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지나는 소리…김포 가현산길
봄이 지나는 소리…김포 가현산길
  • 이지혜 기자|사진 양계탁 기자
  • 승인 2016.04.29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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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현산 입구~묘각사~진달래 동산…절정을 맞이한 진달래 군락지로

산 위의 날씨가 훨씬 더 추워서였을까. 지난겨울이 유난히도 길었다. 일기예보엔 진즉 봄이 왔다곤 했지만, 지난달까지도 매섭게 몰아친 바람 탓에 쉽게 가벼운 옷을 꺼내 들기 힘들었다. 이러다 봄은 구경도 못 하고 지나가겠다. 하루아침에 패딩에서 반소매로 갈아탈 지도 모를 노릇. 봄을 킁킁거리며 찾았다. 마침 가까운 곳에 어렵지 않은 곳이 있단다. 진달래가 만발로 피었단다. 막내 기자를 부추겼다. 슬기야, 봄 보러 가자.

가현산은 경기도 김포시와 인천시의 경계에 솟은 해발 215m의 낮은 산이다. 아웃도어 기자가 가는 산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높이일지 모른다. 하지만 짧지만은 않은 경험 덕에 산의 높이가 중요하지 않단 걸 안다. 낮다고 만만히 보고 뛰어가다 세상 어지러워지는 경험을 했던 인왕산, 높아서 무서워했지만 생각보다 거뜬했던 치악산까지. 산의 높이는 그저 숫자일 뿐이다.

가현산은 주변에 견줄만한 봉우리가 없어 한강과 김포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날이 좋을 땐 북녘 땅까지 보일뿐더러 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이 장관인 곳이기도 하다. 완만한 꼭대기에는 진달래 군락지가 있는데, 강화의 고려산보다 더욱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망설임 없이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선배, 그런데 날씨가 너무 탁하지 않나요?

사실 그랬다. 하늘을 뒤덮은 뿌연 미세먼지. 우리가 가현산을 택한 이유 중 하나인 일몰은 보기 힘들겠다. 장관이라던데. 바다로 스러지는 일몰을 보며 마감 중 과감히 택한 하루의 저녁을 여유 있게 보내고 싶었는데, 출발도 전에 아쉬움이 앞섰다.

흔히 김포 가현산이라고 하지만 정상과 산자락 대부분은 인천시 서구에 속한다. 산의 품이 넓을뿐더러 주변이 낮은 평야 지대라 높이에 비해 우뚝하게 느껴진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 능선들이 매력적인 곳이다. 능선의 길이가 평균 2km. 어느 곳에서 산행을 시작하든 느리고 호젓한 트레킹을 즐길 수 있다.

가현산 중턱에 있는 묘각사로 오르는 길. 숲길 입구부터 만개한 진달래, 얼굴을 내미는 철쭉들이 어우러졌다. 완만한 트레킹 길에 산악자전거가 여럿 보인다. 사실 가현산은 산악자전거 코스로도 유명하다. 가볍게 산책하는 가족도 많다. 예쁘게 미용한 강아지와 한가로이 운동 나온 아주머니, 친구들과 돗자리 하나 메고 발걸음을 옮기는 아저씨. 모두의 얼굴엔 우리와 비슷한 설렘이 스며들었다.

오랜만에 일하러 나온 것 같지 않다. 정말 봄 꽃 보러 온 것 같아.
저도요, 선배! 꽃놀이하는 기분이에요. 콧노래가 절로 흥얼거려지네요.

해병 2사단 뒤 산자락에 위치한 묘각사에 도달했다. 큰 절은 아니지만, 서해를 바라보며 고목들 속에 안긴 위치가 운치 있다. 절의 규모에 비해 부지가 커 쉴 곳이 많다. 오르는 게 힘들거나 시간이 여의치 않다면 묘각사 입구에 차를 세워놓고 정상을 갈 수 있으니 참고하자.

선배, 저기 좀 보세요!

막내 기자의 외침에 고개를 들어보니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부터 능선이 분홍으로 물들었다. 산의 규모에 비해 큰 진달래 군락지. 오르면 오를수록 끝이 보이지 않는 진달래밭에 땀이 저절로 식는 기분이다. 이틀 전 주말에 진달래 축제가 개최되었단다. 수분이 끝난 진달래들이 있는 힘을 쥐어짜내며 마지막 색을 뿜어내는 중이었다.

정상에는 정자를 비롯해 헬기장, 벤치 등 곳곳에 쉴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진달래 숲 아래에 돗자리를 펴고 소풍을 즐기는 일행이 많았다. 빠르게 땀이 마르고 고운 바람이 불어왔다. 해가 지는 모습을 담지는 못하겠다. 멀리 김포평야가 보이긴 하지만 뿌연 하늘이 유난히도 야속한 오늘이다.
원 없이 진달래를 즐기고 오는 길. 자그마한 주점이 보인다.

슬기야, 산행의 끝은 뭐다?
막걸리요!

바쁘고 잔인한 봄. 떨어지기 직전 만개한 진달래 군락지에서, 들을 수 없을 줄 알았던 봄의 소리를 마음껏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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