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에서 에콰도르로 국경을 넘었다. 풍경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조금 달랐다. 길거리엔 생돼지를 걸어놓고 즉석에서 돼지껍데기를 발라내 팔았는데, 사람들은 조리도 하지 않은 채 소금만으로 그걸 먹었다. 호기심이 강한 나도 그 음식만큼은 시도할 수 없었다. 하루는 산악지대를 지나가던 중이었는데 엄청난 모기떼에 습격당했다. 적어도 50방은 될 거다. 일반 모기보다 작았지만, 물리면 그 자리에 피가 뭉쳐 나왔다. 자전거를 타도 쫓아오긴 마찬가지였다. 모기를 피해 페달을 굴리며, 별 고생을 다 한단 생각이 들었다.
적도의 도시 키토 ▲ 에콰도르 시장의 풍경.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서 첫 며칠은 한 한인 집에서 머물렀다. 한국 음식도 오랜만에 먹었다. 키토는 적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유명한 관광지다. 이곳엔 적도 탑이 있다. 사실 탑의 위치가 위도 0.0.0은 아니다. 많은 관광객이 탑 옆의 인티냔 박물관이 0.0.0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억지로 의미를 부여하는 관광지 같아 보여 큰 흥미는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올드 타운이 더 흥미로웠다. 광장 주변 분위기가 아기자기해 꽤 볼만했다.
대통령 선거를 위해 한국 대사관에 직접 방문해 국외부재자 신고를 했다. 다행히 대사관이 근처라 별 문제 없이 할 수 있었다. 투표는 어느 나라에서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해외에서 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 기뻤다.
세계여행을 하는 다른 여행자로부터 키토에서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계신 분을 소개받았다. 선생님의 가게에 머물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다. 에콰도르 수교 50주년 기념 공연을 보고, 프린트를 이용해 명함도 만들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다. 노트북에 문제가 있어 싸게 파는 곳을 알려주시기도 했다. 무엇보다 다른 나라에서 열정적으로 사는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 한글학교 교장 선생님과 함께.
고산 자전거 여행
키토는 너무 큰 도시라 자전거로 도시 외곽을 빠져나가기 어려웠다. 수십 번 물어도 헷갈리긴 매한가지. 사람마다 알려주는 방향도 다르다. 여행 첫날 복잡했던 샌프란시스코를 빠져나가지 못해 종일 헤맨 적이 있었는데, 오늘이 딱 그날 같다. 다행히도 이번엔 친절한 현지 가족이 트럭에 태워줘 빠져나갈 수 있었다.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그것도 잠시, 다시 오르막 시작. 오늘의 안데스 산맥 일정은 해발 3,000m에서 시작이다. 2,700m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3,000m까지 올라가기. 자전거 정비하며 핸들 바를 위로 올리고 안장을 앞으로 당겼더니 자세가 적응이 안 됐는지 엉덩이가 빨갛게 붓고 고통이 느껴졌다.
▲ 아름다운 안데스 산맥. |
▲ 키토의 아기자기한 올드 타운. |
이날은 깜짝 놀랄만한 일이 있었다. 보통 부유해 보이는 집에 가서 “앞마당에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으면 90% 확률로 거부당했다. 그런데 어느 노부부가 흔쾌히 허락해줬다. 심지어 집 안에서 자도 된다며 들어오라고 했다. 집은 할머니 소유인데 옆에 분은 할머니의 남자친구였다. 젊은 연인들처럼 연애하고 있었다. 할머니는 두 번 정도 결혼을 한 것 같았다. 할머니가 이름을 쓸 때 전남편 성도 같이 썼는데, 남자친구가 질투했다. 연애의 감정이 늦게까지 살아있다는 건 크나큰 축복이다.
다음날 안데스 산맥 일정은 해발 3,000m에서 3,500m까지 올라갔다가 2,700m로 내려오는 거였다. 해발이 높아지니 너무 힘들어서 결국 몇 시간 동안 자전거를 질질 끌고 올라갔다. 중간에 독일 자전거 여행자를 만났다. 키토 근처에 해발 5,800m짜리 만년설 코토팍시가 있는데 그곳에 어제 갔다 왔다고 한다. 고산을 등반하고 다음날 자전거 타는 거 보면 체력이 정말 좋은 가 보다. 출발지도 나와 비슷한 미국인데 그들은 여기 오는데 3개월밖에 안 걸렸다고 한다. 안 그래도 감기몸살 기운이 있는데 고산에서의 내리막이 더욱 춥게 느껴졌다.
