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골드코스트
골드코스트에 가 보고 싶다고 느낀 건 순전히 담뱃갑 때문이다. 수년 전 중동의 요르단 사막에서 우연히 담뱃갑 하나를 발견했다. 쩍쩍 갈라진 땅 위에 버려진 담뱃갑에는 영어로‘GOLD COAST’라고 쓰여 있었다. 가뭄이 극에 달한 땅에서 마주한 황금빛 해변GOLD COAST이란 글씨는 내게 묘한 기분이 들게 했다. 그리고 호주의 골드코스트는 자연스레 내 버킷리스트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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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어우러진 열기구의 모습은 어린 시절 꿈이 이루어진 듯 아름답다. |
도시, 바다와 마주하다
여러 번 호주를 다녀왔지만 이렇게 설레기는 처음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대륙이면서 가장 큰 섬이기도 한 호주에서는 사실 어딜 가도 바다를 만나는 일이 쉽다. 하지만 아름다운 바다와 자연은 기본, 이름마저도 황금빛 해변인 골드코스트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심지어 이곳엔 서퍼의 천국이라는 뜻의 ‘서퍼스 파라다이스’라는 지역도 있다. 낭만적인 작명센스에 가이드북을 보는 내내 콧노래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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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와 황금빛 해변, 마천루 숲이 조화를 이루는 골드코스트. |
드디어 출발. 인천공항을 떠난 비행기는 홍콩에 도착했다. 그리고 다시 호주행 비행기에 올라 골드코스트에 도착했다. 도시의 첫 느낌은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만큼 빽빽하게 들어찬 마천루 숲에서도 비릿한 바다의 향이 느껴졌다. 눈앞으로 지나는 무수한 자동차와 분주하게 자신의 갈 길로 향하는 사람들의 소란에도 눈을 감으면 잔잔한 바닷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좋다. 이런 기분.
실제로 골드코스트는 바다로 난 길을 따르면 어디서든 10여 분 내에 해변 모래를 밟을 수 있다고 한다. 원한다면 오전 일과를 마치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바다에서 서핑이나 수영을 즐길 수도 있다. 진짜 천국은 별천지가 아니라 이런 곳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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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가장 높은 78층 323m Q1 빌딩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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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코스트에는 일과 중에도 바다를 즐기러 나온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
골드코스트 전체를 내려다보기 위해 이곳에서 가장 높은 Q1 빌딩을 찾았다. 78층 323m라고 하는데 249m 높이의 63빌딩도 올라가 보지 못한 나로서는 꽤 높게 느껴진다. 전망대는 건물 꼭대기에서 사방으로 시야가 트여 있어 한 바퀴 돌면서 골드 코스트 전부를 내려다볼 수 있다. 멀리 점으로 시작된 해안은 도시를 끌어안고 다시 점으로 사라진다. 순수 해변만 40여 킬로미터나 이어져 있으니 도시 외곽 전체가 황금빛 해변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바다를 마주하고 마천루를 세운 해운대나 홍콩과 닮았지만, 분위기와 스케일은 크게 다르다. 이런 차이는 해변으로 나가보면 더 분명해진다. 휴가철에만 반짝하고 사람이 몰려드는 다른 휴양지와는 달리 골드코스트는 계절과 상관없이 진짜 바다를 즐기려는 사람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이들에게 바다는 단순한 휴양이 아니라 평생을 보고, 즐기고,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한 부분이다.
석양이 지는 해안을 따라 손을 잡고 걷는 노부부와 강아지를 데리고 나와 해변에서 뛰노는 아이, 아이들과 낚시를 즐기러 나온 가족, 서핑을 즐기는 젊은이들. 모두 제각각이지만 그렇게 자연스럽게 보일 수가 없었다.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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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코스트에 가 보고 싶다고 느낀 건 사막에서 만난 담뱃갑 때문이다. |
도시, 숲과 대지를 그리다
골드코스트가 정말 멋진 이유는 그 아름다운 해변을 잊게 할 만큼 울창한 숲과 너른 대지가 공존하기 때문이다. 해변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정도 달리면 탬버린 국립공원에 다다른다. 언제 바다의 품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사방이 초록으로 가득하다.
이곳에선 숲을 이용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다. 산 능선 사이를 날아다니는 짚라인이 가장 유명하다. 국내에서도 몇 번 체험해 본 적이 있어서 비슷하려니 생각했지만 역시 호주는 또 한 번 스케일에서 혀를 내두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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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능선이 켜켜이 쌓여 골드코스트라는 사실을 잊게 해주었던 풍광. |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솟은 정상 부근의 나무 위에서 아래 능선으로 한 번, 계곡을 따라 다시 밑의 나무로 한 번, 높다란 나무에서 다른 나무로 한 번. 이렇게 일곱 번에서 최대 열 번을 이동한다. 높이와 길이에서 놀라고 짚라인으로만 3시간 정도를 체험한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말 그대로 날다람쥐가 되어 숲을 날아다니는 기분이 드는 액티비티다.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출발지점으로 오르면 전문 강사들이 조를 이루어 장비의 사용법과 응급 시 대처요령을 설명해준다. 겁내는 사람도 있지만 한 번만 타 봐도 두려움은 즐거움으로 바뀐다. 코스가 길고 가파를수록 웃음 섞인 탄성도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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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동안 7~10회의 짚라인 체험으로 산 일대를 투어 하는 프로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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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겁내던 사람도 한두 번 타다 보면 즐길 수 있게 된다. |
보는 재미도 톡톡하다. 등산하면서 숲을 조망할 땐 능선과 계곡을 중심으로 시선을 두는데 짚라인은 능선과 능선을 오가며 숲을 보기 때문에 새의 눈으로 산 전체를 보게 된다.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곳에서 산을 내려다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3시간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갔다.
