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설악, 솜다리가 지천입니다
여기는 설악, 솜다리가 지천입니다
  • 윤대훈 객원기자|사진 양계탁 기자|협찬 마무트
  • 승인 2016.07.04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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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리지

숲속으로 들어서자마자 사위는 순식간에 고즈넉해졌다. 작은 오솔길 주변으로는 넓고 큰 잎을 가진 고사리인 관중이 무성하고, 팔뚝보다 더 굵은 으름덩굴이 빼곡했다. 아침 공기를 가르는 명랑한 새소리와 어느새 들리기 시작한 계곡 물소리는 투명하기 그지없었다.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희미한 길 위에는 오래된 낙엽이 수북했고, 칡넝쿨 사이로는 연한 아침 햇빛이 시나브로 스며들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숲의 정령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올 것 같은 이곳, 초여름 어느 날, 설악산 소토왕골.

▲ 세 번째 마디를 오르는 한상섭 씨. 뒤로 케이블카가 다니는 권금성 일대는 구름에 잠겼다.

▲ 네 번째 마디 종료지점에서 뒤에 오르는 사람들을 확보하고 있다.
외설악 가장 인기 있는 리지코스

설악산은 우리나라 모든 등산인들의 절대적인 흠모의 대상이다. 남한 땅 세 번째 높은 대청봉(1,708m)을 비롯해 백두대간이 지나는 서북능선의 끝청(1,604m)과 중청(1,676m), 그 이름도 헌걸찬 용아장성릉과 공룡능선, 천화대와 범봉 그리고 달마봉. 토왕성폭포와 대승, 소승폭포, 오련폭포와 천당폭포 또 비룡폭포. 천불동계곡과 수렴동계곡, 십이선녀탕과 잦은바위골. 아차, 백담계곡과 가야동계곡도 빼놓을 수 없다. 암벽등반 대상지인 비선대의 적벽과 장군봉, 유선대, 또 울산바위와 토왕골의 노적봉, 집선봉과 선녀봉. 헤아릴 수 없는 봉우리와 폭포와 암릉과 계곡은 차마 다 열거할 수조차 없다. 봉봉이 기암절벽의 침봉이고, 골골이 심산유곡의 절경인 탓에 하이커는 물론이고 등반가들의 발길이 사철 끊이질 않는다.

특히 외설악 지역에 주로 개척된 리지등반 코스들은 그 놀라운 풍경과 압도적인 고도감 등으로 인해 주말이면 늘 등반가들로 붐빈다. 설악산의 수많은 등반 코스 중 가장 인기 있는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리지를 다녀왔다. 이 길이 왜 그리 인기가 많은지는 사진을 보고 판단하시기를.

소토왕골은 사전 등반허가를 받은 사람들 외에는 출입이 통제된다. 그래선지 오솔길로 접어들자마자 바로 인기척이 전혀 없는 시원의 숲에 들어온 듯 했다. 처음 건너는 소토왕골 계곡의 투명하기 그지없는 작은 소(沼) 옆 바위에서 우리 일행은 헬멧을 쓰고 안전벨트를 차고 퀵드로 몇 개와 캐밍장비를 꺼내 걸고, 로프를 풀어 목에 건채 왼편 암릉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다. 외설악 토왕골과 소토왕골 사이에 날카롭게 솟은 노적봉에서 북서쪽으로 늘어선 암릉을 오를 셈이다.

▲ 다섯 번째 마디 말등바위 구간. 앞으로 보이는 뾰족한 암봉이 노적봉.

90년대 중반 경원대산악회 김기섭 씨 일행이 개척한 ‘한편의 시를 위한 길’은 주말마다 등반가들의 등반신청이 쇄도한다. 이날도 우리는 새벽 일찍 출발해서 먼저 간 팀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출발지점에는 이미 K대 산악부 네 명이 등반을 시작하고 있었다.

