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엄마가 죽었다…알베르 카뮈 <이방인>
오늘, 엄마가 죽었다…알베르 카뮈 <이방인>
  • 발췌 및 글 오대진 기자 / 사진 정영찬 기자
  • 승인 2016.10.2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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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BOOK

그때 갑자기 거리의 가로등에 불이 들어오면서, 밤하늘에 떠오른 첫 별들이 빛을 잃고 희미해졌다. 나는 이제 행인들과 불빛으로 가득한 보도를 쳐다보느라 눈이 지쳐 오는 것을 느꼈다. 젖은 포장석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빛났다. 규칙적인 시간 차를 두고 전차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 반사광이 빛나는 머리칼이나 미소, 또는 은팔찌 위에서 반짝였다. 이내 전차들도 한결 뜸해졌고 나무들과 가로등 위로 밤은 이미 어두웠다. 어느덧 거리는 텅 비었다. 마침내 첫 번째 고양이가 나타나 다시금 한적해진 길을 천천히 건너갔다. 그제야 나는 저녁을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났다. 오랫동안 의자 등받이에 기대고 있었던 탓에 목덜미가 약간 아팠다. 나는 거리로 내려가 빵과 파스타를 사온 뒤 저녁을 만들어서 그냥 선 채로 먹었다.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이제 공기가 선선했고 약간 추웠다. 창문을 닫고 되돌아올 때 문득 거울에 비친 식탁 귀퉁이가 눈에 들어왔다. 알코올램프가 놓여 있고 그 옆에 빵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식탁. 그러자, 언제나처럼 또 하루의 일요일이 지나갔고, 엄마는 이제 땅속에 묻혔으며, 나는 다시 일터에 나갈 것이고, 그리고 어쨌든 아무것도 바뀐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는 내게 엄마 장례식 날 과연 슬픔을 느꼈는지 물었다. 이 질문에 나는 크게 놀랐다. 나라면 누군가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만 할 경우 지극히 난처해했을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습관을 약간은 잃어버린 나로서는 그 문제에 관해 뭐라 답하기가 힘들다고 말한 뒤 대답을 이어 갔다. 아마 나도 엄마를 무척 사랑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모든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바라기도 하지 않은가……. 이 대목에서 변호사는 내 말을 잘랐다. 그는 몹시 불안스러운 태도를 보이며, 내게 공판장에서든 수석 판사 앞에서든 방금 같은 발언은 하지 않을 것을 다짐시켰다. 나는 내가 육체적 욕구 때문에 종종 감정이 교란되기도 하는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그에게 설명하려 했다. 엄마 장례식 날만 해도 나는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자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파악하지 못했다, 어쨌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엄마가 죽지 않았다면 더 좋았으리라 생각한다는 점이고……. 그러나 변호사는 그다지 만족한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 정도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변호사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그날 내가 자연스러운 감정을 잘 다스렸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질문했다. 나는 <아니요, 그렇게 말한다면 거짓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비록 피고석에서일지언정, 자기 자신에 관해 남들이 늘어놓는 얘기를 듣는 일은 언제나 흥미롭다. 검사와 내 변호산 간의 공방이 벌어지면서 나에 관해 실로 많은 얘기가 오갔는데, 어쩌면 그러면서 그들은 내가 저지름 범죄보다는 나 자체에 대해 더 많이 말한 셈이었다. 게다가, 그 둘의 변론이 진정 그토록 다른 것이었는가? 변호사가 두 손을 들어 올리며 죄인을 변호한 후 용서를 구한 사람이라면, 검사는 두 손을 뻗어 죄과를 고발하고 용서를 구하지 않은 사람이었을 뿐이다. 어쨌든 한 가지 사실이 막연하게나마 내 마음에 걸렸다. 조심을 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때때로 이야기에 끼어들고 싶었고, 그때마다 변호사는 내게 <말하지 마세요. 그게 당신 사건을 위해선 더 낫습니다>라고 이르곤 했다. 어떤 식으로 보자면 그들은 나를 제쳐 놓고 내 사건을 다루고 있는 듯했다. 모든 것은 나의 개입이 배제된 채 진행되었다. 내 운명이 내 의견의 반영 없이 처분되고 있었다. 나는 모든 이의 말을 중단하고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기소된 사람은 대관절 누구인 거지요? 기소된다는 건 중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나도 얼마간 할 말이 있다고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한 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사람들을 잡아끄는 흥밋거리는 그다지 오래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방인> 40~41, 93~94, 139~139쪽에서 발췌

이방인L'ctranger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지음, 김예령 옮김(2011. 5, 열린책들)

무덤덤, 시큰둥, 그리고 거짓 없는 뫼르소가 그의 솔직한 감정 표현 때문에 결국 사형 선고를 받는다. 있는 것 이상, 느끼는 것 이상을 말하는 거짓말이 삶을 쉽게 만드는 사회, 그 사회에서 벌거벗은 이방인의 인생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솔직함이 규범에 맞지 않아서.

알베르 카뮈 자신의 유년 시절 기억과 가난, 그리고 그가 태어난 알제리 서민가의 일상이 녹아있는 <이방인>은 1942년 발표한 작가의 처녀작으로, 전쟁과 부조리로 가득해 의미 없는 세상에서 ‘죽음만이 인생의 목적’이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삶이 의미 있음을 역설한다.

카뮈는 영문판 서문에서 <이방인>을 이렇게 요약했다.
“우리 사회에서 자기 어머니의 장례식에 울지 않는 모든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을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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