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이 넘실대는 청보리밭 사잇길에서
푸르름이 넘실대는 청보리밭 사잇길에서
  • 류정민 기자 | 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4.29 13: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호남의 내금강 선운산 도립공원 & 초록의 지상낙원 청보리밭 트레킹

동백꽃이 가득했던 고창 선운산은 봄이 되면 짙푸른 향으로 뒤덮인다. 낮지만 볼거리 많은 선운산과 푸른 봄을 간직한 고창 청보리밭. 지난 2월, 경주 소나무 숲 트레킹을 함께한 이혜린 양과 선선한 바람이 부는 봄날 다시 만나 고즈넉한 고창의 길을 걸었다.

▲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걷기 좋은 보리밭 길.

노란 물결과 초록 물결 사이
고창 청보리밭 입구에 들어서자 제주도에 온 듯 유채꽃의 노란 물결이 줄지어져있고, 주변은 온통 꽃향기로 가득 차 있었다. 꽃과 벌과 나비가 함께 어우러져있는 유채꽃 길을 지나 저 멀리 녹색 빛을 양껏 내뿜는 청보리밭이 눈에 들어온다.

2004년 처음 시작된 청보리밭 축제는 30만평에 달하는 청보리밭의 장관을 널리 알리고 지역 문화를 소개하기 위해 만들어졌으며 올해는 4월 16일부터 5월 8일까지 열린다. 축제 시작 일주일 전,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나들이 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축제 때마다 매년 50만 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니 이 정도는 한적한 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전문적으로 사진을 찍으러 온 사진작가도, 노랗고 푸른 배경 안에서 웨딩사진을 찍는 예비부부의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영화 촬영지로도 많이 나와서인지 제법 익숙한 곳도 보였다.

▲ 노오란 유채꽃이 먼저 반기는 고창 청보리밭. 곳곳에 원두막이 설치되어 있어 한 눈에 보리밭을 감상하기 좋다.
 

▲ 탄생한 띠의 동물 조각에 걸터 앉아 사진을 찍고 간직하면 오래도록 행운을 가져다 준다길래 한 장 찰칵.

보리밭 사잇길을 걷다보면 12개의 돌 조각이 동그랗게 모여 있다. 쥐, 소, 호랑이,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십이지 조각이다. 탄생한 띠의 동물 조각에 걸터앉아 사진을 찍고 잘 간직하면 부적의 효과를 내서 오래도록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쓰여 있었다. 진짜 부적은 아니겠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나는 용을, 혜린 언니는 토끼를 찾아 한참을 헤맸다. 조금은 어설픈 형상이라 뱀인지 용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언니도 마찬가지. “이게 토낀가?” 하며 슬며시 걸터앉았다.

보리는 겨울에 심는다. 지난겨울 심어놨던 보리가 막 자라기 시작할 무렵 30만평에 달하는 보리밭이 푸르게 물든다. 보리가 주는 푸릇푸릇한 신선함이 농원의 봄을 열고 있었다. 작은 연못과 오두막이 중간 중간 자리 잡고 있어 연못 둘레길을 쉬엄쉬엄 걷다가 원두막 위로 올라서본다. 한 눈에 보리밭을 감상하기에 좋다. 보리밭 사이로 걷기 좋은 길을 만들어놔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 보리밭에서 영화 속 한 장면 찾기.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 나왔던 뽕나무가 이렇게나 자랐다.

선운사 야영장에서
짧지만 강렬했던 청보리밭 산책을 마치고 선운산도립공원으로 향했다. 선운산은 원래 도솔산이었으나 백제 때 생긴 선운사가 유명해져 선운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공원이 얼마나 넓은지 공원 안에 마트와 편의점, 유스호스텔과 호텔, 버스 정류장까지 한데 모여 있다. 우리가 하룻밤 묵을 선운산(선운사)야영장은 무료로 운영되고 있어 장박하는 텐트들도 많았다.

해가 떨어지기 전 텐트를 치고 사이트를 정비했다. 해가 길어져서 좋은 것은 트레킹을 끝내고 나서도 밝은 대낮에 캠핑 온 것처럼 사이트를 칠 수 있다는 점이다. 계획보다 일찍 끝난 일정 덕에 오랜만에 여유롭게 둘러앉아 맥주 한 잔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잠들었다.

