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텐트의 단종
사라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텐트의 단종
  • 글 사진 ‘양식고등어’ 조민석 기자
  • 승인 2016.09.28 16: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식고등어’의 텐트 이야기

이달의 주제는 단종입니다. 과거에 비해 경영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오늘날 텐트 시장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현상이지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선택의 다양성이 사라진다는 점에서 안타깝지만 제조자나 판매자의 입장이라면 살아남기 위해 택해야만 하는 뼈아픈 선택이기도 합니다.

▲ 1990년대 중후반에 출시되었던 마운틴 하드웨어의 룸 위드 어 뷰 텐트입니다. 현재까지도 출시되고 있는 트랑고 시리즈도 그 당시에 함께 판매되고 있었는데, 안에서 우레탄 창으로 바깥을 볼 수 있는 구조만을 메리트로 삼기에는 트랑고 시리즈에 비해 포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 마운틴 하드웨어의 트랑고 시리즈입니다. 전체적인 구조 자체가 무난한데다가 실내 가장자리의 공간도 비교적 잘 살려낸 것이 장점입니다. 약간의 업그레이드로 큰 변화 없이 20여 년째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지요.

앞서 텐트메이커가 텐트를 단종시키는 이유로 경영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시장의 흐름을 언급했었는데요. 사실 이러한 시장의 흐름 속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주체는 바로 소비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구요?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기준에 가장 부합하는 텐트들은 더 많이 팔리고, 그렇지 못한 텐트는 더 적게 팔리겠지요.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기준에 더 부합하는 텐트를 만들기 위해 상품을 개선하거나 디자인의 세대교체 시기를 정하는 등 새로운 텐트를 개발하는 데에 벌어들인 수입을 투자합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결국 출시된 지 오랜 시간이 지났거나 다른 텐트 모델과 중복되거나 사용상 효율성에서 열세를 보이는 텐트 모델들은 생산량을 줄이다가 마침내 단종시키는 선택을 내립니다.

▲ 2016년에 출시한 트랑고 텐트입니다. 우레탄 창의 크기가 작아지고 모양이 조금 바뀐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점이 없습니다.

▲ 트랑고 시리즈와의 경쟁에서 밀린 스카이뷰 모델입니다. 구조 자체가 무난하지 않았던 탓이었는지 룸 위드 어 뷰 텐트가 단종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모델도 단종의 길을 걸었습니다.

소비자들이 많이 선택하는 텐트와 적게 선택하는 텐트의 핵심 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해 일일이 생각해본다면 수도 없이 많은 요소들이 나올 것입니다. 다만 그 많은 요소가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제쳐두고 소비자들이 많이 찾지 않는 텐트는 그만큼 상품으로서의 수명이 짧아지다 못해 끝나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텐트메이커들이 지난 반 세기동안 만들어온 역사 속에서 단종에 관한 사건들은 꽤나 많습니다. 디자이너에 대한 이야기로는 마운틴 하드웨어의 마틴 제미티스가 있고, 브랜드 관련 이야기로는 가루다나 잔스포츠가 있습니다.

▲ 스페이스 스테이션 텐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출시된 4인용 더블월 텐트 새틀라이트 DW입니다. 트랑고 시리즈와 경쟁하며 자연스럽게 밀려난 텐트 중 하나입니다. 같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개발된 더블월 대형 텐트인 스트롱홀드나 싱글월 대형 텐트인 스페이스 스테이션은 대체할 수 있는 경쟁모델이 없다 보니 지금까지도 명맥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 마틴 제미티스의 이야기부터 살펴봅시다. 마틴 제미티스는 마운틴 하드웨어에서 텐트 디자이너로 일하는 동안 마진을 줄이더라도 텐트 모델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다양한 선택의 즐거움을 주는 전략을 펼쳐 나갔습니다. 당시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눈이 즐거운 전략이었죠. 당시 많은 텐트 브랜드가 사용인원이나 계절별로 2개 이상의 모델을 중복해서 내놓지 않는 분위기에서 마틴 제미티스의 전략은 말 그대로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만 여기서부터 부작용이 생기기 시작했죠. 같은 크기를 가진 비슷한 용도의 텐트들이 중복되어 카탈로그에 등장하다 보니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적지 않은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비자들의 니즈를 ‘효율적으로’ 공략하는 데 실패한 나머지 그에 따라 적자를 내는 모델 수도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 룸 위드 어 뷰와 비슷한 시기에 개발된 더블월 실리콘 코팅 텐트인 유르트도 트랑고 텐트와의 경쟁에서 밀린 비운의 텐트입니다.

