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운 흙길, 꽃길 따라 소설 <토지> 속으로
향기로운 흙길, 꽃길 따라 소설 <토지> 속으로
  • 글 사진·진우석 출판팀장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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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길 | ④ 하동 ‘섬진강을 따라가는 토지길’

▲ ‘무딤이들’로 불리는 평사리 들판. 만석지기 두엇은 능히 낼만한 이 넉넉한 들판이 대하소설 <토지>의 든든한 배경이 되었다. 부부송 뒤 백운산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내린다.

무심이들, 최참판댁, 십리 벚꽃길, 쌍계사 등 31㎞ 이어져

지리산 맑은 계곡으로 몸집 불린 섬진강이 하동 포구 80리를 이루는 악양면 평사리. 박경리 선생은 섬진강과 지리산이 어우러진 이곳을 무대로 4대에 걸친 만석꾼 가문의 이야기를 실처럼 풀어냈다. 토지길은 소설 <토지>의 무대를 굽이굽이 스며들며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 쌍계사로 가는 길은 단정하고 계류는 청아하다. 계곡에는 봄기운이 넘실댄다.
전국의 많은 걷기 코스 중에서 문학 작품을 주제로 만들어진 길은 ‘섬진강의 따라가는 토지길’(이하 토지길)이 현재로서는 유일하다. 여기서 토지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를 말한다. <토지>는 현대문학 100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소설로 손꼽히는 대작이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의 대지주 최씨 가문의 4대에 걸친 비극적 사건을 다루는 이 작품은 개인사와 가족사뿐 아니라 우리의 역사, 풍속, 사회사를 모두 담고 있다. 소설의 무대는 하동 평사리를 시작으로 만주, 일본까지 뻗어나간다.

1960년대 말 박경리는 딸인 김영주 씨와 우연히 평사리를 스쳐 지나간다. 마침 저자는 경상도 땅에서 작품의 무대를 찾던 중이었다. 만석꾼 토지란 전라도 땅에나 있고 경상도 쪽에서는 생각도 못했던 저자는 ‘옳다구나’ 무릎을 쳤다. 더욱이 섬진강의 이미지와 지리산의 역사적 무게도 든든한 배경이 되어 줬다.

▲ 푸릇푸릇 연초록 보리가 무럭무럭 자라는 삼월의 평사리 들판. 왼쪽 높은 산이 형제봉이고, 부부송 뒤로 보이는 마을이 평사리다.

평사리 들판 따라 소설 <토지> 속으로
토지길의 시작은 섬진강 평사리 공원이다. 이곳은 예전 개치나루터로 섬진강 중에서도 모래톱이 넓은 지역이다. 섬진강과 함께 이어지는 19번 국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꼽힌다. 봄철이면 섬진강을 따라 매화꽃 향기가 진동하고 벚꽃이 눈처럼 흩날린다.

평사리 공원에서 사람들은 으레 모래톱으로 내려간다. 드넓은 백사장과 반짝거리는 강물의 유혹에 넘어가기 때문이다. 공원에서 도로를 건너면 길은 평사리 들판으로 이어진다. ‘무딤이들’로 불리는 평사리 들판은 무려 83만 평으로 소설 <토지>가 이곳에 자리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석지기 두엇은 능히 낼만한 이 넉넉한 들판은 4대에 걸친 만석지기 사대부 집안의 이야기가 전개되는 모태가 된 것이다.

▲ 정갈하고 소박한 멋이 일품인 쌍계사 일주문 앞.
이정표를 따라가다 보면 들판 가운데 소나무 두 그루가 다정하게 선 부부송이 보인다. 들판에는 푸릇푸릇한 보리가 쑥쑥 자랐다.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보리는 싱그러운 연초록빛으로 봄기운은 담뿍 전해준다. 부부송 주변은 매화밭이고 그 가운데에 무덤이 자리 잡았다. 무덤 뒤로 성제봉(형제봉, 1115m)이 두 팔을 벌려 평사리와 악양면 일대를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 부부송을 지나면 작은 호수인 동정호. 공사중인 호수를 스쳐 지나면 평사리 최참판댁 입구 삼거리다. 여기서 우선 한산사 방향으로 오른다. 평사리 최고 전망대인 고소성을 들르기 위해서다.