▲ 잉어들이 사는 연못 둘레길에는 다채로운 색을 자랑하는 온갖 꽃나무들이 있어 지루하지 않다.
▲ 깊어가는 밤, 선운산 도립공원 안 무료 야영장에서의 하룻밤.

▲ 춥지도 않고 벌레도 없는 5월은 캠핑하기 딱 좋은 계절, 가벼운 프리라이트나 허바허바NX 등의 삼계절용 텐트로도 충분히 따뜻하다.

따스한 봄볕 속 선운산 트레킹
다음날이 되자 흐렸던 날씨가 쾌청하게 맑아졌다. 따스한 봄볕 속에서 선운산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선운사도립공원에는 총 4개의 코스가 있는데 4.7km의 1코스만 트레킹 코스고 나머지 2, 3, 4코스는 등산길이다. 일행과 이야기 나누며 편안하게 걸을 수 있을 정도의 트레킹 코스와는 달리 등산길은 경사도 있고 험하다. 다른 코스들도 둘러보고 싶었지만, 2월부터 5월 15일까지 봄철 입산통제 기간이라 1코스를 제외한 전 구간이 통행금지였다.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지만 아쉬워하기엔 이르다. 도솔계곡을 따라 도솔암 마애불을 찍고 낙조대와 천마봉을 거쳐 도솔암으로 내려오는 1코스는 전설과 역사가 어우러진 선운산 최고의 산길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쪼르르 흐르는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 평화롭다. 선운사는 내려오는 길에 들르기로 하고 일단 문화해설사와 함께 도솔암으로 향했다. 천연기념물 354호인 도솔암 장사송을 보면 멈칫할 수밖에 없다. 23m의 키로 우뚝 서 있는 이 나무는 600살을 훌쩍 넘긴 오래된 나무다. 깎아지른 암벽에 조각된 마애불상(보물 제1200호)은 배꼽 속에 숨겨진 비결이 세상에 나오는 날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고 중생을 구제한다는 전설의 부처다. 1893년 동학접주 손화중이 비결을 꺼내고 이듬해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를 휩쓸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마애불상을 지나쳐 가파른 계단 200개 정도를 오르면 보물 제280호 도솔암 지장보살좌상과 내원궁이 나온다. 기암절벽과 계곡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관심 있게 들여다보게 된다.

▲ 쪼르르 흐르는 계곡 물 따라 선운사를 걸어본다.

▲ 깎아지른 암벽에 조각된 보물 제1200호 마애불상.
도솔암을 지나자 산길이 시작됐다. 거대한 바위 밑으로 둥그런 구멍이 파인 용문굴은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엄마가 죽음을 맞이한 곳이란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굴 속으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큰 바위 위에 소원 돌도 올려보고 땀을 식혔다. 용문굴을 지나 10분 정도 산을 오르면 선운산의 절경으로 꼽히는 낙조대와 천마봉을 볼 수 있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최상궁이 자살했던 곳으로 나온 낙조대는 아찔한 암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고창 앞바다의 낙조가 장관이라는데, 아쉽게도 해가 쨍쨍할 때 올라가 일몰은 보지 못했다.

284m의 천마봉에 오르면 낮은 산임에도 탁 트인 풍광이 펼쳐진다. 비슷한 높이의 봉우리 덕분일까? 자그맣게 보이는 도솔암의 모습도, 도솔계곡에 알록달록 피어있는 아름다운 봄꽃들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다. 하산은 도솔암으로 이어진 지름길로 내려왔다.

봄은 동백꽃, 가을은 꽃무릇으로 뒤덮이는 선운사 외에도 바다와 강이 만나는 풍천의 지역 고창은 장어도 유명하다. 이번에 둘러보지 못한 고인돌 질마재 100리 길을 걸으며 풍천 장어를 맛보러 다시금 들러야겠다.

▲ 청보리밭에서 높이 날아 점핑.

▲ 200개 정도의 계단을 올라야 볼 수 있는 도솔암 지장보살좌상과 내원궁.

▲ 백제에 창건된 천년 고찰 선운사. 도솔산을 선운산으로 바꾸게 할 정도로 유명하다.

▲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의 엄마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용문굴.
 
▲ 짙푸른 나무들 사이로 각양각색의 봄꽃이 알록달록 피어 있다.
 
▲ 284m의 낮은 봉우리지만 사방이 트여있고 바람이 쌩쌩 불어 종잇장처럼 몸이 흔들린다. 다리가 후들후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