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찐 살에는 ‘업힐’이 답
겨우내 찐 살에는 ‘업힐’이 답
  • 오대진 기자|사진 김해진 기자
  • 승인 2016.04.1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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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남산~북악스카이웨이 20km

지난달, 입춘 왔다고 자출을 시작…하려 했으나 동장군 등장에 촬영 당일 단 하루에 그치고 말았다. 이제는 진짜 봄이다. 정말로. 한강 자전거도로는 많이 달려봤고, 생소하지만 생소하지 않은, 본격적으로 자전거 좀 탄다 하면 간다는 남산~북악스카이웨이 코스로 라이딩을 떠났다. 라이더들에게 20km는 코스도 아니지만, 기자에게는 달랐다. 자전거 인생 최대 굴욕을 안고 돌아왔다.

안녕하세요, 선출 님
함께 자전거 캠핑을 해 오던 편집장이 개인적인 사정으로 함께 할 수 없게 됐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게스트 구하는 것이 쉽진 않다. 우선 자전거를 즐기며 탈 수 있어야 하고, 이번 반포~남산~북악스카이웨이 구간은 업힐 코스가 있어 체력도 어느 정도는 뒷받침 돼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간. 평일 촬영 스케줄을 맞출 수 있어야 한다. 지인 중에 물색했지만 역시 쉽지 않다. 최적의 게스트로 생각했던 지인은 동아마라톤 준비를 이유로, 대안으로 생각했던 사람들 역시 시간이 맞지 않아 섭외에 난항을 겪었다. 그러던 중 “아는 여동생 있는데 물어 볼까요?” 사무실에서 등을 맞대고 앉아있는 류정민 기자가 반가운 말을 전했다. “예. 좋져.” 그리곤 바로 답이 왔다. OK.

▲ 시작은 스트레칭. 꼼꼼하게 충분히 풀어준 뒤 출발.

그의 프로필은 섭외 후에 들었다. 철인3종경기 선수 출신 조수진 씨. “헐. 그럼 나 못 쫓아가는 거 아냐? 선출은 안돼. 반칙이야.” 이때 까지는 이 말이 농담이었다. “수영이 주종목이고 취미로 러닝 크루 PRRC1936에서 활동하는 친구에요. 자전거는 탄 지 좀 됐다네요.” 뭐 선택권은 없었다. 감사할 따름.

라이딩 당일 아침, 첫인상부터 선수다. 흠. 오늘 고생 좀 하겠구나. 겨우내 게으름과 맞바꾼 살도 걱정인데 이제 페이스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더구나 북악산 업힐은 처음인데.
“안녕하세요. 오늘 잘 부탁드려요. 첫인상부터, 포스가 선수네요.”
“안녕하세요. 아녜요. 자전거는 탄 지 오래돼서. 너무 힘들거나 그러진 않죠?”

훤칠한 키에 군살 없는 다부진 몸의 소유자가 헤비급 기자에게 건넬 말은 아니었지만, 처음이고 하니 “네. 즐기면서 타시면 돼요”라며 모르는 척 한 번 속아줬다. 기자와 사진기자 모두 남자여서 불편하진 않을까 걱정했지만 처음 만난 사람과도 허물없이 친해지는 활달한 성격이 그 걱정을 잠재웠다. 그녀의 리드 하에 다양한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시작점인 반포 한강공원을 출발.

▲ 잠수교 라이딩의 백미는 역시나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

▲ 차량 통행이 많은 한남대로 구간. 첫째도 둘째도 안전.

▲ “많이 안 힘들겠죠?” “나 놓고나 가지 마요.”
10년 만의 남산 업힐

잠수교 특유의 서늘하고 습한 바람을 뚫고 한강을 건넜다. 오전 10시, 영상 12~3도, 서늘한 바람, 한적한 자전거길.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었다.