짚라인을 마치고 숲길을 따라 오레일리 리조트로 향했다. 1926년 오레일리 가문이 세웠다는 이곳은 울창한 대자연을 벗 삼아 몸과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는 휴양지다. 오레일리는 퀸즐랜드주에 와이너리와 리조트 등 여러 시설을 소유한 호주의 유명한 일가다. 집안 소유라고 하지만 어지간한 기업의 리조트보다 시설 규모나 인테리어가 훌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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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 보이는 풍경 역시 해변이 아름다운 골드코스트의 일부다. |
숙소에 짐을 풀고 일몰을 보기 위해 인근의 산을 찾았다. 정상인근까지는 준비된 차량으로 이동했다. 인공적으로 닦아놓지 않은 조붓한 길 덕분에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여정 같았다. 정상까지는 야트막한 오르막을 따라 걸어서 이동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대단했다. 봉우리와 능선이 켜켜이 연결된 산들은 마치 내가 서 있는 곳이 숲으로만 이루어진 대지 같은 느낌이 들게 했다. 이곳 역시 골드코스트의 일부인데. 이런 기분은 다음 날 아침 산책하러 나갔던 전망대에서도 똑같이 들었다. 국토가 청정지역인 호주는 도심이라고 해도 시야가 탁 트여서 가시거리가 좋다. 숲이라면 말할 것도 없다. 아침에 마주한 풍광 역시 일몰 투어에서 본 것처럼 끝도 없이 펼쳐진 산맥이었다. 이 풍경을 사진에 담아 누군가에게 “여기가 골드코스트야”라고 말하면 믿어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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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리 시설에서는 호주의 청정 재료로 만든 식사도 즐길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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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레일리 리조트는 숲 속에 위치해 있어 야간엔 별 사진도 찍기에 좋다. |
도시, 하늘과 손을 맞잡다
골드코스트의 액티비티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열기구다. 풍선을 타고 하늘을 나는 어린 시절의 꿈을 실현해주는 것도 있지만, 열기구를 타고 일출을 보는 매력은 최고 중의 최고다. 더욱이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호주의 너른 대지와 숲, 저 멀리 아름다운 바다까지 볼 수 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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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기구마다 바구니에 사람을 태우고 하늘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다. |
열기구는 일출을 보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보니 새벽 4시 30분에 출발한다. 전날 2시가 다 돼 잠이 들었던 터라 알람을 듣고도 비몽사몽 하며 침대에서 잠과 사투를 벌였다. 하지만 하늘에서 만끽하는 일출은 포기할 수 없는 볼거리. 졸린 눈을 비비며 이불을 박차고 나왔다.
소형 버스에 몸을 싣고 아직 사방이 깜깜한 도로 위를 달렸다. 아직도 몽롱한 상태라 자동차의 덜컹거리는 소리가 머리까지 울리는 듯했다. 얼마쯤 갔을까. 버스가 멈추고 차 문이 열렸다. 저 앞에서 새벽의 고요를 깨뜨리며 “슈욱~ 슈욱~” 소리와 함께 커다란 불을 뿜는 용 몇 마리가 보인다. 사실은 열기구에 동력이 되는 화구다.
몇 개의 열기구가 사람을 태우는 큼지막한 바구니에 묶여 하늘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서 불 뿜는 소리가 점점 더 요란해졌다. 열기구의 엔진 격인 화구는 하나의 열기구에 4개 1조로 달려 있다. 가스로 불을 만들어내는 터라 소리나 화력이 대단하다.
사람이 제법 모이자 각자 정해진 바구니에 들어가 이륙 준비를 했다. 좁은 공간에 촘촘하게 서니 새벽 찬바람에도 몸이 따뜻하다. 더욱이 머리 위에 화구에서 뿜어내는 열기도 뜨거워서 불을 뿜어낼 때면 얼굴까지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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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운무가 낀 호수가 모습을 드러내는데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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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눈높이에서 저 멀리 해가 떠오르고 발밑에선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
열기구는 정말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마치 서 있는 상태에서 가볍게 공중으로 떠오른 것 같은 느낌이랄까. 지면과 멀어질수록 하늘을 나는 기분도 점점 커져갔다. 발가락이 간질거릴 만큼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신기했다.
하늘에서 보는 일출 역시 지금까지 무수하게 보고 카메라에 담았던 일출과 달랐다. 저 멀리 해가 떠오르고 발밑에선 세상이 새로운 하루를 시작했다. 마치 조물주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것 역시 백 마디 말보다 경험해보길 추천한다. 그저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한 풍경이었다.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에 눈을 대고 있는 순간이 아까울 정도였다.
땅으로 내려올 땐 운무에 싸인 한 폭의 수묵화와 마주했다. 시야가 하얗게 가려졌다가 열릴 때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눈앞에 그려졌다. 정신은 말짱한데 꿈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그저 신비로웠다. 잠시였지만 여전히 여운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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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야가 하얗게 가려졌다가 열릴 때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눈앞에 그려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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