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사이트
오직 알맹이만 남은 폭염과의 사투
오직 알맹이만 남은 폭염과의 사투
  • 윤대훈 객원기자|사진 양계탁 기자|협찬 마무트
  • 승인 2016.08.03 15: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북한산 백운대 ‘시인 신동엽길’

오전 7시, 북한산성 입구 들머리에는 평상시 주말 아침보다 훨씬 더 한가했다. 전날 수도권 일대에 내려졌던 폭염주의보 때문인 것 같았다. “[국민안전처] 안전안내. 7월 8일 16시 폭염주의보, 노약자 야외활동 자제, 충분한 수분섭취, … 어쩌고” 하는 문자가 휴대전화에 찍혔었다. 아직 이른 아침인데도 대기의 흐름은 미동도 없었고, 숲과 마을 위를 덮은 하늘에는 옅은 안개가 드리워 있었다. 바야흐로 오늘 등반의 최대 난관이 바로 폭염이라는 것을 예고하는 것이었다.

▲ 두 번째 마디 페이스 구간을 오르는 채영기 씨. 남은경 씨의 든든한 확보자이자 후원자, 그리고 평생을 함께 하는 영원한 파트너.

오늘 우리의 등반 대상지는 북한산 백운대 남벽 ‘시인 신동엽길’. 경원대산악회 김기섭 씨가 1994년도 개척한 코스로 등반길이 약 300m, 크랙과 슬랩, 페이스 등으로 이루어진 총 아홉마디, 최고난이도 5.10d에 이르는 만만치 않은, 그러나 늘 등반가들로 붐비는 인기 많은 코스. 리지등반이라기 보다는 본격적인 암벽등반 코스다.

▲ 스테밍 자세로 세 번째 마디를 오르는 남은경 씨.

▲ 첫 번째 마디 밴드를 따라 등반하는 한상섭 씨. 이 록 밴드는 오른쪽 위로 길게 이어진다.

▲ 북한산성 입구에서 백운대를 향해 숲길을 걸어 오른다. 이른 아침인데도 숲 사이 옅은 안개를 뚫고 쏟아지는 햇볕이 강렬하다.

출발지점에 도착하자마자 기진맥진

며칠 전 내린 비 탓으로 수량이 불어난 북한산성 계곡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맑고 시원한 계류를 쏟아내고 있었다. 혹시라도 다른 팀이 같은 코스를 등반한다면 시간이 지체되어 끝까지 못 오르거나 취재에 차질이 있을까봐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러자 한상섭 씨는 “이렇게 더운 날 신동엽길을 등반하러 오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거야. 이런 날 백운대 남벽을 등반하자고 한 계획이 아무래도 무모한 거 같아”라고 연신 땀을 훔치며 투덜댔다.

비지땀을 흘리며 ‘시인 신동엽길’ 출발지점에 도착한 시간이 9시. 햇볕은 이미 우리의 머리 위에서 작열하고 있었다. 일행 중 과거 신동엽길을 등반해 본 사람은 나와 채영기 씨가 있었는데 다들 온전한 기억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10여 년 전 한 번씩 등반해 본 기억은 있으나 아홉째 마디 중 군데군데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출발지점을 찾아낸 것도 간신히 ‘비스듬히 밴드가 이어지는 슬랩’이라는 기억을 떠올린 덕분이었다.

▲ 가늘고 질긴 남은경 씨의 팔뚝. 좀처럼 펌핑아웃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각종 스포츠클라이밍대회와 드라이툴링대회 등에서 우승을 차지한 바 있다.

오늘 함께한 일행은 한상섭 씨와 채영기·남은경 씨 부부. ‘알파인클럽 꼬르데’ 소속으로 각종 스포츠클라이밍 대회와 드라이툴링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이력이 있는 남은경 씨는 현재 서울 연신내역 부근 비스포레스포츠센터 내 실내암장에서 회원들을 지도하고 있다. 기름기 하나 없는 가늘고 질긴 몸매는 그가 타고난 스포츠클라이머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와 늘 함께하는 파트너이자 든든한 지원자인 남편 채영기 씨 역시 군살 없는 몸매에 마디 굵은 손가락과 뚜렷한 복근을 자랑하는 5.13급 클라이머였다.