“봄이네요. 저번 주에 낚시 갔을 때 바람이 너무 불어 날씨가 어떨까 걱정 많이 했는데 다행이네요.” “네, 너무 좋아요. 라이딩에 딱 좋은 날씨 같아요. 운동할 때는 표정이 항상 경직됐었는데 오늘은 웃으면서 탈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오늘은 자전거전용도로가 짧다. 잠수교를 건너 약 3km를 지나면 오늘의 자전거도로가 끝. 이후 코스는 전부 차도. 한남나들목에서 자전거도로를 빠져나와 순천향대학교병원 방향으로 향한다. 서울 도심은 역시나 차들로 북적인다. 줄지어 서 있는 차들을 뒤로 하고 페달을 구른다. 허벅지가 조금씩 신호를 보낸다. “오랜만에 오르막 오르니까 쫀쫀해 지는데요?” “네. 그러게요. 경사가 계속 이어져서 그런지 힘들었어요.”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남산타워까지는 쭉 오르막. 국립극장까지는 미세하게 경사도가 높아지고, 남산공원 매표소를 지나면 경사가 조금 더 가팔라진다. 하지만 이건 오르막도 아니었다. 뒤에 나오는 오르막에 비하면. 오르막도 계속 오르니 좀 적응이 됐다. 천천히 페달을 구르다 보니 어느새 남산타워가 눈앞에 나타났다. 대학교 입학하자마자 유럽 자전거여행 준비삼아 오르내린 뒤 10년 만이다. 그 때는 미니벨로로 가볍게 올랐는데,

오늘은… 숨이 좀 차다.
우선 남산(해발 270.8m) 접수. 하이파이브!

▲ 기나긴 오르막에 잠시 휴식. 꿀맛 같은 물 한 모금.

▲ 중턱에서 바라본 강남. 미세먼지로 시계가 불안정하다.

먹고, 보고, 즐기고

남산타워 앞은 언제나 그랬듯 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였다. 날씨가 풀려서인지 이른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여유를 즐겼고, 이제는 남산의 상징이 된,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하는 자물쇠 역시 펜스 여기저기 가득하다. 다 좋은데 한 가지가 아쉽긴 했다. 미세먼지. 북쪽 북한산 방향은 시야가 괜찮았지만 남쪽 한강 이남은 시계가 불분명했다.

UV도 노래하지 않았는가. ‘남산에 왕돈가스 아는가? 위쪽이 진짠지 아래쪽이 진짠지’라고. 남산에 왔으니 점심은 돈가스. 점심시간과 맞물려 주변 회사원들이 쏟아져 나온다. 집집마다 길게 줄이 늘어져 있다. 비슷비슷한 맛이지만 오렌지 간판이 달린 이 집을 자주 가는 편. 라이딩의 허기를 달래기에는 손색이 없다.

▲ 국립극장을 지나고 본격적인 남산 업힐 코스 시작.

▲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산 방향. 멀리 도봉산까지 보인다.

볕도 쐬며 잠깐의 휴식, 그리고 다시 안장에 오른다. “먹으니까 컨디션 좋아졌어요.” “그러게요. 힘이 나네. 다시 고고씽.” 시원하게 내리막을 달린다. 역시나 내리막은 짧다. 오를 때는 꽤 시간이 걸린 것 같은데 말이다. 숭례문이 바로 보이고 멀리 서울시청도 보인다. 도심 라이딩 때 매번 느끼는 거지만 이 기분은 색다른 상쾌함이다. 바삐 돌아가는 도심 속을 유유히 가로지르는 이 느낌. 그런데 이 날은 감흥이 일찍 깨졌다. 심한 미세먼지 농도와 시청 주위를 감싸고 있는 전경버스. 매연과 짝을 이룬 미세먼지의 쾌쾌한 냄새는 코를 강타했고, 한 차선을 점거한 전경버스는 라이더를 차도 안쪽까지 내몰아 위험한 상황을 연출케 했다. 화가 안날 수 없는 상황. 분명 도로의 가장자리 차선에는 자전거도로라는 표식이 그려져 있었지만 그 길을 달릴 순 없었다.

광화문광장의 이순신장군동상과 세종대왕동상, 경복궁을 지났다. 봄을 맞아 새로운 향을 내뿜는 도심의 여유를 뒤로 한 채 본격적인 업힐 코스에 발을 내딛었다.

▲ 완등 후 팔각정 휴식. ‘점심 뭐 먹어요?’ ‘남산에 왕돈가스 아는가?’