▲ 노스페이스의 아포지 텐트입니다. 바이블러 사의 토드텍스 원단이 한창 인기를 끌 당시 새롭고 다양한 텐트 모델 개발에 열중이던 노스페이스에서 큰돈을 투자해 개발한 버텍스 원단으로 만든 텐트인데, 10여 년 전 당시 1,000불에 달하는 비싼 가격 때문에 단종된 사례입니다.

이에 대한 대응으로 경영진 쪽에서는 모델의 수를 줄이는 동시에 마진율을 높이라는 주문을 했고, 이 과정에서 마틴 제미티스와의 불화가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용도가 중복되는 모델의 수를 줄여 효율성을 높이자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품질을 낮춰가면서까지 마진율을 높이라는 주문에 대해서는 동의하기 어려웠던 것이지요. 이 과정 속에서 국내에는 정식으로 수입된 적 없는 여러 텐트 모델들이 단종의 길을 걷게 되었지요. 이후에는 품질보다 수익성을 중요하게 생각한 경영진과의 의견 차를 줄이지 못한 채 마틴 제미티스는 퇴사를 선언했고, 지금은 슬링핀이라는 텐트메이커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마틴 제미티스와 마운틴 하드웨어의 해프닝만큼 잘 알려져 있진 않지만, 노스페이스의 모기업인 VF 그룹에 편입된 잔스포츠도 텐트 단종에 관한 사연이 있습니다. 잔스포츠는 VF 그룹에 편입되기 전까지만 해도 자체적으로 마운틴 돔이나 트레일웨지 같은 괜찮은 텐트 모델들을 가지고 있었는데, 텐트의 강자 노스페이스와 한 그룹에 속하면서 입지에 적지 않은 위협을 받게 되었지요.

▲ 1980년대와 90년대의 싱글월 텐트 시장에서 당당하게 주류를 이끌었던 바이블러 사의 밤쉘터 텐트입니다. 30년이 넘는 세월동안 단종 되지 않고 꾸준히 시장을 지켜 온 모델인데요. 최근에는 브랜드들이 원가절감을 추구하다 보니 구형 모델이 도리어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

잔스포츠가 텐트 분야에서 입지를 위협받게 된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노스페이스가 지오데식 돔 구조의 텐트를 여럿 선보이며 인기몰이를 하자 모기업의 입장에서는 잔스포츠가 백팩에 더욱 매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단종은 텐트메이커들이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만 하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텐트 모델을 개발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죠.

▲ 유럽 한정으로 잠시 출시되었다가 단종된 노스페이스의 히말라얀 45 모델입니다. 리지 폴을 활용해 후면 양쪽으로 환기구를 크게 만들어 더블월 텐트가 가질 수 있는 환기 기능을 극대화시킨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다만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단종이 그리 반갑지는 않을 것입니다. 텐트 디자인의 다양성이 줄어드는 것은 둘째 치고, 소비자와 텐트메이커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수평적 발전의 되풀이’ 입니다. 분명히 새로운 텐트 모델은 계속 출시되고 있는데, 그 목적이 단순히 단종시킨 텐트의 판매고를 대체하는 것에 머무른다면, 혹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데 소홀해진다면 소비자가 과연 새로운 텐트의 출시를 반가워하게 될까요?

텐트 시장 전체의 수준을 높이는 발전을 추구하기 위해서 소비자와 텐트메이커는 어떤 선택과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일까요? 이 질문이 바로 오늘날 자본주의적인 사고가 팽배한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질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