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
국내 최대 공영도매시장
  • 글 사진·이소원 기자
  • 승인 2011.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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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푸마와 함께하는 KOREA TRAVEL 서울 강남 ④ 가락시장

야채·청과·수산물 경매로 ‘후끈’…남한산성·청계산 하산 후 소주 한잔도 OK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매시장은 뜨겁고, 거칠고, 그리고 투박했다. 하지만 그 거친 문을 뚫고 들어가자 그 안에는 깊게 패인 주름 진 얼굴로 삶과 맞서 온 사람들이 가득했다. 아흔이 넘은 채소 장수 할머니는 “다 늙어 쭈그러진 걸 왜 찍냐”고 소리쳤지만, 사진 속 할머니는 분명 웃고 있었다. 시장에서 인생을 엿 봤다면 너무 감상적인 걸까. 하지만 그랬다. 그 거대하고 시끄럽고 투박한 시장에서, 그리고 시장 사람들에게서 그것을 보았다.


강북에는 종합시장의 양대 산맥인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이 있으니 ‘시장선택’에 별 고민이 필요 없었다. 물론 그 외에도 황학동벼룩시장, 경동시장 등 여러 시장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한강 이남으로 내려오면 상황이 달라진다. 독보적인 ‘양(兩) 대문시장’을 빼고 나니 숫제 ‘시장’의 정체성까지 흔들리는데…. 과연 시장이란 무엇일까?

시장(市場)은 한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시장이 열리는 마당’을 뜻한다. 또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어 가격이 결정되는 장소 또는 기구를 의미하기도 한다. 정착과 함께 농경생활을 시작하면서 인류에게 ‘잉여’가 발생했고, 이는 시장의 초기단계인 물물교환으로 이어진다. 단순 물물교환은 인구 증가와 함께 화폐경제를 불러오고 본격적인 시장의 형성으로 연결된다.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매시장의 하루
우리나라에는 전국 총 50개의 농수산물도매시장이 있다. 도매시장은 정부 투자 여부에 따라 구분하기도 하는데, 정부나 지자체에서 투자한 시장을 ‘공영도매시장’이라 부르고, 민간에서 투자한 시장을 ‘일반법정도매시장’이라고 한다. 이 둘의 경우 개설허가를 소속 지자체에서 내준다. ‘일반법정도매시장’과 동등하게 민간에서 투자했지만, 개설허가를 지자체가 아닌 민간에서 내준 경우는 ‘민영도매시장’으로 나뉜다.

왜 이렇게 도매시장의 종류까지 설명하는가 하면, 이번에 소개할 한강 이남의 시장이 바로 서울에 속한 ‘농수산물도매시장’이기 때문이다. 교통상의 이유 때문인지 서울에 존재하는 4개의 도매시장은 모두 한강 아래 고속도로 혹은 분기점과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노량진수산시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개의 도매시장은 서울시농수산물공사에서 관리·운영하고 있다. 서울시민의 먹을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며 동시에 시장의 묘미인 경매가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살아 숨 쉬는 곳. 일반 소비자 역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직판장도 갖추고 있어 ‘설’이나 ‘추석’ 등의 명절이면 서민들의 발길이 이어져 서민경제의 바로미터가 되기도 한다.

서울에는 가락농수산물도매시장(이하 가락시장), 강서농수산물도매시장(이하 강서시장), 이렇게 2개의 ‘공영도매시장’과 노량진수산시장, 양재동양곡시장 또 이렇게 2개의 ‘일반법정도매시장’이 있다. 총 4개의 농수산물도매시장 중에서 규모로 따지자면 가락시장을 따라올 곳이 없지만, 개장 순서대로 살펴보면 1983년 개장한 노량진수산시장이 1등이다. 규모면에서는 1만8000㎡(5600여 평)으로 가장 작은, 매일 새벽1시부터 오전8시 정도까지 경매가 이루어지는 수산전문도매시장이다. 일반 소비자들이 회를 먹고 싶다면 이 시간만 피해서 가면 된다.

그 뒤를 이어 1985년 가락시장, 1988년 양재동양곡시장, 그리고 2004년 강서시장이 문을 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총부지 약 54만㎡(약 16만평)의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하며, 24시간 잠들지 않고 서울시내 시민들의 ‘먹을거리’를 담당하는 가락시장이 있다.

모두 살아 숨 쉬는 가락시장
가락시장은 1970년대 이후 서울 인구가 급증하면서 생필품의 안정적인 공급과 ‘86아시안게임’ 및 ‘88서울올림픽’을 대비한 도시 정비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현재 가락시장이 자리한 이곳은 원래 논바닥과 비닐하우스로 덮여 있던 곳이었는데, 대략적인 시장의 틀을 갖춘 후 용산시장과 남대문시장, 청량리수협공판장, 중부시장 등의 상인들을 입주시켜 국내 최대의 농수산물도매시장을 설립한 것.

