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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외설, 그사이에 서서
예술과 외설, 그사이에 서서
  • 이지혜 기자|사진제공 스폰지, 티캐스트
  • 승인 2016.08.26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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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MOVIE <숏버스>, <우리도 사랑일까>, <아름다운 청춘>

예술과 외설은 얼마나 먼 거리를 두고 지낼까. 에곤 쉴레와 카미유, 클림트, 마네는 당시 외설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작가로서 활동을 이어나갔다. 지금 그들의 작품을 외설로 해석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 꼭 필요한 장면, 혹은 성(性)에 대한 솔직한 담론, 상처를 푸는 하나의 도구로서의 성. 성을 다룬 영화는 대부분 예술과 외설 사이에서 끊임없이 자리를 바꿔가고 있지만, 그것을 평가하는 것은 어쩌면 지금보단 내일일 수 있다. 어쨌든 과감한 볼거리와 날카로운 비판을 한 데 섞어 작품을 만들어내는 그 어딘가의 외설스러운 당신에게, 그리고 과감히 예술과 외설을 판단하며 비난을 쏟아낼 준비를 하는 예술스러운 당신들에게도, 응원을 보낸다.

누군가에겐 첫 장면이 그저 쇼킹해 내내 외설적인 호모 영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선을 조금만 바꿔 영화 속 등장하는 인물의 상처를 바라보자. 사람들은 내가 게이 시장이라 에이즈를 막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하는 전직 시장의 고백. 우리는 모두 상처를 참아요, 하는 담담한 말투. 그 뒤로 흐르는 아름다운 노래는 우리도 모른 채 심장을 파먹고 있던 상처를 살그머니 만져주고 간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OST는 평생 소장해도 아깝지 않다. <숏버스>는 삶이 힘들 때, 문득 생각나는 영화 리스트에 곱게 끼어 있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유하던 부부의 인생에 갑자기 등장한 옆집 남자. 아내와 남자의 이상한 감정은 영화 초반부터 오묘한 균열을 일으킨다. <우리도 사랑일까>는 <화양연화>의 캐나다판 29금 영화다. 다른 것이 있다면 시간이 퇴색시킨 지루한 사랑을 끝내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지만, 늘 그렇듯 공평한 시간이 지나면 결국 퇴색하게 되어있다는 진리를 잔인하리만치 잘 말해주고 있다는 것. 여자가 사랑했던 것은 그 사람일까, 사랑에 빠진 자신이었을까? 인물의 심리묘사와 연출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국내에선 좀처럼 보기 힘든 영화 <아름다운 청춘>은 1995년 만들어진 스웨덴 영화다. 스웨덴을 대표하는 감독 보 비더버그의 유작으로 유명하다. 여선생과 남제자의 육체적 관계로만 치부하기엔, 성장통을 겪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을 담은 묵직함이 크다. 관계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유급을 준 여선생에게 바지 지퍼를 내리고 모욕감을 주는 장면은 한국에서 상영 거절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했지만, 영화가 아직도 기억되는 가장 중요한 장면이기도 하다.

몇 달 전, 한 가수의 신곡이 고고한 문학작품을 외설적으로 해석했다는 논란에 휩쓸린 적이 있었다. 요즘 다시 활동을 시작하는 1세대 아이돌 그룹은 20여 년 전에 염색했다는 이유로 지상파 방송 활동을 못 했다. 미디어는 20년이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염색이 방송 부적합하던 시절에서 속옷 같은 옷을 입고 나와 춤을 추는 시절로 급변했다. 그동안 우리는 외설과 예술 사이에서 충분한 논쟁을 하지 못했다. 문학작품을 외설스럽게 해석해 상업적 음악을 만든 것의 잘잘못을 따지는 현상은, 꼭 필요했던 과정을 겪지 못한 우리가 다급하게 맞닥뜨린 숙제 같은 것이었다. 예술과 외설의 사이 어딘가에 함께 서서, 서로의 이야기를 천천히 듣고, 이해하고, 설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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