이들의 뒤를 따라 천천히 등반을 이어갔다. 우리 일행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쉬운 암릉을 세 마디 정도 한가로이 올랐다. 주의해야 할 일은 실수로 작은 돌멩이를 뒤로 떨어뜨리거나 혹은 바위틈에서 피어난 솜다리를 멋모르고 잡거나 딛는 것 정도였다. 알프스 혹은 산악인을 상징하며 ‘에델바이스’라고도 불리는 이 보송한 흰 솜털을 가진 솜다리는 바위 틈 곳곳에 지천으로 피어있었다.

일행 중 새로 합류한 김은아 씨는 익스트림라이더등산학교와 정승권등산학교 빙벽반을 수료했고, 작년 익스트림라이더 빅월등반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베테랑 등반가다. 그런 만큼 우리는 굳이 서두르거나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 천천히 까칠한 질감의 바위를 오르며 그저 위와 아래, 가까운 곳과 먼 곳을 여유롭게 둘러보면 충분했다.

▲ 일곱 번째 마디 종료지점. 희고 붉고 검은 바위와 푸른 하늘과 배낭, 하얀 구름, 그리고 오르는 사람들.

아찔한 고도감의 말등바위

작은 암봉 서너 개를 지나면 약 20m 정도의 말등바위를 건너게 되는데 이곳에서의 고도감은 꽤나 아찔한 것이었다. 바로 오른쪽 아래로 소토왕골 두줄폭포로부터 흘러내리는 계류가 보이는데 그것이 고도감을 더욱 극적이게 했다. 앞서 가던 K대 산악부 1학년 여학생은 이곳을 지나며 여러 차례 비명을 질러댔다.

말등바위를 건너 뒤를 돌아보면 멀리 울산바위가 마치 구름 위로 뜬 섬처럼 보였다. 잔뜩 찌푸린 날씨 탓에 선명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흐릿하게 보이는 울산바위는 해무를 헤치고 운항하는 전함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른쪽으로 훌쩍 건너뛰면 말안장 같은 달마봉도 뿌연 안개 사이에서 의연하게 서 있었다.

▲ 원기정 씨가 일곱 번째 마디를 등반하고 있다.

말등바위를 지나면 본격적인 노적봉 북서벽을 오르게 된다. 확보지점에는 새로 보수하여 설치한 볼트가 든든했다. 몇 군데의 크랙에 캐밍장비를 설치하고 6피치 확보지점에 도착하자 울산바위나 달마봉과 비슷한 높이가 되었다. 바로 뒤 죽순봉 너머로는 설악산 케이블카가 쉴 새 없이 오르내리고 있었는데 “웅~ 우웅”하는 기계음이 지척에서 들리는 듯해서 내내 거슬렸다. 케이블카를 타고 권금성에 오른 사람들의 모습이 봉화대 정상부에서 개미떼처럼 고물거리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이곳까지 오며 느꼈던 설악의 풍광과는 사뭇 이질감이 드는 것이었다.

일곱 번째 마디 작은 오버행을 넘어서면 등반은 마무리 된다. 로프를 사려 배낭에 넣고 쉬운 암릉길을 한참 더 걸어 올랐다. 크고 작은 바위를 넘고 키가 작지만 억센 줄기를 가진 침엽수 몇 그루를 돌아 나가자 마침내 노적봉 정상이었다.

▲ 노적봉 정상에서 클라이밍다운이 한참동안 이어진다. 초보자는 수시로 확보를 해 주거나 경험자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우와! 세상에, 이런 풍광이 이렇게 펼쳐지다니.”
노적봉 정상에 처음 오른 김은아 씨는 입을 떡 벌린 채 연신 감탄을 쏟아내며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난겨울 토왕성빙폭 정상에 올라서 본 풍경보다 훨씬 더 웅장하고 멋진 풍광이라며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설악산 토왕골의 숨은 속살은 과연 놀라운 것이었다. 전장 320m에 달하는 토왕성폭포는 비록 물줄기 하나 없이 메마른 것이었지만, 폭포의 배경을 이루는 그 장대한 바위벽은 보는 이들의 두 눈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그 옆 기치창검처럼 치솟은 선녀봉과 주변 침봉들 역시 온몸을 바짝 긴장하게 하는 고도감과 함께 이 땅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놀라운 풍광을 쏟아내고 있었다.

