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에 드리운 삶의 비애…시와 음악이 만나는 자리
봄 햇살에 드리운 삶의 비애…시와 음악이 만나는 자리
  • 박성용 부장
  • 승인 2016.04.27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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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CLASSIC

짧은 평화와 봄
1982년 출간된 김종삼의 마지막 세 번째 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와 세상을 뜨기 6개월 전에 나온 시선집 <평화롭게>에 수록된 시 ‘평화롭게’는 주석이 필요 없을 만큼 간결하다.

모차르트가 죽기 몇 달 전에 작곡한 가곡 K.596번. ‘봄의 동경’ 또는 ‘봄을 기다리며’ 정도로 해석되는 이 작품은 어린이 음악을 의뢰받고 작곡한 5절 2분가량의 짧은 음악이다.

▲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의 모차르트 가곡집. 사진 김해진
▲ 소프라노 리타 슈트라이히의 가곡집.

▲ 황동규의 동명 연작시를 모티프로 작곡한 최경래의 <풍장>.
이북에서 내려와 신산스런 삶을 살며 탈속의 가난을 보여준 김종삼. 밖으로는 대주교, 귀족사회와 대립, 안으로는 아내와 불화, 그리고 궁핍에 몰렸던 모차르트. 둘은 개인사적으로 불행한 말년에 천진난만하면서도 속에는 절규를 품고 있는 작품을 남겼다.

모차르트의 이 가곡은 요즘 93.1 제1FM 프로 중간에 기악곡으로 편곡되어 간주곡처럼 나온다.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는 원숙한 목소리로 봄을 노래하고, 리타 슈트라이히는 청아한 음성으로 봄을 맞이한다.

이 음악에 김종삼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또한 이 무렵의 계절을 아름답고도 가슴 아린 동시로 노래한 윤한로 시인의 ‘분교마을의 봄’도 겹쳐진다. 무릇 세상의 아름다움에는 삶의 비애가 담겨 있다.

▲ 황동규 연작시집 <풍장>.
풍장과 죽음의 명상록
1982년부터 시작되어 1995년에 70편으로 끝을 맺은 황동규의 연작시 <풍장>은 죽음에 대한 시인의 명상록이다. 황동규는 13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덧없는 삶과 죽음을 관조하면서 그 끝은 새로운 생명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풍장 70’은 모든 정신과 육신이 풍화되어 나타난 시인의 담담한 자기 고백이다.

이 풍장에 헌정한 음반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 최경래는 풍장의 이미지를 8곡으로 작곡해 간간이 기타가 동반하는 피아노로 연주한다. 조지 윈스턴 풍의 뉴에이지 계열이다. 음반 내지에 시인에게 이 음반을 바친다는 구절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최경래는 황동규와 풍장에게 깊은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정신에 힘을 빼고 감성의 주파수를 맞추면 고요하고 쓸쓸한 정서를 이 음반에서 느낄 수 있다. 이런 뮤지션을 독자로 둔 황동규 시인은 풍장의 영역을 음악으로까지 확장시킨 셈이다. 이로써 풍장은 소멸의 끝에 새로운 탄생이 시작되는 어두운 공간이자 밖으로 향하는 출구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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