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나들이
봄나들이
  • 오대진 기자|사진 하정숙
  • 승인 2016.05.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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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내 이야기, 아홉

오로지 낚시는 잠시 양보하기로. 낚시에 부담감을 느낀 아들, 편집 팀과의 조율 끝에 주제의 폭을 넓혔다. 말 그대로 ‘두 사내 이야기’. 마침 봄꽃 개화시기, 가볍게 한강에 나들이 떠났다. 그러고 보니 아부지랑 봄나들이 갔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잘 됐다. 바람이나 쐬자.’

4월 둘째 주에 여의도를 찾았다. 봄꽃 절정이라는 예보에 사람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다들 일 안하고 여기서 뭐 한대요?”
“그러게 말이다. 어르신들은 그렇다 쳐도 젊은 사람들도 엄청나네.”
“평일에 이러면 이번 주말에는 사람에 치이겠다.”

주차하는 것도 일이다. 여의도 한강공원 곳곳에 위치한 주차장마다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 있다. 활짝 핀 벚꽃과 개나리를 맞는 여유로움도 잠시, 이내 뜨끈한 복사열에 심기가 불편해지기 시작.
“이거 들어가겠냐? 주차장도 아주 꽉 들이찼다.”
아들은 또 땀이 삐질.
“흠…, 건너편에 넓은 주차장 있는데 거기로 가볼게요.”
다행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주차장, 그나마 덜하다. 조금 기다리니 바로 골인. 시원한 봄바람이 삐질 난 땀을 안고 ‘휑’ 달아난다.

‘매일 보는 한강인데…, 다르네?’
생각해보니 당신들과의 한강공원, 처음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너. 친구들과, 지인들과는 운동이다 치맥이다 해서 그렇게 들락날락거리고서는. 10년 가까이 한강변에 살았는데도 말야.’
당신들과 함께 차에서 내려 한강둔치에 다다른 그 5분의 시간이 어색하기만 하다.
“구름 한 점 없고, 날씨도 선선한 게 좋다. 아들.”
“네. 좋네요”라고 말은 했지만, 왜 이리 작아지는지.
“점심도 가까워 오는데 배 안고프세요? 한강은 치맥이랑 끓여먹는 라면이 인긴데 드실래요?”
“그러냐? 그럼 라면이나 한 그릇 하자.”
그렇게 해서 선택된 봄나들이 점심 메뉴는 편의점 라면.

‘모처럼 부모님 모시고 나왔는데 그림이 이상한건가? 편의점 라면이라니.’
점심식사 대접은 낙제점. 그러나 색다른 추억 쌓기 면에서는 괜찮은 선택이었다. 아버지는 전망 좋은 벤치를 선점, 아들과 어머니는 요리. 끓여 먹는 라면의 전자동 시스템, 초심자의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물 부어주고, 끓여주고, 종료 시간도 알려주고.
“신기하다 얘. 편하기도 하고.”
역시나 감탄하시는 어머니.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의 관광 코스로도 소개된단다.
“괜찮아요? 먹을 만 해요?”
“괜찮네. 꼬들꼬들하고. 근데 뭐 하는 거냐?”
“사진 찍어야죠. 이것도 추억인데.”
“에라이, 치워라. 라면 먹는 걸 뭘 찍냐. 됐다.”
아버지가 제일 빨리, 많이 드셨다. 드실 만 하셨나보다. 물론, 사진도 찍었다. 먹음직스럽게. 끓여먹는 라면 먹어 본 사람은 알지. 컵라면 하고는 클라스가 다르다.

“드셨으니 슬슬 산책도 할 겸 윤중로 쪽으로 가시죠.”
여기야말로 인산인해다. 평일 오후가 맞나 싶을 정도. 꽃놀이 나온 어르신부터 알콩달콩 연인, 자연학습 나온 유치원생, 관광 온 외국인, 여기에 취재 인파까지. 발걸음 옮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봄꽃놀이에 취한 사람들의 웃음까지 빼앗진 못하지.’
“어마어마하네. 벚꽃이랑 개나리도 흐드러지게 핀 게 보기 좋네. 야~.”
“할머니들도 셀카 찍고, 노래 부르고 신났네, 신났어.”
“이거 봐요. 나무에도 벚꽃이 폈네.”
“신기하네. 어떻게 저기에 싹을 피웠데.”
“더 예뻐 봬. 더 생기 있어 보이기도 하고.”

이색 벚꽃에 사람들이 너도나도 몰린다. 신기한 광경을 어린 아들딸에게 설명해주는 아빠, 호들갑스럽게 일행을 부르는 어머님,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연인. 그런데 다 좋지만은 않다.
“저거 저, 왜 저러는 거냐. 왜 못살게 굴어….”
“휴, 저런 애들만 보면 진짜 한심해서.”
사진 예쁘게 찍겠다고 연신 벚꽃나무 가지를 흔들어댄다.
‘그러고 SNS에 올리면 네 얼굴에 침 뱉기다. 그건 알고 그러냐, 니들.’
한 어르신이 보다 못했는지 가서 한 마디 하신다. 걸어 온 길을 다시 돌아간다. 봄나들이 즐기는 이들의 얼굴을 마주한다. 나이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고, 사는 곳도 모두 다른 이들.
“다 웃고 있는 거 봐라. 여유롭네.”
“봄꽃이 대단하긴 하네요. 이 수많은 사람을 다 불러 모으고.”
“아들 덕분에 봄나들이 제대로 하네. 서울 처음 올라왔을 때 이후로 처음인 것 같은데, 좋네.”

어릴 적 기억을 떠올린다. 기억에 의한 것인지, 훗날 사진을 보고 재구성한지는 모르겠으나. 봄꽃 핀 공원, 아장아장 걷고 있는 한 아이. 그리고 그 뒤로 이 어린놈이 얼마나 걷는지 혹여 넘어지진 않을까 지켜보는 이들이 있다. 그 따뜻한 봄 햇살의 기억은 당신들과 함께여서 가능했겠지. 오늘 이 봄나들이는 그 추억의 뒤편에. 매번 하는 생각을 또 한다.
‘더 자주 채워 넣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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