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우리 이야기…‘가장 따뜻한 색, 블루’
그냥, 우리 이야기…‘가장 따뜻한 색, 블루’
  • 글 이지혜 기자 / 사진제공 판씨네마
  • 승인 2016.10.28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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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MOVIE

동성애 영화를 주제로 정하고, 고민할 것 없이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 영화 속 주인공과 우리가 1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생생한 첫사랑의 아찔한 추억, 열렬한 사랑, 바보 같은 선택과 후회. 모두가 한 번은 겪어봤을 사랑이 동성애자라 해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이토록 잘 말해주는 영화는 또 없을 거다.

여느 소녀들과 다를 바 없는 평범한 고등학생 아델에게 횡단보도에서 우연히 스치며 지나간 파란 머리 엠마가 잊히질 않는다. 엠마의 이름도 모르던 때, 아델은 뭔가 잘못된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교제하던 남자친구와 헤어진다. 혼란 속에 찾아간 게이 바에서 아델은 엠마를 찾고, 둘은 예고된 듯 사랑에 빠진다.

아델의 눈동자는 항상 불안하다. 그곳이 어디든, 불시착한 사람처럼 허둥대고 애처롭다. 심지어 영화의 후반부까지 아델은 그 불안한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린다. 그에 비해 엠마는 어디서든 당당하다. 아델을 처음 만나던 횡단보도에서도 그랬다. 뚫어져라 아델을 바라본다. 모든 것을 섞을 수 있는 탄산수 같다. 엠마에게 아델은 뮤즈다.

둘의 사랑은 때로는 당당하게, 때로는 위태롭게 이어진다. 공원에서 서로를 바라보다 키스하고, 비밀스런 스킨십을 하고 부모님께 소개하거나 부모님을 속이고, 의심하고 질투한다. 하지만 이게 다가 아니다.

무엇보다 가장 아름다운 부분은 색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블루 그 자체였던 엠마는 아델을 만나며 서서히 색을 지워간다. 반면 아델은 엠마를 만나며 점점 블루로 물든다. 아델이 가는 곳, 입는 옷들은 서서히 블루를 닮아간다. 영화의 후반부, 아델이 새파란 원피스를 입고 엠마에게 가는 장면은 제목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영화는 또 아델을 통해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멍하니 다물어지지 않는 아델의 입은 욕망의 결정체다. 토끼 같은 이빨을 하고선 웃을 땐 바니 같다. 소스를 묻히며 스파게티를 먹고, 좋아하는 선배를 만날 때도 샌드위치를 쩝쩝대며 먹는 아델, 손가락까지 쪽쪽 빨아먹는 그녀의 순수한 식탐은 영화의 어떤 장면보다 야하다.

성욕도 마찬가지다. 엠마를 만나 처음으로 동성애에 눈뜨게 되고, 그녀의 몸을 통해 새로운 욕구를 알아가는 아델. 영화는 내내 아델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다른 배경은 잔인하리만치 보여주질 않는다. 감독은 아델을 비롯한 등장 인물의 얼굴을 프레임 가득 담아내며 모든 전달을 대신한다.

영화는 동성애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사랑이 서툴고, 소중한 것이 얼마나 쉽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지 모르던 시절로 돌아가 거울을 보는듯한 느낌이다.

영화는 참 잔인해서, 현실과 더 가깝다. 감독은 아델에게 다음 사람을 주지 않았다. <500일의 썸머> 속, 래빗 오빠가 어텀을 만난 것 같은 자비를 내려주지 않았단 거다. 그 이유는 바로, 알기 때문이다. 아델의 방황이 단지 어텀이 나타난다고 해서 끝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더 많은 후회와 눈물이 필요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그랬듯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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