▲ 키토의 아기자기한 올드 타운.
침보라소에 도전
리오밤바 근처에는 침보라소라는 해발 6,300m 산이 있다. 에콰도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아프리카에서 제일 높은 킬리만자로는 5,895m다. 안데스 산맥에 있다 보니 고산에 관심이 생겼다. 결국, 등산 여행사로 가서 결제했다. 가격은 250달러.
일정은 금요일 정오 해발 4,800m 대피소에 차를 타고 도착. 이후에 200m 더 높은 제2대피소 해발 5,000m까지 걸어간다. 제2대피소에서 정상을 향한 등반 시작은 무려 밤 11시에 한다. 낮에는 만년설이 녹아 위험해서 밤에 시작하는 것. 정상에는 무조건 오전 8시 전에 도착해야 한다. 정상에 오전 7시 50분에 도착하면 10분도 못 있다가 내려가야 한다는 얘기다.
▲ 한 접시가 2,000원도 채 되지 않았다. |
이틀 일정이 250달러. 내가 잠시 미쳤었나? 산 한 번 오르겠다고 250달러를 지출해버렸다. 아메리카에서 제일 높은 산, 6,900m의 아콩카과를 오르고 싶어서 연습도 할 겸 그보다 낮은 침보라소 먼저 등산하자는 마음이었다. 이미 저지른 것, 즐겨보기로 했다.
여행사에서는 고산 적응을 위해 해발 3,800m에서 하룻밤 자는 걸 추천했다. 막상 도착한 산장은 산 중턱 시골 마을에 있었다. 생각 외로 깨끗했다. 심지어 뜨거운 물도 나왔다. 얼마 전 해발 3,600m를 넘은 적이 있다. 당시엔 호흡이 빨라지고 머리가 아팠다. 6,000m 산은 어떻게 오르나. 걱정됐다. 감기까지 걸렸다. 어찌 되든 운명에 맡길 차례다.
▲ 힘든 야간 산행을 경험했다.
두통과 배고픔
다음 날 아침 10시에 여행사 차가 왔다. 30분 정도 달린 후 대피소에 도착했다. 점심은 여행사 측에서 차려줬다. 250달러나 냈지만, 점심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여행사 측에서 현지 가이드에게 돈을 주면 그 가이드는 그 금액 내에서 식량을 준비한다. 나 말고도 등반하는 여행자가 한 명 더 있었는데, 그 사람이 채식주의자라 그런지 점심에는 고기 한 점 찾을 수 없었다. 점심을 2시쯤 먹고 오후 5시까지 취침이었다. 이후에는 제2대피소가 있는 해발 5,000m를 향해 걸어가야 했다. 머리가 살짝 아파지기 시작했다.
저녁에 제2대피소로 가는데 속도가 뒤처졌다. 남들보다 한참 늦게 도착했다. 본격적으로 머리가 아팠다. 고작 200m 올라왔을 뿐인데 왜 이렇게 아픈 걸까. 아스피린 한 알을 먹었다. 머리가 심하게 아프면 등반 자체를 못한다고 한다. 눈물이 고이는 걸 참고 또 참았다. 마음이 복잡했다.
낮에 잠을 청하고 저녁 10시쯤 일어나 아침을 먹었다. 원래 야간 고산등반은 이런 식으로 한다. 출발 전 간단하게 아침을 먹는다. 다행히도 아스피린 덕분에 두통은 사라졌다. 그런데 이번엔 식사법이 문제다. 저녁을 오후 5시에 먹고, 한숨 잔 뒤 아침을 저녁 10시에 먹으니 등반 중 배가 고팠다. 내가 준비해간 거라곤 초콜릿 한 봉지뿐. 250달러나 냈으니 당연히 뭔가 줄 거로 생각했는데 사탕 한 알 없었다.
▲ 자전거를 새로 칠했다.
눈물의 하산
밤 11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됐다. 깜깜한 밤에 등산하는 사람들의 랜턴은 밤하늘 별처럼 보였다. 작은 불빛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내 불빛도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체력은 최악이었다. 초반에는 천천히 걸었지만, 나중에는 한걸음 걸으면 10분을 쉬어야 했다.
