서부터 부어온 편도가 문제였다. 감기약과 진통제는 소용이 없었다. 어찌나 춥던지 먹은 것마저 탈이 났나 보다. 새벽 2시부터 계속 구토를 했다.

원래 우유니 마을에서 하루 더 머물 계획이 없었지만, 다음 날 아침 몸이 좋지 않은 관계로 마을에 돌아가서 하루 쉬기로 했다. 몸에 힘이 없어서 자전거 타는 게 불가능해 보였다. 자포자기한 마음으로 자전거에서 내려 사막에 한참을 누워있었다. 오늘도 우유니 사막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키고 어느 소리도 내게 들려주지 않았다.

태어나서 세상의 모든 소리와 이토록 단절되기는 처음이다. 앞으로도 이런 일은 없을 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문득 잠에 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당장에라도 죽을 것만 같던 몸 상태가 소금사막에서 치료를 받았나 보다. 몸이 이전보다 나아졌고, 결국은 우유니 마을까지 무사히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

우유니 행성 탐험, 2박 3일의 일정이 이렇게 무사히 끝났다. 비록 감기에 걸리고 몸은 고생했지만 마음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다. 꿈에서조차 꿀 수 없었던 거대한 꿈 우유니 사막 자전거 횡단을 결국 성공했다. 다음 나의 목표는 아프리카 횡단이다. 넘어야 할 꿈은 행복하게도 계속 이어진다. 힘들지만 그만큼 감동적인 게 바로 꿈 실행이 아닐까. 이번에 다다른 나의 큰 꿈이 또 다른 꿈의 원동력이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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