오늘 더위에 대비해 일행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준비를 해왔는데, 양계탁 사진기자는 작은 선풍기를 들고 왔고, 한상섭 씨는 양팔에 끼는 파란색 팔 토시를 준비해 왔다. 나는 고작 얼음물 1리터와 식수 1리터를 준비했을 뿐이다. 채·남 씨 부부는 이곳까지 도착하는 데 땀도 거의 흘리지 않았다. 남은경 씨가 목 뒤까지를 가리는 챙 넓은 모자를 준비한 것 정도가 전부였다.

▲ 한상섭 씨가 더위에 대비해 준비한 파란색 팔 토시.

첫 번째 마디를 출발할 때부터 폭양은 우리들 머리 위로 내리 꽂혔다. 눈을 들어 가야할 곳을 바라보지만 너무 눈이 부셔 제대로 루트 파인딩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선글라스를 썼지만 쏟아지는 땀방울로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덕분에 선등을 맡았던 한상섭 씨도 여섯 번 째 마디에서 루트를 잘못 들었고, 남은경 씨 역시 여섯 번째 마디에서 반짝이는 것이 볼트인 줄 알고 그리로 갔지만 정작 가까이 가보니 햇볕에 반사된 바위 돌기였었다.

▲ ‘시인 신동엽길’의 최난 구간인 다섯 번째 마디 언더크랙 트레버스 구간. 남은경 씨가 조심스럽게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있다.

최고난도 5.10d, 본격적인 암벽등반 준비해야

인수봉 동양길 두 번째 마디의 밴드처럼 우측으로 비스듬히 이어지는 밴드는 30m 쯤 이어지다가 쌍볼트를 지나 언더크랙을 돌면 사라졌다. 첫 마디를 오르는 동안 나는 내가 준비한 얼음물 1리터 정도의 땀을 쏟았다. 혀를 내밀고 뒤를 돌아다보면 지척지간인 대동사의 지붕에 그려진 ‘卍’자가 마치 헬기장 표시처럼 내려다 보였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노적봉은 짙푸르다 못해 거무스름한 숲을 뚫고 치솟듯 서 있었다. 간혹 만경대 리지를 지나는 사람들이 한둘 보일뿐 산은 현기증 날 정도의 폭염 속에 게으른 소처럼 드러누운 채 미동도 없었다.

▲ 네 번째 마디 상단부분을 오르는 남은경 씨.

두 번째 마디 언더크랙을 지나면서부터 본격적인 고행이 시작되었다. 5.10b 정도의 난이도를 지닌 이 페이스 구간은 배낭을 메고 실내암장에서의 트레이닝을 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쉽게 오를 수 없는 구간이었다. 남은경 씨가 날렵하고 유연한 몸짓으로 이곳을 넘어섰다.

세 번째 마디는 스테밍 자세로 쉽게 오를 수 있는 짧고 넓은 크랙이었다. 이곳에서는 굵은 소나무와 조금 가는 참나무에 나누어 후등자 확보를 보았는데, 한 조각 그늘이 있었다. 이 한 조각 그늘과 어쩌다 불어오는 한 줄기 바람은 그야말로 고맙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한 조각 그늘과 한 줄기 바람의 고마움을 깨닫는 일은 일상에서는 그리 쉽지 않다. 늘 곁에 있는 것들의 고마움은 간절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깨닫지 못할 때가 훨씬 많은 법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물을 마시며 멀리 폭염 속에 녹아내릴 것 같은 도시의 빌딩과 뿌연 하늘과 맞닿은 한강과 발아래 드리운 검푸른 숲을 내려다보았다.

▲ 네 번째 마디 좌향크랙을 오르려고 한상섭 씨가 손에 초크를 바르고 있다. 머리 위에서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고 있다.

