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캠핑 그리고 커피
여름, 캠핑 그리고 커피
  • 이지혜 기자
  • 승인 2016.07.19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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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하늘내린터에서 카플라노와 함께한 달짝지근한 캠핑

한참 비가 쏟아지더니, 마침내 폭염의 주말이 왔다. 어디에 있어도 더위를 피하기 힘든 이런 날엔, 모든 걸 내려놓고 더위를 즐기는 것이 답일 수 있다. 열 일 젖혀두고 텐트를 실었다. 장소는 강원도 인제의 하늘내린터. 내리쬐는 태양 아래 쉘터 하나만 쳐놓고 앉아보면 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잔잔한 여름 바람이 느껴질 거다. 거기에 얼음 띄운 커피 한 잔이면 더할 나위 없을 거다.

▲ 카플라노는 이제 캠핑 좀 한다는 캠퍼들에게 필수품이다.

꽉 막힌 도로를 벗어나 강원도로 접어드니 길들지 않은 야생, 자연이 펼쳐진다. 강원도 중에서도 인제는 유독 개발이 더딘 곳. 세상과 단절한 채, 하룻밤 캠핑을 즐기기엔 인제만 한 곳이 없다. 숲을 엄격하게 관리한 덕에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는 하늘내린터에 도착하자, 엄한 분위기일 거란 예상과는 달리 온화한 미소를 가진 주인장이 우리를 맞았다.

“그대로의 자연을 마음껏 즐기고, 왔던 그대로 가시면 됩니다.” 간단명료한 그의 이야기는 이곳이 왜 이토록 깨끗한 푸름인지, 잔디 한 올 그을리지 않은 곳인지 알게 했다. 얇지만 세차게 내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텐트가 쳐졌다. 계곡 건너편에 있는 재래식 화장실도 멀지 않다.

▲ 강원도 인제 하늘내린터는 자연 그대로의 캠핑을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오늘의 캠퍼들이 하나둘 모였다. 캠핑과 커피의 교집합 사이에서 처음 보는 이들의 인사, 혹은 오랜만의 조우가 이어진다. 휘휘 텐트를 치고 자리를 잡으니 약속한 것처럼 커피가 내려진다. 누구 하나 말 한 사람 없는데도, 버너가 켜지고, 물이 끓고, 원두가 갈린다.

▲ 텐트가 쳐지고 하나 둘씩 모이자 약속이나 한 듯 카플라노로 원두를 갈고있다.
달달달. 원두 갈리는 소리가 계곡 물소리와 겹친다. 캠퍼들에게 카플라노는 어느새 필수품이 됐다. 연인과 함께하는 백패킹이 취미라는 양석중 씨의 가방 안에도, 캠핑 초보라는 박은진 씨의 테이블 위에도, 가족과 함께 오토캠핑을 다닌다는 석진우 씨의 텐트 안에도 카플라노가 있었다.

“캠핑에서 커피는 맥주보다 더 좋아요. 특히나 오늘처럼 더운 날, 쿨러에 가득 담아온 얼음이 있을 땐, 커피 빠진 캠핑은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시럽을 넣지 않아도 달짝지근하달까요.”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 잔씩 하고 나자, 본격적인 저녁 준비가 시작됐다. 이곳을 소개해 준 캠퍼가 대뜸 “감자 좀 캐오세요”하며 바구니를 내민다. 무슨 말인가 했더니, 농원 입구에 있는 감자밭에서 직접 캐오란 뜻. 이곳에선 3,000원을 내면 1kg의 감자를 수확하는 체험을 할 수 있다. 주인장은 어설픈 호미질을 보고도 못 본 척, 웃으시며 마침 올해 첫 감자 수확이란다. 감자는 커피만큼이나 달았다.

해가 기울고 타닥타닥 모닥불이 올라온다. 느리지만 맛있는 저녁을 다 함께 먹으니 어느새 노곤한 밤이 내린다. 아이들과 뛰놀던 강아지도 지쳤는지 텐트를 찾아 들어갔다. 제법 선선해진 저녁 바람이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더 생각나게 하던 차에, 다시 물이 끓기 시작한다.

▲ 캠핑장을 소개해 준 심슨님의 가족과 그들의 강아지 '나무'가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서울에선 원두를 갈던 시간, 커피 내리는 시간도 아까워 다른 일을 했었다. 이곳에선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천천히 그라인더를 돌리며, 서로의 여름에 쉼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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