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한 입에 계곡 두 모금, 꿀꺽!
바다 한 입에 계곡 두 모금, 꿀꺽!
  • 이슬기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장비협조 MSR
  • 승인 2016.07.0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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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무릉계곡 & 추암해변 트레킹

이른 무더위가 여름을 재촉해 발밑을 달군다. 뙤약볕 아래 있자니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손꼽아 기다렸던 젊음과 열정의 계절이건만 막상 다가오니 피서 생각이 간절하다. 올여름 휴가도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선다. 계곡이냐, 바다냐. 당장 짐을 꾸려 나서기도 부족한 시간, 고민하며 낭비할 겨를이 없다. 둘 다 가고 싶으면 그렇게 떠나면 될 일이다.

▲ 1,500평 규모의 무릉반석과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무릉계곡 초입.
여름이 흘러넘치는 계곡 속으로
전국은 지금 올여름의 예고편 절찬 상영 중. 아직 도입부인데도 벌써부터 그 기세가 심상찮다. 아스팔트는 후끈 달아오르고, 자동차 행렬은 뜨거운 매연을 뿜어댄다. 푹푹 찌는 도시를 벗어나고 싶다. 산 좋은 계곡의 시원스런 소리와 탁 트인 바다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이면 후련해질 것 같다. 그렇게 결정한 여정의 행선지는 강원도 동해시. 달뜬 마음으로 아침 일찍 길 위에 올랐다. 비지엠은 ‘도시탈출’.

“오늘 날씨는 맑다는데 하늘이 뿌예.”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동행인 승목이의 말에 창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아니나다를까 눈앞에 회색이 가득하다. “이놈의 미세먼지 여기까지 따라왔네. 그래도 대관령만 넘어가면 하늘이 파랗게 열릴 거야.” 친구를 안심시키고 화창한 하늘을 기대했는데 이게 웬걸, 대관령을 지나 왼편으로 망상해수욕장이 펼쳐지는 데도 탁한 먼지가 가실 기미가 없다. 해로운 미세먼지가 이곳 청정 강원까지 괴롭히고 있었다.

출발한 지 4시간여 만에 무릉계곡 관리사무소에 도착했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이름부터 매력적인 무릉계곡과 촛대바위가 있는 동해안 추암해변이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찾을만한 가치가 있다. “오, 여기 국민 관광지 1호라고 적혀있어.” 승목이의 얘기에 표지판을 확인했다. 이번 트레킹을 함께한 승목이는 십년지기 절친이다. 서로 속속들이 모르는 게 없는 사이. 갑작스러운 부탁에도 흔쾌히 함께 해줬다.

▲ 삼화사 입구에 다다르자 십이지신상이 반긴다.

▲ 보물 제1277호로 지정된 삼화사 삼층석탑.

▲ 시원스런 계곡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오르는 무릉계곡 등산로.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에 자리한 무릉계곡은 하류 호암소에서 시작해 약 4km 상류 용추폭포가 있는 곳까지를 말한다. 골짜기의 너럭바위 사이를 흘러 모인 소와 담이 멋들어진 무릉계곡은 수백 명이 앉을만한 무릉반석을 시작으로 삼화사, 학소대, 옥류동, 선녀탕 등을 지나 쌍폭, 용추폭포에 이르기까지 황홀하게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이야, 여기 앞에서 사진 찍고 가자.” 계곡의 초입, 호쾌하게 써내려간 글씨가 돌 위에 새겨져 있다. 양사언석각은 무릉반석 위에 쓰인 글자가 오랜 시간이 흐르며 희미해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보존하기 위해 제작한 모형 석각이다. 이 여름의 풍경과 푸른 녹음의 싱그러움도 계절에 사라져 가지 않도록 조각해 두고 생각날 때마다 찾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쏟아지는 폭포수에 뼛속까지 상쾌한 기분이다.
여기가 바로 무릉도원이구나
양사언석각 바로 앞에 놓인 것이 금란정이다. 오른편으로 말로만 듣던 1,500평의 무릉반석을 비롯해 우묵주묵한 너럭바위들이 깔려있고, 그 뒤로 으리으리한 백두대간의 산세가 펼쳐진다. 단연 풍류를 즐기는 정자로서 이만한 곳이 없다. 등산로가 쭉 이어져 있지만, 기자는 계곡을 가로질러 가보기로 했다. 무릉반석 주위는 물이 얕은데다 커다란 바위가 비교적 편평하게 깔려 있어 계곡을 걸어도 안전하다. 한여름엔 이 무릉반석 위로 피서객들이 다슬기떼마냥 빼곡하게 들러붙어 계곡을 즐긴다.

“청산~리~ 벽계~수야~” 명필가와 묵객들이 새긴 수많은 크고 작은 석각 사이로 따땃하게 열 오른 바위를 방석 삼아 양반다리로 앉았다. 무릉반석 한가운데 앉아 물소리와 바람을 느끼고 있자니, 유유자적 운치를 즐기는 옛 선비라도 된 느낌이다. 2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이곳의 경치는 김홍도의 산수화 속 무릉계의 자태와 별반 다를 바 없다. 바위 사이 물줄기를 따라 물고기와 다슬기떼가 노닐고 기암절벽이 풍류객을 유혹한다.

