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긴 휴식의 끝
겨울, 긴 휴식의 끝
  • 글 사진·권혜경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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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일기 37

▲ 윷놀이의 고수들인 어르신 중 한분이 윷을 던지시는 모습. 내공이 보이는 듯하지요?

음력으로 2월 1일인 오늘, 옆 마을 사는 지인이 “마을 분들이 모여 윷놀이를 한다”며 놀러오라고 연락을 해왔습니다. 꽃샘추위의 쌀쌀한 날씨 때문에 방안에만 들어 앉아 무료한 늦겨울을 지내고 있던 저는 연락을 받자마자 곧바로 이웃 마을의 마을회관으로 마실을 갔습니다.

마을마다 잔치처럼 진행됐던 정월대보름 윷놀이대회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조금은 생뚱맞게 느껴져 옆에 계신 이장님 부인께 여쭤보니 이 산골에서는 예로부터 오늘은 원래 먹고 노는 날로 정해진 특별한 날이랍니다. 추수가 끝난 지난 늦가을부터 음력으로 2월 1일인 이날까지만 놀고 다음 날부터는 농사일을 시작한다는, 그러니 겨우내 빈둥거리며 노는 것을 이 날을 기점으로 끝내는 의미 있는 날입니다.

마을 부녀회에서 준비한 푸짐한 점심식사를 모두 마친 후 “새댁”이라고 불리는 저도 이웃 마을의 윷놀이 판에 오랜만에 어울리게 되었답니다. 이렇게 평소 게임을 즐기지 않는 어설픈 실력으로 윷놀이 한판 대결을 벌였는데, “세상에나 맙소사!” 윷놀이도 기술이 필요한 놀이라는 걸 새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윷놀이는 말 두 개를 가지고 말판을 먼저 나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 그 정도였습니다. 그냥 던지면 되는 줄 쉽게 생각했는데, 저의 패는 늘 도 아니면 개였습니다. 물론 상대편 어르신은 모를 두 번, 개를 두 번 던지시고는 말 두 개가 나야 하는 판을 5분도 안 돼 끝을 내셨지요. 상황파악을 못하고 또 던지려고 하는 제게 “새댁이 진거라우.” 하며 일러주셨습니다.

▲ 마을 부녀회에서 정성들여 차리신 음식들을 점심식사로 제공해 주셔서 오랜만에 떡과 고기 등 기름진 음식을 먹어 보았습니다.
윷을 던지는데도 요령이나 기술이 필요하다는 건 다른 어르신들이 윷을 던지시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고서야 알게 됐습니다. 도시에서 살다온 저는 어릴 적 명절날 부모님과 가족들이 모여 윷놀이를 몇 번 해보고는 사춘기 이후로는 해 본 적이 없는 초짜였고, 어르신들은 평생 명절이나 마을 모임 때마다 늘 윷놀이를 하던 분들이라 윷을 던지는 온갖 기술들을 습득하신 고수들이셨습니다.

오늘 마을 회관에서 윷놀이를 함께 하신 분들은 대략 30여 명, 그 많은 분들이 정말 전투를 치른다고 할 정도로 열심히 윷놀이를 하셨습니다. 이렇게 1, 2, 3등의 순위를 정하는 데는 약 2시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윷놀이가 끝나고 마을의 이장님과 마을 운영회에서 준비하신 상품 전달식. 상품으로는 샴푸·휴지·세제류 등 생필품이 준비되었는데, 등수에는 관계없이 오늘 참가 하신 어르신 모두에게 골고루 빠짐없이 나누어 드리니 상품을 받으시는 어르신들 얼굴에는 함박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오늘 윷놀이대회를 마치고 내일부터는 공동 작업으로 고추모를 심는 일들을 하신다고 하니 도시에서는 잊혀진 옛 조상님들의 세시풍속이 아직 이 산골에서는 지켜지고 있는 듯싶어 저는 다시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제부터 봄, 농사를 짓는 게 없어 그래도 한가한 편인 산골아낙의 생활도 봄이 되면 쉴 틈 없이 바빠지니 지난 겨울의 무료함이 이제는 호강처럼 느껴질 날이 머지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권혜경 | 서울서 잡지사 편집디자이너로 일하다가 2004년 3월 홀연히 강원도 정선 가리왕산 기슭으로 들어가 자리 잡은 서울내기 여인. 그곳서 만난 총각과 알콩달콩 살아가는 산골 이야기가 홈페이지 수정헌(www.sujunghun.com)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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