▲ 남산도서관으로 향하는 남산공원길. 산책코스로도 좋다.
어서 와, 북악스카이웨이는 처음이지?!

먼저 말하자면 이렇게 힘든 적도, 이런 굴욕도 처음이었다. 적어도 자전거를 타면서는. 경복궁역을 끼고 우회전, 청운초등학교 삼거리에서 다시 우회전하면 본격적인 북악스카이웨이 업힐 구간이 시작된다. 삼거리에서 북악스카이웨이 정상까지 평균경사도는 6.4도, 약 2.8km의 업힐 구간이다. 다만 계속되는 업힐에 6.4도로 느껴지지 않을 뿐. 가장 가파른 구간은 10도 내외. “시작된 것 같은데요?” “맞아요. 경사가… 심해져요.” 창의문까지 1.3km는 예행연습 구간, 그리곤 백석동 깔딱 고개가 나온다. 초행길, 힘 분배에 실패했다.

갑작스레 등장한 가장 급한 경사도, 기어를 미리 다 털지 않아 힘만 잔뜩 뺐고, 중간 이후 쫄깃한 종아리 통증에 잠시 발이 땅을 밟았다. 굴욕. 힘들다던 수진 씨는 여전히, 그리고 꾸준히 페달을 밟는다. 그리곤 기자를 앞에서 끌어줬다. 굴욕은 더 있었다. 업힐 성지에 많은 라이더들이 찾았다. 그들은 내 엉덩이를 보다 이내 내게 엉덩이를 보이며 달아났다. 고등학생 선수로 보이는 이들 몇은 동일 구간에서 나를 두 차례나 잡았다. 기자가 팔각정 한 번 오를 동안 그 친구들은 오르고 내리고, 오르고 내리고, 다시 오른 것. 굴욕감에 정말 쓰기 싫었지만….

▲ 광화문 광장. 이순신장군동상과 세종대왕동상을 지나며.

▲ 업힐 뒤엔 다운힐. ‘돈가스 먹으러 가자!’

그렇게 낑낑대며 페달을 구르자 드디어 북악스카이웨이 팔각정(해발 342.5m)이 모습을 드러냈다. “햐~ 힘드네.” “화이팅. 고생하셨어요.” 먼저 숨을 고른 수진 씨, 팔팔하다. 기자는 오징어 쭈글쭈글. 지난해부터 자전거 취재를 함께 한 사진기자는 “고개 숙인 모습 처음보네. 이 코스가 힘든 코스네.”라며 위로했지만, 상쾌함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체력이 이렇게 떨어졌구나.’ 겨울동안 나 몰라라 방치한 결과는 생각보다 끔찍했다.

“아, 이거 원. 망할 체력 됐네. 이제 다시 라이딩 시작합니다.” “내일부터 출근도장 찍으실 듯. 그래도 정상정복 했으니 하이파이브! 오늘 도심 자전거여행 재밌었어요. 또 불러주세요.” 재밌게 타려면 역시 체력이야. 뭔들 안 그러겠어.

▲ 돈가스는 언제 먹어도 돈가스! 꿀맛.

▲ 경복궁까지 지나면 본격적인 북악스카이웨이 업힐 구간 시작.

▲ 서서히 드러난 체력 차. ‘고개 들어라. 너무 비교된다.’

▲ 뒤에서 무섭게들 쫓아온다. 잡히고 또 잡히고. ㅠㅠ

▲ 수진 씨 파이팅!

▲ “내일부터 출근도장 찍으실 듯.” “애기들한테 당한 굴욕 갚아줘야지.”

epilogue

꾸준한 몸 관리의 필요성은 TV를 통해서만 봤다. 적어도 내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 전에 몸이 신호를 보냈으니. 그 신호를 모른 척 했다. 다행히 이번 업힐이 일깨워줬다. 자전거를 몇 년 째 타지 않았다던 수진 씨지만 평소 러닝으로 단련된 체력에 무리는 아니었으니까. ‘고마워요, 수진 씨!’ 어느 때고 동기부여의 기회는 한 번 씩 오기 마련. 봄맞이 북악스카이웨이 업힐이 내게는 그 기회다.

*장비 지원 자이언트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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