무엇보다 큰일은 신발이었다. 신발이 너무 딱딱했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려면 발목이 꺾여야 하는데 이중화라 될 리가 없었다. 숨도 쉬기 힘들고, 이중화는 내 발목을 힘들게 하니 등반이 제대로 되지가 않았다. 점점 한계가 다가오는 것 같다. 하지만 해발 5,000m에서 바라보는 별만큼은 최고로 아름다웠다.
▲ 아름다운 노년의 사랑. |
가이드는 나를 위해서 끊임없이 기다려야 했다. 죽을 뻔한 일도 일어났다. 아이젠이 신발에 달려있는데 내가 제대로 발을 디디지 못하는 바람에 해발 5,300m에서 추락할 뻔했다. 다행히 가이드와 줄로 연결되어 있어서 대롱대롱 매달렸다. 가이드가 버텨주지 못했다면 다른 사람까지 죽일 뻔했다.
결국, 5,300m에서 하산을 결정했다. 시간은 새벽 3시 30분. 4시간 30분 동안 최악의 속도로 300m를 올랐다. 눈물 흘리며 고산등반을 미련하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려갈 힘을 비축해놓지 않은 탓에 하산하는 데 수없이 넘어졌다. 배가 고프면 산에서는 죽을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실패한 등반이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서 올랐으니 실패가 아니라고 위로하며 마음을 달랬다.
▲ 산장에서 바라본 침보라소.
여행을 멈출까
사람들은 산을 왜 오르냐고 한다. 내려갈 거 뭐하러 오르냐고. 올라보니 알겠다. 산을 오르는 이유는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고, 내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실 내면을 볼 수 있는 시간이 항상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 내면을 직접적으로 보게 된다. 그리고 이번 등반을 하면서 내면 깊숙한 곳을 보았다.
더는 자전거 여행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그동안 버티기도 하고 즐기기도 했지만, 더 이상은 이 여행은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난 여전히 밤에 무서울 때가 있으면 불 켜놓고 자는 사람이다. 난 용감한 게 아니다. 단지 호기심을 해결하고 싶은 강한 의지 때문에 여행을 계속하는 건데, 이제는 너무 힘들다.
하지만 리오밤바에 돌아온 후 나는 우유부단하게 여행을 중단하지 않았다. 체력도 안 되고, 겁도 많지만, 여행을 계속하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포기하면 편하다. 사실 포기만큼 세상에 힘든 일도 없는 거 같다. 하지만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 하지 않겠는가? 해발 5,300m에서 흘린 나의 눈물은 과연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 9,000km를 달려준 운동화를 버리다.
아쉬움을 남긴 채
고산등반 실패로 마음이 무거웠다. 오랜만에 다시 자전거 안장에 앉았지만, 페달도 무겁게 느껴졌다. 이제는 설산만 봐도 울컥한다. 오르지 못하는 산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시 안데스가 시작됐다. 해발 2,800m에서 시작, 3,800m의 고지를 넘으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고산 등반 실패로 인한 굴욕으로 오늘은 절대 자전거를 끌지 않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내 저질 체력은 자존심을 세워주는 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 결국, 자전거를 질질 끌고 가기 시작했다. 아무리 가도 오르막이 끝날 기미가 안 보인다. 주변에 식당도 없고, 식량은 아까 길에 보이는 몇 마리 개들과 나눠 먹느냐고 남은 게 없었다.
▲ 눈물을 안겨준 아름다운 곳. |
너무 배고프고 지쳐서 자전거 핸들 바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는데 봉고차 한 대가 섰다. 뒤에는 아이들이 5명이나 앉아 있었다. 과야킬로 가는데 같이 가자며 여기 혼자서 자전거 타기엔 위험하다고 했다. 먹을 식량도 없고 도저히 체력이 받쳐주질 못해서, 그들의 호의를 감사하게 받았다. 좋은 분들 덕분에 과야킬까지 무사히 갈 수 있었다. 순수 내리막이 아니라 오르막 내리막이 이어지는 험난한 길이었다.
에콰도르에서는 안데스 산맥의 멋진 풍경과 사람들의 적당한 친절함이 좋았다. 고산등반의 실패로 마음이 무겁고 슬펐지만, 에콰도르의 큰 선물인 안데스 산맥을 마음에 품었다. 다시 용기 내서 조심스레 페달을 밟아본다.
▲ 멋진 풍경을 뒤로 셀카를 찍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