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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UTDOOR‘란 무엇인가
‘OUTDOOR‘란 무엇인가
  • 김영도 원로 산악인
  • 승인 2016.08.23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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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산악인 김영도

▲ 김영도 선생이 직접 육필로 작성한 원고. 사진=양계탁

원로 산악인 김영도 선생이 지난 7월 말 아웃도어글로벌 본사에 방문했습니다. 93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한국과 해외 산악계를 논하는 김영도 선생의 날카로운 지성은 여전히 빛났습니다.

김영도 선생이 저의 사무실을 방문한 이후 귀중한 원고를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 ‘OUTDOOR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풀어낸 심도 깊은 성찰이 돋보이는 글이었죠.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귀중한 육필 원고였습니다. 디지털이 만연한 이 시대에 만년필로 빽빽이 채운 200자 원고지를 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김영도 선생은 여전히 왕성합니다. 과거 세계적인 산악인 라인홀트 메스너의 책을 번역한 인연으로 울주산악영화제 참석차 방한한 메스너를 만나는 역할도 담당했습니다. 그런 선생이 남기는 ‘아웃도어’에 관한 단상,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편집자 주>

▲ 김영도 선생의 육필 원고.

영어사전을 펼치다가 “I'm happiest when I'm outdoors”라는 말에 눈이 갔다. 밖에 있을 때 가장 즐겁다는 이야기다. 밖이란 집이나 일터를 벗어나 야외에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늘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홀가분하게 어딘가 가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생활은 예전에도 있었으며, 사람들은 시골 별장에서 쉬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부유층의 이야기였지만 그때는 ‘아웃도어’라는 말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나들이가 일반화되고, 아웃도어라고 부르게 됐다. 바다로 산으로 해외로 무대도 넓어졌다. 이러한 생활 의식과 양식은 어디서 왔을까.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겠지만, 그런 단순 논리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아웃도어에는 현대적 의미가 있다. 현대사회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OUTDOOR’라는 낱말은 INDOOR의 반어(反語)이지만, 그 뜻은 ‘실외’가 아니고 ‘야외’이며 바로 ‘자연’을 말한다. 예전에 없던 현대적 해석인 셈이다.

아웃도어 라이프는 우선 의(衣)·식(食)·주(住)의 이동을 조건으로 한다. 등산이 그런 것인데, 아웃도어는 그 세계가 다르다. 등산은 어려움과의 싸움이지만 아웃도어는 전적으로 휴식이다. 여기 유사점이 있다면 모두가 일상성에서의 탈출이며 도피라는 점이다. 그리고 등산은 언제나 에스컬레이트(escalate, 확대되다_편집자 주) 해서 높이와 어려움이 더해가지만 아웃도어는 휴식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간다.

▲ 93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날카로운 필력을 보여주는 김영도 선생의 글.

아웃도어는 여유와 자유를 전제로 하는데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있다. 모처럼의 여유와 자유가 낭비되고 휴식 아닌 피로를 가져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아웃도어에는 일종의 특권이 있다. 펜션과 빌라와 호텔이 아닌 ‘야외’인 것이 그것인데, 야외에서 비로소 우리는 평소 도시 생활에서 체험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인 달밤과 별하늘과 고요에 눈이 가고 느낀다. 바쁘고 번잡한 일상생활에서 잊은 지 오래된 현상이다.

자유란 ‘~로부터의 자유’를 말한다. 우리는 야외로 나갈 때 비로소 일상적 염려와 구속을 잊는다. 이때 사람들은 시인이 되고 예술가가 된다. 누구에게나 있는 심미적 감성이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언젠가 읽었던 시나 글귀가 생각나고, 부를 줄 모르는 노래도 혼자 부르게 된다.

이럴 때 나는 곧잘 한여름 지리산 노고단의 원추리 꽃밭을 생각하고, 적설기 덕유산의 설화를 눈앞에 떠올린다. 그것은 등산의 세계지만 이런 지난날의 체험이 오늘날 나의 아웃도어를 더욱 즐겁게 해준다.

아웃도어는 고원과 호수와 숲을 예상하고 전제로 하는 야외로 우리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이다 보니 우리는 그 속에서 사는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있다. 사람들은 야외에 나가면 으레 둘러 앉아 먹고 마시며 대성방가한다. 모처럼의 흥겹고 자유로운 시간이다.

괴테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했고, 워드워즈는 ‘생활은 낮게 생각은 높이!’라고 읊었다. 그 짧은 인생 속에서 모처럼 찾은 아웃도어를 나는 잠시나마 시인답게 그리고 예술가답게 되고 싶다.

지난 70년대가 생각난다. 국민 소득이 1,000달러였을 무렵 유럽에서는 젊은이들이 승용차 지붕에 자전거를 싣고 거리를 달리고, 캠핑카를 차에 달고 가기도 했다. 그들은 필경 알프스를 자전거로 넘고 곳곳에 있는 캠핑사이트에 끌고 온 본바겐을 세워놓고 휴가를 즐겼을 것이다.

베르간스, 라푸마, 밀레 등의 유명 브랜드가 흔했던 시절 이야기다. 당시 우리에게는 없던 것들이다.

