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속살 톺아보기 | ④ 이태원
녹사평역~이태원역~제일기획으로 이어진 길 위에서 쇼핑과 식도락 한 번에 해결 ▲ 이태원 음식특화 거리의 이색적인 풍경
한국의 수도 서울이 품은 이태원은 과연 누구의 땅일까? 느긋한 브런치부터 이슬람권, 그리고 아프리카 요리까지 세계 각국의 요리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이태원이라는 공간이 ‘세계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은 아마도 이방인인 그들이 터를 잡고 살아가는, 서울 속에 존재하는 ‘그들의 공간’이기 때문은 아닐까. 한국 사람들이 서울에서 세계를 만나러 가는 곳, 다양한 사람과 문화가 뒤섞여 독특한 분위기와 누구에게나 평등한 ‘무한한 자유’를 선사하는 곳, 이곳에서는 잠시 이방인이 되어도 좋다.
▲ 이태원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마치 그들의 구역(?)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인다. |
시간이 흘러 ‘외국인들이 한국인들보다 더 많다는’ 동네, 이태원에 대해 듣게 되었다. 누군가는 “쇼핑은 물론 별의별 음식까지 맛볼 수 있다”며 신나했고, 또 누군가는 “예쁘다는 말을 하기가 무섭게 물건을 싸주는 무서운 동네”라고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다양한 인종, 그리고 그들의 음식과 패션을 매개로 한 문화들이 뒤섞여 또 다른 문화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는 이곳은 매력적인 동네임이 분명하다.
여전히 세계지도로만 여행을 하고 있다면, 이태원 지도와 편안한 신발을 챙겨 ‘이태원’으로 향해보자. 2시간만 투자하면 세계 각국의 문화를 엿볼 수 있으니, 이만하면 괜찮은 여행 아닌가.
▲ 해밀턴호텔을 중심으로 이태원 메인길이 펼쳐져 있다. |
서울 속의 세계 여행지, 이태원 여행의 첫걸음
▲ 해밀턴호텔 뒷길로 음식특화 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
구름다리 입구 오른쪽으로 20년 넘게 이태원을 지켜온 터줏대감 <한스양복점>이 보인다. 그 위로 유명한 브런치 레스토랑 <수지스>가 보인다. 별거 없다고 금방 풀 죽지 마시라.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니까. 맥도날드 매장 옆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구성된 이태원지하상가는 패션에 대해 좀 안다는 이들이 자신들의 ‘보물창고’로 종종 소개하는 곳이다. 할리우드 패션이 가장 먼저 상륙하는 곳인 동시에 직수입 브랜드를 절반가격에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태원시장 거리 사이사이로 난 골목길에도 작은 상점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바로 ‘이태원 메인길’이다. 녹사평역에서 이태원역을 지나 한강진역에는 못 미친, 제일기획건물 정도까지라고 해두자. 아직 해밀턴호텔이 보이지 않는데, 보통 이태원은 해밀턴호텔을 중심으로 두고 얘기하기 때문에 그의 위치를 파악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해밀턴호텔을 향해 뻗은 이 길에는 아까 봤던 이태원지하상가를 비롯해 <나이키> <리복> <푸마> 등 다양한 다국적 브랜드 상점들이 주를 이루고, 해밀턴호텔에서 한남동 방면으로는 클럽과 유럽풍 테라스 레스토랑 등이 주를 이룬다. 더불어 해밀턴호텔을 정면에서 마주보고 있는 반포 방면으로 뻗은 길은 고가구점들이 즐비하다.
▲ 이태원의 다양성을 대중화시킨 장본인은 누가 뭐래도 세계 각국의 음식. |
정리해보면, 이태원은 해밀턴호텔을 중심으로 삼각지 방면으로 ‘패션 거리’, 한남동 방면으로 ‘클럽 거리’가 뻗어있다. 보통 이 둘을 묶어 ‘이태원 메인길’이라고 한다. 또 반포 방면으로는 앤티크 가구들을 구경할 수 있는 ‘고가구 거리’가 펼쳐지고, 해밀턴호텔 뒷길로는 세계 각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음식특화 거리’가 자리 잡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태원의 어제와 오늘을 오롯이 품고 있는 ‘이태원 소방서 뒷길’의 이화시장과 다양한 클럽 거리, 그리고 이슬람 거리가 더해진다. 덧붙이자면, 이화시장은 근래 들어 아프리카 음식점과 레게헤어 전문 미용실이 들어서면서 아프리카 타운의 성격도 더해가고 있다.
자유,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는 공간
▲ 미8군 시절부터 터를 잡은 솜씨 좋은 재단사, ‘장인’들이 몰려있는 골목마켓. 가장 이태원다운 시장이라는 평을 받는다. |
이태원(梨泰院)의 ‘원(院)’은 조선 초 한양 여행자를 위한 4대 역원 중 하나였던 데서 비롯한 말로, 이곳이 시작부터가 들고나는 공간이며 동시에 뒤섞임의 공간이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또 이태원은 ‘다를 이(異)’와 ‘태반 태(胎)’를 써서 ‘다른 아이를 밴 동네’라고도 풀이하기도 한다. 후에 이태원은 일제강점기 시대에 일본군 사령부, 6·25전쟁 이후에 미군기지가 용산에 들어서면서 비슷한 성격이 이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런 생채기는 적어도 이 공간에서만큼은 ‘다양성’이 유지되는 힘이자 토대가 된다. 6·25전쟁 후 미군 부대의 유흥지역으로 재편된 이태원은 한국인에게는 미국의 소비문화를 간접적으로나마 맛볼 수 있는 공간이자 특히 여성들에게는 한국을 떠날 수 있는 기회의 땅이었다.
▲ 40년 가까이 신발을 만들었다는 이태원 명소 <슈즈박>의 박대섭 대표. 키높이 마법 구두가 필요하다면 이곳으로 가면 된다. |
낮은 산들이 많아 행정상으로도 나누기가 애매하다는 이 울퉁불퉁한 역사를 품은 이태원 공간은 그저 ‘먹고, 놀러가기’에 충분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태원 다문화성의 대중화에 일조한 것이 바로 ‘세계 각국의 음식’이었으니까. 반면 그 밝고 산만한 얼굴을 살짝 걷어보면 그 뒤로 그들만의 시간과 역사, 그리고 일정량의 슬픔을 품은 아련함을 드러낸다. 어디까지 볼 것인지는, 여행자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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