▲ 두 번째 마디 크럭스 지점을 등반하는 한상섭 씨. 5.10b 정도의 난이도를 지닌 페이스 구간이다. 옹송그려 잡은 손가락으로 작은 홀드에 힘을 모았다.

네 번째 마디는 손감이 좋은 좌향크랙이 8m 정도 이어졌다가 오른쪽 페이스를 오르는 구간이었다. 한상섭씨가 두 개의 캐멀롯을 설치하며 넘어섰고, 이어 신동엽 테라스라 부르는 마디 종료지점에 도착했다. 굵은 소나무 그늘이 드리운 이 테라스는 제법 넓고 아늑해서 누군가는 ‘하루 자고 갔으면 좋겠다’고 했고, 누군가는 ‘그냥 여기서 오늘 등반을 마치면 좋겠다’고도 했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를 지났고, 상의는 땀에 젖었다가 마르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얼음물은 이미 바닥을 드러냈고, 식수도 이제 아껴야 하는 상황이었다. 처음 걱정했던 것과 달리 우리 뒤를 따르는 다른 등반 팀은 단 한 팀도 없었다. 조용하고 여유는 있었지만 너무 더운 날씨에 탈수증상이나 열사병, 일사병이 조금 걱정이 된 것도 사실이었다.

▲ 네 번째 마디 좌향크랙을 오르는 한상섭 씨. 캐멀롯 2개를 설치하며 올랐다. 크랙이 끝나면 오른쪽 페이스 구간을 올라야 한다.
다섯 번째 마디는 이 코스의 최난 구간이었다. 5m 정도 양호한 좌향크랙을 오른 후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언더크랙을 따라 트레버스한 후 직벽에 매달린 채 마디를 종료해야 하는 구간이었다. 5.10d 정도의 난이도로 손가락이 두꺼운 한상섭 씨는 언더크랙에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아 고전 끝에 겨우 넘어섰다. 남은경 씨는 여전히 가볍고 유연한 몸놀림으로 사뿐히 이 구간을 넘어섰다. 직벽에 매달려 불편하게 후등자를 확보해야 하는 이 구간에서 여섯 번째 마디의 출발은 볼트에 매달린 굵은 슬링을 이용한 인공등반을 해야 했다. 슬링을 밟고 올라서서 왼쪽 크랙에 캐멀롯 3호를 설치하고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여섯 번째 마디를 마치면 참나무와 소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이었다. 숲 바깥쪽은 북한산 남면을 두루 조망하기 좋은 전망대였다. 지척으로 노적봉과 만경대의 늘어선 바위가 보였고, 그 아래 위문과 용암문으로 이어지는 데크 등산로에는 간간히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시간은 이제 오후 2시 30분.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남은 세 마디를 계속 등반할 것인가를 두고 우리는 고민해야 했다. 백운대 정상으로 이어지는 나머지 세 마디는 아래서 보기에도 그대로 폭양에 드러났고, 한 조각 그늘조차 드리운 곳이 없는 맨 바위의 연속이었다.

나는 끝까지 가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아무도 더 이상 등반을 이어가고 싶어 하질 않았다. 등반의 어려움보다 훨씬 더 극심한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결국 이곳에서 등반을 마무리하고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은 나도 이 결정을 전적으로 환영했다. 일행 중 가장 더위에 취약한 면을 보인 것은 나였다. 가장 많은 땀을 흘렸고, 가장 많은 물을 마신 것도 나였다. 속으로는 일행들이 마저 세 마디를 가자고 하면 어쩔까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었다.

▲ 여섯 번째 마디에 올라 전망대에 섰다.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노적봉. 아래로는 북한산성 계곡 일대의 짙푸른 숲이 은평구 일대의 아파트 숲까지 이어진다. 멀리 하늘과 맞닿은 한강일대까지 온통 폭염으로 가득 찬 듯하다.

▲ 하산길. 대동사 아래 약수터 계곡에 잠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혔다. 그제야 일행들의 얼굴에 도로 화색이 돌아왔다. 왼쪽부터 채영기, 남은경, 한상섭 씨.

