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사이트
여행? ‘어디’ 말고, ‘왜’ ‘어떻게’…‘여행의 기술’
여행? ‘어디’ 말고, ‘왜’ ‘어떻게’…‘여행의 기술’
  • 발췌 및 글 오대진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8.22 17: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LIFE STYLE|BOOK

출발 / Ⅰ 기대에 대하여 / 2.
행복을 찾는 일이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여행은 그 일의 역동성?그 열의에서부터 역설에 이르기까지?을 그 어떤 활동보다 풍부하게 드러내준다. 여행은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철학적인 문제들, 즉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사고를 요구하는 쟁점들이 제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다.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그러나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또 여행을 연구하게 되면 그리스 철학자들이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불렀던 것, 즉 “인간적 번영”을 이해하는 데에도 대단치는 않지만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기 / Ⅲ 이국적인 것에 대하여 / 1.
암스테르담의 스히폴 공항에 내려서 터미널 안으로 불과 몇 걸음을 떼어놓았을 때 나는 천장에 걸린 안내판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그것은 입국자 대합실, 출구, 환승 수속 창구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안내판이다. 밝은 노란색 바탕에, 높이는 1미터, 너비는 2미터 크기이다. 디자인은 단순하다. 안에 불을 밝힌 알루미늄 상자 안에 든 플라스틱 간판일 뿐이다. 이 상자는 전선과 환기구들이 거미줄처럼 얽힌 천장의 강철 버팀대에 매달려 있다. 그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그 세속성에도 불구하고, 이 간판은 나에게 즐거움을 준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만, 이국적이라는 형용사가 어울릴 것 같은 즐거움이다. 이국적 정서는 특정한 곳에서 나온다. Aankomst(도착)에서 a를 두 개 쓰는 것에, Uitgang(출구)에서 u와 i가 잇달아 나오는 것에, 외국어 밑에 영어가 쓰여 있는 것에, “책상”이라는 말을 쓸 곳에 balies라고 쓰는 것에, 프루티거 체나 유니버스 체와 같은 실용적이면서도 모더니즘 냄새가 나는 글자체를 사용한 것에서.
그 안내판이 나에게 진정한 기쁨을 준다면, 그것은 한편으로는 내가 다른 곳에 도착했다는 첫 번째 결정적인 증거를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귀환 / Ⅸ 습관에 대하여 / 6.
드 메스트르는 방의 여행자만이 아니었다. 그는 또 고전적인 의미에서 훌륭한 여행자이기도 했다. 그는 이탈리아와 러시아를 여행했고, 알프스 산맥에서 부르봉 왕조를 지지하던 군대와 겨울을 보냈고, 코카서스에서 러시아 군과 전투를 하기도 했다.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1801년 남아메리카에서 쓴 자전적인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따분한 일상생활에서 경이로운 세계로 옮겨가고자 하는 불확실한 갈망에 자극을 받았다.” 드 메스트르는 바로 이 “따분한 일상생활”과 “경이로운 세계” 사이에 더욱 섬세하게 선을 그어보려고 했다. 그는 훔볼트에게 남아메리카가 따분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훔볼트의 고향 베를린에서도 뭔가 볼 것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라고 권했을 것이다.
80년 뒤에 드 메스트르의 책을 읽고 그에게 감탄했던 (그리고 자신의 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던) 니체는 그 생각을 이렇게 밀고 나아갔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게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그 숫자는 얼마나 많은지!?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도 늘 그 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 있다. 이런 것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소수(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사막을 건너고, 빙산 위를 떠다니고, 밀림을 가로질렀으면서도, 그들의 영혼 속에서 그들이 본 것의 증거를 찾으려고 할 때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사비에르 드 메스트르는 분홍색과 파란색이 섞인 파자마를 입고 자신의 방 안에 있는 것에 만족하면서, 우리에게 먼 땅으로 떠나기 전에 우리가 이미 본 것에 다시 주목해보라고 슬며시 우리의 옆구리를 찌른다.
<여행의 기술> 17, 87~88, 317~318쪽에서 발췌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지음, 정영목 옮김(2011. 12, 청미래)
사랑과 철학, 종교 등을 바라보는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의 독창적인 시각은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통해 이미 국내 독자들의 뇌리와 가슴에 깊이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여행의 기술>, 여행의 기술? 여행안내서 코너에 자리한 여느 책의 제목이었다면 눈길도 가지 않았을 터. 하지만 드 보통이라는 이름에 손에 쥐었다.

실로 그랬다. 어디가 좋은지, 어디로 가야 할지는 그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왜 가야 하고,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중요했다. 떠나기 전 상상과 기대의 즐거움, 이국적인 것의 매혹, 그리고 추억의 되새김질까지. 떠나기 전, 혹은 떠나며 그가 말하는 여행의 기술을 음미할 수 있다면 여행은 더 풍요로워 질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