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한여름 밤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그들의 한여름 밤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 글 사진·최광호 사진가
  • 승인 2011.01.0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진가 최광호의 KOMSTA 동행기 | ③ 필리핀

▲ 필리핀의 여름 크리스마스 풍경.

▲ 병원 체육관을 내어줄 정도로 필리핀의 콤스타에 대한 신뢰가 깊다.
‘필리핀’은 내게 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나라다. 처절하게 가난해 ‘이렇게 살 수 있을까’ 하다가도 부자들의 세상을 보면 또 ‘으리으리한 부자의 나라로구나’ 하고 끊임없이 착각하게 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009년 11월, 벌써 필리핀은 세 번째 방문이다. 덕분에 필리핀 사람들이 콤스타를 어떻게 대하는지 안다. 콤스타의 이번 봉사는 한국과 필리핀 수교 60주년을 기념하는 것이어서, 주정부에서 나서서 에스코트까지 해주었다. 두 대의 오토바이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어디를 가나 따라다니며 호위를 하니 갑자기 스스로 잘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괜히 으스대고 싶어지는 마음이 꼬물꼬물 피어나는 것을 애써 멈춘다.


늘 그렇듯이 의료봉사를 시작할 때는 콤스타 윤리강령을 먼저 한다. 나는 그것을 들을 때마다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그리하기를, 스스로에게 매번 다짐하고 기도한다.

“나는 자랑스러운 콤스타 단원으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아래와 같이 선서한다. 하나, 나는 인도주의 실천을 위해 의료봉사에 나의 생애를 바친다. 하나, 나는 의료인의 책임을 다한다. 하나, 나는 한의학의 숭고한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켜 전 세계에 알린다.”

맹서한다는 의미로 손을 치켜들고 선서하며 복창한다. 94회를 이어온 그 꾸준한 노력의 결실은 아마도 여기 이곳 필리핀 사람들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눈빛, 몸짓에 있지 않을까. 콤스타 의료진들을 진심으로 반기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야말로 콤스타가 일구어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여기까지 토대를 만들어 온, 음지에서 누구보다 뜨겁게 움직여온 단장님과 콤스타 임직원들의 얼굴이 스쳐간다.

▲ 진료에 겁을 먹은 아이의 표정이 귀엽다.

도움 받던 나라 필리핀에 도움을 전한다
어린 세대들은 잘 모르겠지만, 필리핀은 옛날에는 우리보다 잘살았다. 그래서 이곳에는 6·25 전쟁 당시 우리 남한을 돕기 위해 참전했던 분들, 참전용사들이 있다. 갈 때마다 수가 줄어들고 힘없이 늙어가는 그들을 보면서 누구에게나 공평한, 그래서 두려운 시간의 위력을 느끼곤 한다. 아픈 한 사람 한 사람을 온 마음으로 부딪혀가는 의료진들의 모습에 슬며시 마음이 짠해지는데…. 우리도 이렇게 잘살게 되어 그때 받았던 감사함을 조금이라도 되돌려 줄 수 있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 6·25 참전용사들이 진료를 받으러 왔다.
필리핀이란 나라는 극과 극이다. 어디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이곳의 경우 빈민과 부자의 차이가 너무나 극명해 나는 그래도 한국에서 태어나길 잘했다,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들게 한다. 빈민촌을 거닐면 지프니라고 불리는 소형차들이 뿜어내는 매연이며, 거대한 광고판들이 뒤죽박죽 뒤엉키어 정신이 없다.

그래도 말이다. 진료 받으러 오는 사람들 중 가장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다. 가장 어렵게 살아간다는 이들. 배우지 못하고 그저 하루하루 살아지느라 제 한 몸 돌볼 겨를이 없는 이들의 소박함과 티없음은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까, 그들의 순수함이 유지되기를 바라는 제3자인 나의 마음이 가혹하다. 소박함과 꾸밈없는 그들의 모습에 반했기 때문일까. 이번에 함께한 젊은 한의사 분들도 너무 열심이다. 힘들어도 티내지 않고 끝까지 책임을 다한다.

▲ 혈을 뚫기 위해 부황을 뜬다. 필리핀 사람들도 제법 익숙한 듯 하다.
나는 그 어떤 무엇에 감동하면 내 마음을 어쩌지 못해 끓어오르며 발광하는데, 그때가 또 내가 나를 뒤돌아보며 자각하고 나다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순간 나는 내손을 찍으며 ‘나는 나’라며 지금 스스로의 사색에 감동한다. 사진가로 잘사는 것이란 과연 무엇이며, 이 순간의 사진적 시간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다보니 갑자기 필리핀에서의 옛 추억이, 사람이 사무친다.

아무리 살아가는 중의 일이라지만, 콤스타와 함께하면서 마음 아픈 일이 두 번 있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두 번째 필리핀 의료봉사를 함께 한 당시 류호균단장님의 죽음이다.

▲ 콤스타 의료진들의 진료모습.

같은 방을 쓰면서 의기투합해 이야기도 많이 했다. 코골이가 심한 내 잠버릇 탓에 시끄러워 잠도 제대로 못 자면서도 늘 나를 배려해 주었고, 덕분에 서울에 와서도 인연이 이어졌다. 그리고 그분을 찍은 사진을 모아 사진앨범을 만들어 전해주려던 즈음,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앨범을 장례식장에 들고 가니 사람들이 더 찡하게 감동하며 돌아가신 그분을 마음속 깊이 느끼지 않았을까.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 새로운 경험도 필리핀과 닿아있다.

의료봉사를 갔을 즈음 필리핀에서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시내로 나서면 무더운 여름 공기 사이로 캐럴송이 번져가곤 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최고라고 생각해왔던 내게 무더위 속에서의 크리스마스는 또 다른 새로움이자, 자극이었다. 여름이건 겨울이건, 크리스마스는 어디에서든 계속되는 것임을. 계절이 아니라, ‘그것’이 계속된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필리핀은 내게 알려주었다.

필리핀은 어떤 나라?

적도의 약간 북쪽, 아시아 대륙 남동쪽의 서태평양에 산재하는 7000여 개의 섬들로 구성된 나라로 정식명칭은 필리핀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이다. 국명은 16세기 중엽 파견된 스페인 탐험가 빌라로보스(Villalobos)가 당시의 스페인 황태자인 필립의 이름을 따서 ‘Las Islas Filipinas’라고 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30만400㎢에 달하는 국토는 북부의 루손섬과 중부 지역에 군집한 수천 개의 섬인 비사얀제도, 그리고 남부 지역의 민다나오섬으로 구분한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해양국으로 인근 바다가 태풍의 발생지이며 환태평양조산대에 있기 때문에 화산과 지진으로 인한 피해도 적지 않다.

1565년부터 스페인이 정복했고, 1898년 독립을 선언했으나 스페인-미국 전쟁으로 미국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 1943년 일본 점령을 거쳐 1945년 미군이 탈환한 후 독립했다. 말레이시아 사바주(州)를 둘러싼 영유권 갈등, 스프라틀리 군도를 둘러싼 베트남·말레이시아·중국·타이완과 영토분쟁을 겪고 있다.


사진가 최광호 | 1956년 강릉 출생. 고교시절 우연히 시작한 사진에 빠져 거의 모든 시간을 사진과 함께 해 온 사진가. “사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는 사진이다”로 답하는 여전히 뜨거운, 청춘. 우연한 기회에 스리랑카, 몽골, 티벳, 우즈베키스탄 등 수십 차례에 걸친 <콤스타> 의료봉사에 동행하면서 지구촌 곳곳에서 숨 쉬며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풀어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