극복해야 한 것은 폭염이었다

오른쪽 바위를 따라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가자 김개남장군길, 녹두장군길 등이 나타났다. 이 코스 역시 김기섭 씨가 개척한 것들이었다. 그는 왜 민중이 주인이 되는 대동세상을 꿈꿨던 혁명가들의 이름을 바윗길에다 붙였을까? ‘껍데기는 다 가고 오직 알맹이만 남고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라’며 혁명을 노래했던 시인의 이름을 이 바윗길에다가 붙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아무도 가지 않았던 낯선 길을 헤쳐 나가는 일은 혁명가나 전위에 선 등반가나 매한가지 아닐까? 그 길에서는 두려움과 외로움, 생과 사를 가를 고독한 결단의 순간들을 극복해야 한다. 이곳 백운대 남벽에 새겨진 혁명가들의 이름과 김기섭 씨가 설악산에 남긴 또 하나 혁명가의 이름을 딴 ‘체 게바라길’을 떠올리는 사이에도 뙤약볕은 인정사정이 없었다.

▲ 여섯 번째 마디에서 남은경 씨가 남편 채영기 씨를 확보하고 있다. 뒤로 보이는 노적봉은 짙푸른 숲에서 치솟아 오른 듯하다.
위문에서 내려오는 목재데크 등산로를 만나 다시 북한산성 입구를 향해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폭양은 쏟아졌고, 사위는 숨 막힐 듯한 더위가 엄습했다. 마치 사우나 같았다. 다시 약수암 하단 쉼터에 도착해 한숨 돌릴 무렵에는 다들 현기증을 동반한 전신무기력증에 시달렸다.

특히 한상섭 씨는 다리가 휘청거린다며 얼른 내려가서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셔야 살겠다며 하산을 서둘렀다. 비틀거리며 힘겹게 산길을 내려오다가 대동사 약수터 아래 계곡에서 잠시 발을 담그고 쉬었다. 한참을 쉬고 땀을 식힌 후에야 겨우 일행의 얼굴에 화색이 되돌아 왔다. 그러고선 다들 거기서 등반을 마친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한상섭 씨는 내게 “아마 세 마디 더 갔으면 우리 다 게거품 물고 쓰러졌을 거야. 그리고 계속 가자고 고집부렸다면 너랑 하루 종일 말도 안했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그가 진심으로 고마웠다.

4시 반쯤 도착한 북한산성 입구 상가지구에도 한산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여전히 무더웠다. 그러나 뒤돌아 본 북한산의 빛나는 암봉들은 불굴의 투지로 선봉에 선 혁명가처럼 의연했고 고독했다.

INFORMATION / 북한산 백운대 ‘시인 신동엽길’ (상급)
들머리

우이동 도선사에서 출발한다면 백운산장을 거쳐 위문을 통과하여 북한산성 쪽으로 내려가다가 약수암 터 위 100m 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50m 쯤 가면 작은 공터가 나오고 슬랩이 시작된다. 왼쪽부터 비스듬한 밴드가 오른쪽 위로 이어진다. 약 1시간 40분 걸린다.

북한산성 입구에서 출발한다면 북한산성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대동사를 거쳐 위문 방향으로 오른다. 약수암 상단 쉼터에서 약 50m 정도 오르다가 왼편으로 접어들어 백운대 남벽으로 다가선다.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린다.

등반시간
3인 1조 등반 시 약 6?7시간 걸린다.

등반장비
60m 로프 2동, 캐밍 장비 1세트, 퀵드로 10개, 슬링 다수, 개인장비로는 본격적인 암벽등반에 필요한 암벽화와 배낭을 최소화 하는 것이 좋다.

하산로
등반을 모두 마치고 백운대 정상에서 위문으로 걸어 내려오거나, 백운대 정상 아래쪽 하강 피톤에서 위문 쪽으로 하강할 수도 있다.

탈출로
여섯째 마디 종료 후 백운대 아래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10분 정도 따르면 위문에서 내려오는 목재데크 등산로와 만나게 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