그러던 우리였는데 이제 그들이 조금도 부럽지 않게 됐다. 아웃도어의 무대는 어떻든 우리의 형식을 나무랄 데가 없을 정도로 갖추어졌다. 계절도 없다시피 됐다. 너도 나도 차를 끌고 나와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이제 우리는 양보다 질을 생각할 때가 왔다.

신이 인간을 만들고 인간이 기계를 만들었다고 한 철학자가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기계문명의 혜택으로 살고 있다. 스마트폰과 컴퓨터와 인터넷이 우리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아날로그 시대가 디지털 시대로 이행하며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이 <포스트 휴먼 탄성>이라는 책에서 놀라운 미래제언을 했다.

▲ '아웃도어'에 관한 정의.

‘컴퓨터가 인간의 지성을 넘어 2045년에는 인간과 기계의 구별이 없어진다.’ 그런데 그러한 미래는 이미 시작하고 있다. 젊은이들이 스마트폰과 노트북에 파묻혀 살고 있으며 이제 책이나 LP는 돌보지 않는다. 아웃도어도 그런 생활 의식이나 감정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등산은 끊임없는 지식욕과 탐구욕과 정복욕의 소산이라고 프랑스의 폴 베시에르가 말했는데, 아웃도어는 단순한 생활 감정과 의식에서 왔다. 그런데 그 야외도 변질하고 변모했다. 지난날은 그 중심은 모닥불이었으나 지금은 그런 분위기가 사라졌다.

‘산의 밤, 모닥불 불꽃이 그리는 사람의 실루엣, 그것은 레브란데스크의 힘 있는 필촉, 자연이 그린 가장 오래된 조용한 인물화.’ 이 글은 29세에 일본 알프스에 간 선구적 등산가의 단상이다. 깊은 산중 호반에 홀로 천막을 친 크루소는 마치 대성당에 있는 것 같다고 했던 글이 생각난다.

‘A new peace and elation entered his life.’ 이러한 정신의 고양을 나는 아웃도어에서 만나고 싶다.

아웃도어 라이프의 요체(要諦)는 정적과 고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때 정적은 무음(無音)의 세계가 아니며 바람에 나뭇가지가 울고 옹달샘의 물소리가 들릴 때 정적은 깊어가며, 1,000미터 높은 곳에 홀로 피어있고 금강초롱이 우리를 더욱 고독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여행 자유화 시대에 살고 있다. 많은 사람이 멀리 해외로 나간다. 그런데 그들은 돌아올 때 무엇을 가지고 오는지 모르겠다. 몽고와 티베트와 아이슬란드를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나는 가슴을 설레는데, 한 세대 전만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행동반경이다. 이제 나들이는 부유층의 특권이 아니라 생활의 연장인 셈이다.

나 자신은 일찍이 해외원정 차 에베레스트와 그린란드를 체험했지만, 끝내 남은 것은 준엄한 대자연 보다는 찬바람에 떨고 있는 에델바이스의 군락과 만고의 고요의 세계 빙하호(氷河湖)와 북극해의 크고 작은 빙산들이다. 그런데 이런 기억과 연상은 일상생활 속에 있을 때 상기하지 못하며 어디론가 떠나서 마음이 홀가분해질 때 이따금 눈앞에 나타난다.

나는 인생에서 ‘추체험(追體驗)’을 소중히 여긴다. 짧은 인생을 살며 자기의 부족과 공허함을 달래며 채우는 길은 결국 추체험밖에 없다고 생각해서다. 나는 혼자 있으면서 늘 독백하고 대화하는데, 그 바탕이 독서다. 그속에 언제나 상대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셈이다. 독서를 통한 추체험으로 나는 결코 외롭지 않은데, 여기에 아웃도어가 가세할 때 나의 상상의 세계가 넓어진다. 일상의 번잡을 벗어난 고요 속에서 나는 심사(深思) 묵고(默考)한다. 완전한 내 시간이다.

현대사회는 지금 디지털화 되면서 정보 인플레이션이다. 그러나 삶은 고달프고 심신의 피로가 풀릴 날이 없다. 이것이 현대인의 운명이라면 우리는 이 굴레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 길은 쉽지 않다. 여기에 아웃도어라는 현대적 삶의 지혜가 있다. 그것도 많은 준비가 필요없고 가벼운 차림으로 떠나면 된다.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의 사회 같은 오늘날이지만 나는 실망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아웃도어를 즐기며 그 속에서 나의 인생을 되찾는다. 이제 아웃도어는 나의 생활 무대요 공간이다.

김영도 원로 산악인
1924년 평안북도 정주 출생. 서울대학교 철학 학사. 1950년 6·25 자원 입대. 1973년 제9대 국회의원 선출. 1977년 대한산악연맹 회장 취임. 1977년 에베레스트 원정대 대장. 1978년 북극 탐험. 1980년 한국등산연구소 개소. 저서, 1980년 <나의 에베레스트>, 1995년 <산의 사상>, 1997년 <등산시작>, 1990년 <우리는 산에 오르고 있는가>, 2000년 <하늘과 땅 사이>, 2005년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2007년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2009년 <산에서 들려오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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