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발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땅
큰 발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땅
  • 글 사진 이상은 한국등산트레킹지원센터 홍보이사
  • 승인 2016.06.06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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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대지 파타고니아…바람과 물과 빛의 길

남아메리카 대륙의 남쪽 끝, 산과 들과 호수가 살아 숨 쉬는 신비의 땅에는 수많은 길이 있다. 암봉과 대지를 넘나드는 세찬 바람의 길, 빙하와 호수를 흐르는 시린 물의 길, 변화무쌍한 구름을 뚫고 내리쬐는 빛의 길…. 저마다의 질감으로 빚어진 길에서 인간은 발자국을 남기고 추억을 훔친다.
 

길을 따르는 여행자의 발걸음이 더해질수록 풍경은 몇 번이고 다시 쓰인다. 그리하여 파타고니아는 트레킹의 성지다. 모든 것이 매혹적인 이 땅의 풍경은 시시각각 드라마틱하다.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순백의 빙하, 압도적인 세 개의 봉우리 토레스 델 파이네로 향하는 W트레일의 아득한 노정, 만년설이 얼어붙은 세로또레와 피츠로이로 향하는 꿈의 길…. 길 위의 풍경은 자꾸만 ‘더 걸어라’고 등을 떠민다. <편집자주> 협찬 파타고니아

파타고니아
큰 발을 가진 사람들이 사는 땅, 불모의 황야라고 불리던
이곳 태초의 자연이 숨 쉬는 땅에는
눈길 닿는 곳 모두 시원(始原)조차 가늠키 어려운
아주 오래전부터의 화석 같은 길이 있다.

하루 세 끼니를 먹듯
걷는 게 자연스러워질 즈음,
눈에 든다.
땅 위 사람의 길을 닮고 싶어 하는 하늘길
먼발치 낮부터 달려온 붉은 노을길
바람길, 물길…
사람도 바람도 모두 저 그리운 쪽으로 길을 내고
굽이치는 그 길 위로
흐르고 또 흐른다.

경계,
그 아득함과 아슬함, 그걸 넘어서는 호기심
매력과 위험을 동시에 안고 있는
경계 너머의 이율배반적인 또 다른 길

파타고니아에서는 정해진 루트를 걷지만,
모든 길은 경계를 넘어서 너의 길을 가라고 부추긴다.
세찬 바람을 뚫고 걷는 힘으로
껍데기를 벗고 내딛을 수 있다고 토닥인다.
나는 또 의무인양
그 길의 커다란 물음에 서툰 발걸음으로 답하고 있다.

파타고니아
아직도 바람은 길 위에 있고
나는 오늘도 걸어 지구의 자전(自轉)을 돕는다.
다시 걷는 이유다.

끝없는 길을 걷다보면
나와 비슷한 걸음 소리가 반갑다.

발꿈치 들고 숨죽여 걷거나
무리지어 몰려드는 분주한 동물의 걸음 말고
저벅 저벅 저의 몸무게와 등짐의 무게가 적당히 실린
몇 십 년 살아온
걸음이 반가운 것이다.

걷다 보면 안다.
구름 낀 하늘이 비만 쏟아내는 건 아니라는 것을
그 퉁퉁 부어오른 검정 목구멍에서도
환한 빛이 함박꽃처럼 터져 나온다는 것을

그리고 걷다 보면 안다.
우리는 같은 길을 가지만
또 서로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음을
외로워도 혼자 달려야 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안다.

마음이 강팍해 질 때
걷기만 해도
그 마음 다시 벼이삭 통통한 황금들녘이 되어
힘찬 걸음 팍팍 내딛게 하는 길이 있다는 걸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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