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평화와 봄
1982년 출간된 김종삼의 마지막 세 번째 시집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와 세상을 뜨기 6개월 전에 나온 시선집 <평화롭게>에 수록된 시 ‘평화롭게’는 주석이 필요 없을 만큼 간결하다.
모차르트가 죽기 몇 달 전에 작곡한 가곡 K.596번. ‘봄의 동경’ 또는 ‘봄을 기다리며’ 정도로 해석되는 이 작품은 어린이 음악을 의뢰받고 작곡한 5절 2분가량의 짧은 음악이다.
▲ 소프라노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의 모차르트 가곡집. 사진 김해진 |
▲ 소프라노 리타 슈트라이히의 가곡집. |
▲ 황동규의 동명 연작시를 모티프로 작곡한 최경래의 <풍장>. |
모차르트의 이 가곡은 요즘 93.1 제1FM 프로 중간에 기악곡으로 편곡되어 간주곡처럼 나온다.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는 원숙한 목소리로 봄을 노래하고, 리타 슈트라이히는 청아한 음성으로 봄을 맞이한다.
이 음악에 김종삼의 시를 읽으면 마음이 먹먹해진다. 또한 이 무렵의 계절을 아름답고도 가슴 아린 동시로 노래한 윤한로 시인의 ‘분교마을의 봄’도 겹쳐진다. 무릇 세상의 아름다움에는 삶의 비애가 담겨 있다.
풍장과 죽음의 명상록 ▲ 황동규 연작시집 <풍장>.
1982년부터 시작되어 1995년에 70편으로 끝을 맺은 황동규의 연작시 <풍장>은 죽음에 대한 시인의 명상록이다. 황동규는 13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덧없는 삶과 죽음을 관조하면서 그 끝은 새로운 생명과 맞닿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마지막 ‘풍장 70’은 모든 정신과 육신이 풍화되어 나타난 시인의 담담한 자기 고백이다.
이 풍장에 헌정한 음반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뮤지션 최경래는 풍장의 이미지를 8곡으로 작곡해 간간이 기타가 동반하는 피아노로 연주한다. 조지 윈스턴 풍의 뉴에이지 계열이다. 음반 내지에 시인에게 이 음반을 바친다는 구절이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최경래는 황동규와 풍장에게 깊은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정신에 힘을 빼고 감성의 주파수를 맞추면 고요하고 쓸쓸한 정서를 이 음반에서 느낄 수 있다. 이런 뮤지션을 독자로 둔 황동규 시인은 풍장의 영역을 음악으로까지 확장시킨 셈이다. 이로써 풍장은 소멸의 끝에 새로운 탄생이 시작되는 어두운 공간이자 밖으로 향하는 출구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