한산사 뒤로 난 오솔길을 따라 20분쯤 가면 잘 복원된 고소성에 닿는다. 성벽에 올라서면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소나무 아래 배낭을 내려놓고 원 없이 조망을 즐긴다. 고소성에서 계속 산길을 걸으면 성제봉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 최참판댁을 나와 조씨고택으로 가는 길은 온통 매화밭이 펼쳐진다.

별당 아씨와 구천이의 야반도주
<토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엮어 가는 사랑의 유형은 색동저고리처럼 각양각색이다. 최참판댁 윤씨 부인과 동학의 접주 김개주의 ‘증오의 사랑’, 용이와 월선네의 ‘불륜의 사랑’, 귀녀를 향한 강포수의 지고지순한 사랑, 구천이와 별당 아씨의 ‘근친의 사랑’ 등등…. 그중에서 가장 파격적인 것은 별당 아씨와 머슴이자 최치수의 이복동생인 구천이의 사랑이다.

두 사람은 달도 뜨지 않은 어느 밤 지리산으로 야반도주했다. 별당 아씨가 양반이라는 신분과 딸 서희를 모두 버리고 오직 사랑을 택한 것이 너무도 의외였다. 그들이 도주한 길이 고소성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진 길이다. 신분과 근친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 그들의 용기와 사랑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그들의 앞날은 험난하기만 하다.

고소성에서 형제봉 방향으로 작은 봉우리를 넘으면 최참판댁으로 내려가는 산길을 만난다. 슬슬 산비탈을 타고 내려오면 드라마 <토지>의 촬영지인 최참판댁이다. “수동아~ 밖에 누가 오셨느냐!” 사랑채에서 신경질적인 목소리의 최치수가 금방이라도 나올 것만 같고, 별당에서는 매화 꽃향기를 맡던 서희가 고개를 돌려 쳐다볼 것 같다. 주민들이 살던 초가집들을 둘러보면서 용이, 임이네, 월선, 김훈장, 두만네 등 드라마의 주인공을 떠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 고소성은 평사리와 섬진강 일대 최고의 전망대다. 평사리 들판 너머로 섬진강이 백운산을 스쳐 지나면서 하동으로 흘러간다.

사랑채 뒤로 세트장을 빠져나오면 길은 마을 농로로 이어진다. 이제는 최참판댁에서 조씨고택(조부잣집)으로 가는 길이다. 조씨고택은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로 대대로 평사리의 만석꾼 집안이다. 길에서 꽃향기가 진동한다. 길은 녹차밭과 매화밭 사이를 물결치듯 타고 돈다. 토지길이 아니라면 만날 수 없는 보석 같은 길이다. 대촌마을에서 작은 고개를 넘어 정서마을, 다시 고샅길을 돌아 상신마을의 조씨고택에 이른다. 10여 년 전 뵈었던 고택 주인장 조한승 씨는 여전히 건강했고, 반갑다며 주전자에 끊인 녹차를 내왔다.

▲ 최참판댁에서 전통놀이를 즐기는 가족.
조씨고택은 어마어마한 식솔과 넘쳐나는 손님들로 늘 밥 짓는 연기가 끊이지 않았고, 집에서 나오는 쌀뜨물 때문에 섬진강이 뿌옇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과거 만석꾼의 자취는 거의 남지 않았다. 어느덧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쓸쓸함이 검버섯처럼 피어 있었다.

조씨고택을 나오면 500년 나이를 자랑하는 향나무가 선 취간림. 나무 아래서 쉬는 주민 틈에서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취간정에서 내려와 평사리 들판을 가로지르면 다시 섬진강 평사리 공원이다. 시원한 강둑길과 도로를 번갈아 타면 그 유명한 화개에 닿는다. 지금까지 <토지>의 무대를 걸었다면 화개부터는 김동리의 <역마>로 작품이 바뀌게 된다. 옛 화개장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의 더덕·도라지·두릅·고사리들이 화갯골에서 내려오고 전라도 황아 장수들의 실·바늘·면경·가위·허리끈·주머니끈·족집게 골백분들이 또한 구롓길에서 넘어오고 하동길에서는 섬진강 하류의 해물 장수들이 김·미역·청각·명태·자반 고등어들이 올라오곤 하여 산협(山峽)치고는 꽤 성한 장이 서는 것이기도 했다.

