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통해 사람과도 소통하고 싶었다
식물을 통해 사람과도 소통하고 싶었다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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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TO PEOPLE 사진가 유재학

대부분의 사진전공자들은 재학시절, ‘작가’가 되기를 꿈꾼다. 물론 그중에는 처음부터 광고사진을 찍겠다는 이들도 몇몇 있긴 하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광고사진은, ‘작가’로 자기만의 영역을 구축한 사진가들과 거의 비슷한 레벨의 작업들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보그>나 <엘르> 같은 패션지의 사진이나 내로라하는 브랜드의 광고사진 같은 것 말이다.

그런 작업을 하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사진 필드 역시 학력과 인맥이 무시할 수 없는 실력의 하나로 간주되고 있기에, 이 세계의 주류 대부분은 부족할 것 없는 학력과 재력 등의 힘을 이미 차지하고 있다.

유학파들이 넘쳐나는 이 세계에서 ‘서울예전 사진과 졸업’을 끝으로, 오직 사진만으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해 온 사진가가 있다. 바로, 재학시절 단체전 ‘죽은 듯 실눈 뜨고(1987)’를 시작으로 1992년 ‘사진과 예술’, ‘아! 대한민국’ 등의 전시로 꾸준히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사진가 유재학(47)이다.

‘듀안 마이클’을 떠올리게 하는 내러티브를 생산해 내는 연작사진과, 이미지에 텍스트를 살짝 섞어 묘한 부딪힘을 만들어내는 그의 작업은 신선했고, 사진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뿐만 아니라 그는 패션사진에서도 두각을 나타낸다. “함께 대학시절을 보낸 형이 패션사진을 찍었고 또 좋은 클라이언트들을 만났기 때문”이라는 말로 대수롭지 않은 듯 이야기하지만, 그는 20~30대에 개인작업과 패션사진을 넘나들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인다.

패션작업을 할 때면 너무 기운이 빠져서 반드시 ‘휴지기’를 두었다는 그는 그의 휴식장소로 따뜻한 남국을 택한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필리핀, 그 따뜻한 어느 바닷가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불안해하지 않고, 내일을 겁내지도 않고,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듯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는다.
“그들의 그 여유가, 얽매이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관조하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한때는 동남아 스페셜리스트를 꿈꾸기도 했지요.”

하지만 결혼을 하면서 ‘생계’가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자 그는 개인작업 대신 ‘돈이 되는 작업’에 주력한다. 가정을 책임지지도 못하면서 개인작업을 하겠다는 건 너무 큰 욕심 같았기 때문이란다. 그렇게 벌어진 사진과의 간극은 한동안 그 상태를 유지해오다, 2009년 상상마당 작가로 선정되면서 오랜 잠에서 깨어난다. 그의 기지개를 알린 작업은 길 위에 핀 꽃과 풀들을 촬영한 작품이었다.

그의 셀프작업에 익숙해 있던 터라 다소 의아했지만, 그가 촬영한 꽃과 풀, 그리고 숲을 보면서 ‘사진가 유재학’이 오버랩되는 것을 보니 대상이 바뀌었을 뿐, 그는 계속 자신을 찍고 있는 것만 같다.

그에게 물었다. 왜 거리의 꽃이었냐고.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성격상 사람들과 가깝게 지낸다는 것이 제게는 어려운 일이거든요. 저의 소소한 일상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게 아직도 그리 편하지는 않아요. 대신 늘 언제나 그 자리에서 기다려주는 식물은 언제 오냐고 재촉하지도, 늦었다고 불만을 갖지도 않죠. 나를 편안하게 하는 식물과의 소통을 통해 사람들과도 소통하고 싶었다면 너무 큰 욕심일까요?”

그는 기자에게 “사진이라는 무기로 세상이라는 바다를 잘 건너가길 바란다”고 했다. 어쩌면 그건 자신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지 않았을까.

동남아 사람들의 그 여유가, 얽매이지 않고 흘러가는 대로 살아가는, 삶을 관조하는 듯한 태도가 마음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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