다시 등산로를 타고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삼화사를 지나 다다른 학소대에는 ‘한국의 그랜드 캐니언’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길 양옆으로 커다란 바위들이 만들어낸 길은 멋들어지지만 물이 말라 쏟아지는 폭포를 볼 수 없어 아쉬웠다. 학소대에서 오른편으로 꺾어 들어가면 관음암과 관음폭포, 그리고 신선이 앉았다는 신선바위를 볼 수 있다. 관음폭포 역시 수량이 풍부한 편은 아니라 비가 온 다음 날 찾는 것이 좋다.

▲ 짙은 신록이 우거진 무릉계곡은 도시를 벗어나 닿을 수 있는 최고의 탈출지다.

“우와! 드디어!” 폭포 소리가 커진다 싶더니 금세 쌍폭포다. 물줄기가 양쪽에서 시원스레 쏟아져 내리고 있다. 방금 딴 사이다를 꿀꺽 단번에 들이켜는 기분이다. 여기서 조금만 발걸음을 옮기면 바로 용추폭포다. 3단으로 된 폭포 아래로 깊은 소가 펼쳐진다. 당장에라도 텀벙 뛰어들고 싶지만 수영은 금지돼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내려오는 길, 아쉬운 마음을 달래러 삼화사에 들러 목을 축인다. 감로수라고 쓰인 약수가 그 이름만큼이나 달콤하다.

무릉계곡 캠프장은 울창한 솔숲 사이 자리해 운치 있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쓸려 빗소리처럼 울려 퍼진다. “내가 어쩌자고 여길 따라왔지. 네가 연락할 때부터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그래도 오래간만에 재밌잖아!” “그건 인정.” 몇 개월 만에 얼굴을 마주한 십년지기와 켜켜이 묵혀둔 옛이야기부터 근황 토크까지 나눈다. 오래된 친구의 좋은 점은 몇 달 만에 만났어도 바로 어제 진탕 놀고 헤어진 것처럼 편안하다는 사실. 몇 시간 전부터 그렇게 얘기를 해댔는데 아직도 무슨 할 말이 남았는지 두런두런 밤 깊어가는 줄 모른다.

▲ 무릉계곡에는 명필가와 묵객들이 새긴 크고 작은 석각이 지천이다.

바다냐 계곡이냐, 그것이 문제라면?

잎사귀를 타고 울리는 새소리에 아침 일찍 잠이 깼다. 밤새 바람이 거셌는데도 텐트 속은 후끈해 여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어제 계곡을 봤으니 오늘은 바다로 가야지!” “콜!” 무릉계곡에서 추암해변까지는 삼십 분 남짓 거리. 드라이브 코스 옆으로 ‘낭만가도’라고 적힌 팻말이 지나간다. 동해안을 따라 고성부터 삼척까지 이어지는 낭만가도에서는 푸른 해변과 아름다운 항구, 호젓한 해안 절경을 마음껏 음미할 수 있다.

정동진은 광화문의 정동 쪽에 자리하고, 추암은 남한산성의 정동에 있다. 해변으로 가는 길에는 나팔꽃을 닮은 갯메꽃부터 엉겅퀴, 해당화가 철을 맞아 지천이다. 북평 해암정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니 그 유명한 촛대바위가 독특한 모습을 드러낸다. 뾰족하고 길쭉하게 깎아놓은 듯한 바위가 우뚝. 위태로운 듯 또 굳건히 서 있는 그 모양새가 신기하다. “이 촛대바위에서 바로 애국가 첫 소절 배경을 찍었대. 해돋이 장면!” “대박. 셀카 찍어야겠네.” “여기 일출이 그렇게 기가 막히다는데. 다음번엔 놓치지 않으리.” “두고보자.”

▲ 아웃도어용 정수기를 이용해 계곡 물로 목을 축여본다.
▲ 솔숲이 우거진 무릉계곡 힐링캠핑장.

촛대바위에서 남쪽으로 해안 길을 내려가면 수로부인 공원이다. 조각공원과 사계절 썰매장, 그리고 동해의 멋들어진 풍광을 즐길 수 있어 사랑받는 곳이다. 더 걷고 싶다면 추암해변에서 시작하는 해파랑길 33코스에 오르는 것도 좋다. 바다를 길동무 삼아 옆에 끼고 동해역과 감추해변, 한섬해변을 거쳐 묵호역에 닿는, 총거리 13km, 약 4시간 30분 코스다.

1년 만에 찾은 동해바다는 여전히 포근하고, 또 여전히 개운했다. 시원스레 뻗은 수평선은 가슴을 후련하게 긁어주고, 짠 내가 녹아든 바닷바람은 걱정거리로 뒤엉킨 머리카락을 말끔히 감겨준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도.” 오도카니 서서 바다를 바라본다. 그렇게 몇 시간이라도 서 있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쉽게도 우리는 잠시 머물고 떠나야 하는 나그네일 뿐. 이번 여름이 찬란한 절정을 맞을 때 쯤 다시 찾아와 계절의 열기를 식히고 가겠노라고 바다와 약속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 촛대바위 앞에서 한 컷!

찌는 듯한 한여름, 타는 목마름을 해갈하는 한 잔의 찬 탄산음료가 계곡이라면, 바다는 태양을 피해 찾은 가겟집의 달착지근한 물냉면 한 그릇 같다. 서로 다른 매력 발산에 선뜻 한쪽 손을 들어주기가 힘들지만, 분명한 것은 여름철 무더위 속 끈적하고 늘어지는 일상에 바다와 계곡 모두 꿀맛 같은 활력소가 돼줄 거라는 사실. 그대의 선택은 어느 쪽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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