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로 완성한 도약
낙하로 완성한 도약
  • 이지혜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6.10.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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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재형 PD

7년간 50여 개국을 돌아다니며 EBS <세계테마여행>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탁재형. 과감히 일을 내려놓고, 팟캐스트 <여행수다> 운영자로 살다 최근 세 번째 책,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를 출간했다. 누구보다 바쁘게 사는 것 같던 그. 단정한 눈주름에 쌓인 연갈색 눈빛이 소년의 호기심을 품고 이야기를 끌어 나갈수록, 누구보다 여유롭고 나른한 인생을 즐기는 남자가 보였다.

반가워요. <아웃도어>는 처음이죠?
그동안 인연이 없었는데 이렇게 만나니 좋네요. 탁재형입니다. <세계테마기행>과 팟캐스트 덕분에 여행전문PD로 많이 알고 계실거에요. 하지만 KBS <도전! 지구탐험대>를 비롯해 KBS <세상의 아침>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했죠. 이라크 난민 취재를 위해 요르단에 들어가기도, 수단 내전 현장을 취재하기도 했던 해외 전문 다큐멘터리 PD였습니다. 지금은 과거형이지만요. 최근 신간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를 출간했습니다.

이번 책도 알차네요.
지금까지의 책이 실용서에 발을 걸친 칼럼 형식이었다면, <비가 오지 않으면 좋겠어>는 문학의 세계에 한 발짝 다가간 순수 에세이라 할 수 있어요. 직접 촬영한 사진과 함께 생각의 비중을 가장 높여 작업했죠. 올해의 반은 책 작업에 몰두했어요. 수년간 일을 하며 비자발적으로 해외에 나갔죠. 그 과정에서 여행에 대한 갈망을 느낀 부분을 담도록 노력했어요. 여행을 권유하는 책 치고는 우울할지도 모르지만, 그게 사실인걸요. 일상이 힘들고 과감히 여행을 떠나고픈데 겁난다면, 제 책을 보고 용기 내실 분이 많을거에요. (웃음)

PD시절과 지금이 어떻게 다른가요?
책에도 썼지만, 취재를 다니며 제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을 종종 만났어요. PD초년생이던 시절, 그리스에서 만난 어부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오전 9시에 일과를 끝내죠. 물고기를 양동이 한통에 낚아와 가게에 팔고 남은 것도 다 줘버려요. 사람들은 그의 삶을 두고 직물적인 걱정을 하죠. 하지만 그는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천천히, 또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었어요. 20년 간 가족과 함께 천천히 집을 짓고 있었어요. 그의 집은 그때까지도 철골이 튀어나와 울퉁불퉁했죠. 놀랍지 않나요? 그런 사람을 만나보니, 저도 오롯이 제 시간을 즐기고 싶었죠. 그래서 과감히 직장을 그만두고 그런 시간을 보내봤어요. 스스로 매우 만족스럽고 지금 제 자리가 행복해요.

해외에 나가며 좋은 경험을 많이 한 것 같아요.
한 번은 뉴질랜드 퀸스타운에서 번지점프를 했어요. 반 강제로 뛰긴 했지만, 뛰어보니 아래를 향한 도약만큼 멋진 건 없더라고요. 기를 쓰고 위를 향해 살아왔지만, 어느 순간 아래를 향해 손에 쥐고 있던 걸 놓음으로서 채워지는 내면이 느껴지더군요. 최근 네팔을 다녀왔어요. 오래도록 걸으며 몸이 가벼워 진 걸 느꼈어요. 유지하고 싶더군요. 결국, 집 앞에서 러닝을 시작했어요. 태어나 한 번도 자발적으로 뛰어본 적이 없었죠. 그런데 스스로 무리하지 않고 뛰어보니, 그만큼 재밌는 것이 없더군요.

자발적인 행동의 의미를 알고있는 것 같아요.
우린 항상 기록을 갱신하고, 한계를 뛰어넘고, 어딘가에 도전하고,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명제 속에 살고 있어요. 저는 우리 스스로에게 “한계를 그만 뛰어넘자”고 외치고 싶어요. 달리기도, 여행도, 일도 마찬가지예요. 무리하지 않고 하다보면 재미있게 오래할 수 있어요. 모든 것을 관두고 여행을 떠나란 이야기가 아니에요. 본인의 자리에서 목표를 향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중요한 것은, 지금 가진 것을 조금 놓아도 큰일 나지 않는단 거예요. 이 말을 꼭 말하고 싶어요. 같은 맥락에서 이번 책에 담긴 것도 그런 이야기들이죠.

지금은 만족스럽게 즐기고 있나요?
2014년 다니던 직장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저만의 시간을 가졌어요. 한동안은 정말 아무것도 안했어요. 고양이처럼 늘어져 나른한 시간을 보냈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어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점점 여행하며 사는 삶을 이루고 있죠. 사실 저처럼 여행과 가깝지만 정작 저만의 여행을 못하는 직업도 없었을거예요. 지금은 일이 아닌 진짜 여행을 하고 있어요. 그리스 아저씨가 집을 지어 나가듯 말이죠. 요즘처럼 만족스러운 시절이 없어요.

네팔을 다녀왔다고 하셨는데?
최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네팔에 동행했어요.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하셔서, 제가 아는 네팔 단체와 연결하게 됐죠. 정치적 연관성을 떠나 동행한 후, 문재인 전 대표를 더욱 존경하게 됐어요. 많은 매체에서 다큐멘터리 제작과 연관이 있다고 하시는데 사실 영상은 촬영하지도 않은 걸요. 추측성 기사일 뿐이죠.

남은 2016년은 뭘 할 계획인가요?
여행을 통해 많은 분과 소통할 예정이예요. 9월엔 크루즈 동반여행, 10월엔 뉴질랜드로 떠나요. 여행을 사랑하는 분들과 함께요. 여행으로 더 많은 사람과 만나고 싶을 뿐이죠. 제가 느낀 것을 공유하고 더 재밌게 여행하기 위해 고민하고 있어요. 인생에 큰 계획은 없어요. 그저 지금 재미있게 살다가 ‘잘 놀다 갑니다’하며 훌쩍 떠나는, 번지점프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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