1985년 청과 및 수산시장 개장을 필두로 1986년 축산시장, 1988년 청과직판장이 개장한 가락시장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주차장 시설을 갖춘 세련된 유통의 장이었다. ‘서울 유통물량의 50% 이상을 차지했다’는 당시 전문지 기사에서 가락시장의 스케일과 기대감을 엿볼 수 있다.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가락시장은 서울시내와 전국 각지를 잇는 농수축산 물류기지를 겸한 시장으로 성장한다.

그럼 지금부터 가락시장을 살펴보기로 하자. 지난 2월, 지하철 3호선과 8호선에 ‘가락시장역’이 개통하면서 대중교통으로 찾아오기도 한결 수월해진 가락시장은 ‘국내최대’라는 명성처럼 공간이 워낙 방대해 입구에서 안내도를 봐두는 편이 좋다. 가락시장역 3번 출구로 나와서 조금만 직진하면 남1문이 나오고, 좀 더 직진하면 남문이 보인다. 본격적인 가락시장 구경은 이제부터다.

동서남북으로 자리한 문을 기준으로 대략적인 시장 구조를 설명하자면, 남문과 북문을 중앙에 두고 우측으로는 채소시장과 과일시장이, 좌측으로는 축산시장과 수산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면, 남1문과 남문 사이에는 채소시장이 있고 채소시장의 바로 뒤편에 채소경매장이 자리하고 있다. 채소는 종류에 따라 경매 시간이 가지각색인데 오후 2시30분 제주산 당근을 시작으로 밤11시 배추, 양파 경매로 마무리된다. 일반 소비자들은 그 앞쪽으로 자리한 직판장을 이용하면 된다.

채소시장과 서문 사이에는 축산시장이 있다. 축산물의 경매 시간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1시30분까지. 바로 뒤에 독채로 축산직판장이 자리하고 있어 일반 소비자들이 이용하기가 편하다. 계속 북문으로 직진하면 우측으로는 과일시장, 좌측으로는 수산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수산시장에서는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을 종종 만날 수 있는데, 인근 남한산성이나 청계산을 올랐던 등산객들이 싱싱한 회에 하산주 한잔 하러 오는 것이라고 한다.

“넷이서 5만원이면 회 한 접시 먹을 수 있으니까 이리로 오지요.”

듣고 보니 괜찮다. 홍어가 제철인지 국내산 홍어며, 칠레산 홍어가 한 가득이다. 앗, 대왕 문어다리도 보인다. 일반 문어 대여섯 마리를 합쳐놔야 나올 것 같은 길이다. “문어 철이냐”고 묻자 “제철은 제철인데, 강원도에 눈이 많이 와서 값이 올랐다”는 답이 돌아온다. 보통 1kg에 2만5000원이면 되는데 지금은 3만원이란다. 싱싱한 각종 해산물에 침이 꿀꺽 넘어간다. 역시, 시장의 참맛은 펄떡펄떡 살아 숨 쉬는 수산물이 아닐까. 활어경매는 새벽1~2시가 피크라고 한다.

다시 북문으로 걸어가면 왼쪽으로 청과직판장이, 오른쪽으로 무·배추경매장이 보인다. 경매가 끝난 시간임에도 떨이 배추를 쌓아놓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상인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북문 바로 옆에는 농수산물공사가 자리하고 있다. 가락시장과 강서·양곡시장까지, 도매시장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면 이곳에 들러 물어보자.

서울농수산물공사의 김종주 홍보팀장은 “지난해를 기준으로 가락시장에서는 국내 최대인 하루 평균 8000톤에 가까운 물류가 오가며 130억 원이 넘는 거래가 있었다”며 “소비자들의 기호에 맞춰 소포장 형태의 물량을 늘리고 가공된 농수산물까지 취급해 종합도매시장으로의 위상을 확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올해 말이면 착공을 시작하는 가락시장 시설현대화사업도 그 일환이라고.

도매시장의 가장 큰 매력인 경매를 구경하려면 언제 오는 것이 좋으냐는 질문에는 “채소경매는 오후 6시부터 시작해 오후 10시를 전후로 피크”라며 “채소경매를 한 후 새벽 1시쯤 수산물경매가 시작되고 2시부터는 청과경매가 진행된다”고 일러준다.

그동안 보아오고 상상해온 시장의 북적북적하고 아기자기한 이미지와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는 ‘서민’들이 모인 이 곳의 에너지는 봄볕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청춘을 깨우는 데 충분했다. 사람냄새 흠뻑 맡고 싶다거나, 정신 좀 차리고 싶다거나, 아니면 싱싱한 회에 한잔 하고 싶다면 ‘가락시장’으로 향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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