 -김동리 <역마> 중에서

화개장터의 명성은 장으로만 유명한 게 아니었다.

그곳 주막에는 ‘유달리 맑고 시원한 막걸리와 펄펄 살아 뛰는’ 은어회가 있었고, ‘주막 앞에 늘어선 능수버들 가지 사이사이로 사철 흘러나오는 그 한(恨) 많고 멋들어진 춘향가 판소리 육자배기’ 가 흘러나왔다. 그뿐이겠는가. 화갯골 저잣거리에서는 ‘남사당 여사당 협률(協律) 창극 광대’ 공연이 수시로 벌어졌다. 소설을 상상하자 술 맛 좋고 인심 후한 ‘옥화네 주막’이 가물가물 나타난다. 옥화는 ‘구름같이 떠돌아다니는 중과 인연을 맺어’ 성기를 낳았다. 또 옥화 역시 그 어머니가 ‘서른여섯 해 전에 꼭 하룻밤 놀다 갔다는 젊은 남사당의 진양조 가락’에 반해 태어난 몸이었다.

▲ 상단 4월 초순에 만발하는 화개 십리 벚꽃터널.

김동리 <역마>와 화개장터
화개에서 쌍계사로 가는 십리 벚꽃 터널을 ‘혼례길’이라 부른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 길은 걸으면 영원한 사랑이 이뤄진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지만, <역마>에서 주인공 성기와 계연의 운명은 모질었다. 어느 봄날, 두 사람은 화개에서 이 길을 따라 쌍계사로 향한다. 당시 호젓한 숲길이었던 이곳에서 두 사람은 첫 키스를 나눈다.

길에서 만난 별미

단야식당 사찰국수
쌍계사 입구의 단야식당(055-883-1667)은 스님들이 1년에 한두 번씩 별미로 먹었다는 사찰국수(6000원)로 유명한 집이다. 인공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들깨가루와 버섯 등을 재료로 하고 국수는 메밀로 만든다. 국수와 함께 내오는 매실·고추 장아찌와 지리산에서 캔 산나물도 별미다. 매화 고목이 있는 아담한 정원과 주인아주머니의 정갈함도 인상적이다.

계연은 당황하여, 쥐고 있던 새파란 으름 두 개를 성기의 코끝에 내어 밀었다. 성기는 몸을 일으켜 그녀의 둥그스름한 어깨와 목덜미를 껴안았다. 그리고는 입술이 포개졌다. 그녀의 조그맣고 도톰한 입술에서는 한나절 먹은 딸기, 오디, 산복숭아, 으름들의 달짝지근한 풋내와 함께, 황토 흙을 찌는 듯한 구수한 고기(肉) 냄새가 느껴졌다.

 -김동리 <역마> 중에서

그러나 달콤한 입맞춤은 비극의 시작이었다. 옥화는 계연의 머리를 빗겨주다가 귓바퀴의 조그마한 사마귀를 발견한다. 알고 보니 계연은 옥화의 친동생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성기는 떠나는 계연을 붙잡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인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 최치원 쓴 글씨로 알려진 쌍계석문. 꾸밈없는 투박한 글씨가 주변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쌍계사 입구의 쌍계석문은 큰 길이 뚫리는 바람에 구석으로 밀려났다. 최치원의 성품을 보여주는 무뚝뚝한 서체는 투박하면서도 옹골차다. 맑은 계류가 흐르는 쌍계사 가는 길은 청아한 맛이 있다.

일주문과 금강문을 지나 천왕문까지 지나면 어느덧 속세를 벗어나 있다. 구석구석 절 구경을 하고 국사당 이정표를 따라 1시간쯤 호젓한 산길을 걸으면 불일폭포다. 길섶에는 시나브로 내려앉은 땅거미가 내려와 걸어온 길을 집어삼킨다. 이대로 지리산 깊은 품으로 들어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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