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이야기는 흥청망청 잘나가던 시절보다는 어려운 날 더욱 깊어지고 정다워진다. 외로울 때, 힘들 때, 아플 때, 슬플 때,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정든 가족과 함께 나누었던 음식을 떠올리며 그리워한다. 또한, 어디선가 그들과 함께 나누었던 음식을 찾아 헤매며 그 맛을 재확인하려 한다. 스스로 먹을거리를 사다가 요리를 해볼 수도 있지만 그때 함께했던 사람들은 이제 사라지고 없거나 자신의 입맛이 변했을 수도 있다.
언젠 가의 그 맛집을 찾아가보아도 대부분은 사라져버렸거나 주인이 바뀌었다. 만약 예전의 장소에 음식점이 그대로 있고 늙은 주인이 아직도 요리 중이며 음식의 맛도 여전하다면 우리는 실로 깊은 감동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세상과 내가 동시에 변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맛의 기억을 더듬는 일은 관계의 소중함을 깨우쳐주며 고단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고 스스로를 위무해준다.
여운이 죽기 열흘 전쯤이었을까. 며칠 남은 것 같지 않다는 그의 아내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달려가니 그는 초췌했지만 전과 다름없는 멀쩡한 얼굴로 누워 있다가 일어나 앉았다. 평생을 함께해왔으니 우리는 서로 긴 말을 하지 않아도 속내를 알았다. 창으로 밝은 햇빛이 침대 위에까지 쏟아져들어와 있었다. 그는 누우라는 내 말을 듣지 않고 꺼칠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리고는 피식 웃었다. “형하구 재밌게 살았어. 이렇게 끝날 줄 누가 알았나.” 나는 김용태에게 그랬듯이 여운에게 말했다. “잘해줘서 고맙다, 고마워.” 내가 조금은 쑥스러워하며 병원비나 보태라고 가져간 봉투를 베갯머리에 찔러넣으니 그는 평소와는 달리 마다하지 않고 농담을 했다.
“우리 저거 들고 나가서 이별주나 한 잔 할까?”
그가 죽은 뒤에 나는 친구들의 권유로 그의 묘비명을 썼다.
그대는 얼마나 곱고 쓸쓸했던가
인사동 모퉁이마다
주정 같은 네 목소리가
바람곁에 떠도는구나
그를 떠나보낸 후로 나는 그와 함께 즐기던 음식들의 맛을 잃었다. 밥상에 바지락을 넣은 아욱된장국이 올라올 때면 어쩐지 수저가 무겁다. 좀 잘해줄걸.
▲ 황석영의 밥도둑 /황석영 지음(2016. 3, 교유서가) |
무엇보다도 음식은 사람끼리의 관계이며, 시간에 얹힌 기억들의 촉매이다. 지난 시대에 명절이나 아니면 특별한 날에 먹던 음식들은 근대화를 거치면서 흥청망청 모두 허드레 음식이 되었고, 미국이나 일본을 중심으로 한 간편식이나 개화요리가 양요리의 대종이 되어 뒤섞여 있다.
<황석영의 밥도둑> 5~6, 209~210, 266~267쪽에서 발췌
우리 시대 산증인과도 같은 소설가 황석영이 <노티를 꼭 한 점만 먹고 싶구나>의 개정판을 펴냈다. 작가의 인생이 녹아든, 소박한 밥상과도 같은 맛깔난 음식회고록이다. 불황기를 겪으며 음식 관련 볼거리가 넘쳐나고 있는 요즘, “현실적 박탈감 속에서 최소한의 일상적 소비 욕구를 달래는 가장 손쉬운 길이 ‘음식’.”이라고 그는 말한다. 삶의 원천이자 진정한 행복감 말이다. 책의 초판 판매분 중 일부는 굿네이버스의 결식아동들을 후원하는 데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