▲ 다섯 번째 마디 오버행 크랙을 오르는 한상섭 씨.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만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 노적봉 정상 부근에서 토왕성폭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 검은 물줄기만 남은 토왕성폭포 상단과 왼쪽으로 선녀봉이 보인다.
노적봉은 완벽한 토왕성폭포 전망대

이곳에 서면 인간은 그야말로 대자연 앞에서 정말 작은 미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저 압도적 규모의 대자연에서 우리는 한낱 고물거리는 개미 한 마리 같은 존재라는 사실. 우리 앞으로는 K대 산악부 말고도 제법 인원이 많은 두 팀이 더 있었다. 그들 역시 한낱 티끌 같은 존재여서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 실제 조우하기 전까지는 그들의 실재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위벽과 숲, 계곡과 하늘의 규모가 실로 압도적인 것이어서 우리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 역시 똑같은 존재였을 테다. 노적봉 정상에서 우리는 한껏 작아졌다. 개미처럼 작아진 우리들 머리 위로 매 한 마리가 유유히 날아갔다.

노적봉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마치 미로를 더듬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교묘히 이어진 바위 사이로 겨우 한 사람 지나갈 만한 길이 이어졌다. 한참을 이어지는 클라이밍다운 구간에는 볼트에 걸린 빨간색 슬링을 잡고 매달려 겨우 내려서야 하는 곳도 있었다.

세 번에 걸친 로프 하강 끝에 우리는 다시 바위가 아닌 지상에 내려섰고, 무너지기 쉬운 급경사의 퇴석지대를 조심조심 내려와 소토왕골 계곡에 도착했다. 흐르는 맑은 물에 흘린 땀을 씻고 주섬주섬 풀어 논 장비를 챙겨 다시 배낭을 멨다. 적요한 숲길에는 박쥐나무가 희고 노란 앙증맞은 꽃을 피웠고 맑은 계곡은 다시 투명한 소리를 내며 흐르기 시작했다. 후드득 한줄기 바람이 지나고 우리는 숲을 빠져 나왔다. 이제 숲은 다시 설악의 정령들 차지가 될 것이다.

▲ 등반을 마치고 소토왕골 합수지점에서 잠시 쉬는 김은아 씨.

▲ 노적봉 정상 직전 작은 암봉을 돌아서는 김은아 씨. 멀리 울산바위는 구름에 가렸고,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이 있는 권금성과 그 아래 안락암은 지척으로 보인다.

▲ 세 차례에 걸친 로프 하강으로 노적봉 안부에 다다를 수 있다. 하강 시에는 낙석에 특히 주의해야 한다.

▲ 원기정 씨 뒤로 올라온 ‘한편의 시를 위한 길’ 암릉이 펼쳐진다. 짙은 숲으로 고도감이 한층 더 느껴진다.

▲ 한편의 시를 위한 길 리지에는 바위 틈 곳곳에 솜다리가 지천으로 나 있다.

INFORMATION / 한편의 시를 위한 길(초,중급)
들머리
설악산 소공원 출렁다리휴게소 앞 비룡교를 건너 왼쪽 비룡폭포 가는 길로 100m 정도 가면 오른쪽으로 소토왕골 입구가 나온다. 출입금지 안내판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15분 정도 오르면 계곡을 건너는 지점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안전벨트 등 장비를 착용한다. 계곡을 건너 20m 정도 가면 왼쪽으로 작은 바위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등반을 시작한다.

등반시간
4인 1조 등반 시 리지등반에만 약 3시간 소요.

등반장비
60m 로프 2동, 캐밍장비 1세트, 퀵드로 5개, 슬링 다수

하산코스
노적봉 정상에서 소토왕골 안부까지 제법 까다로운 클라이밍다운이 이어진다. 초보자의 경우 경험 있는 리더와 동행하는 것이 좋다. 60m 로프 두 동을 이용해 세 차례 하강하면 노적봉 안부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소토왕골 암장이 있는 합수지점까지는 무너지기 쉽고 가파른 퇴석지대를 30분 정도 내려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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